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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그 분

by Aphraates 2021. 12. 25.

그분이 오셨다.

오시고 가시고를 따질 것이 아니다.

오시는 그분이 계시어 우리는 행복하다.

 

삼천포에서 올라오노라니 피곤했다.

거의 주말마다 치르는 행사인데 왜 그런지 몸이 나른하여 좀 누워있는다고 한 것이 깜빡 잠이 들었다.

미사에 참례하려면 2시간 정도는 준비해야 하는데 1시간 정도밖에 안 남기고 눈을 떠 화들짝 했다.

늘 전투 요원이었듯이 급하며 급한 대로 하는 데 익숙한지라 둘이서 손발을 척척 맞춰가면서 서둘러 성당으로 갔다.

시간은 이미 늦었다.

최소한으로 참석해야 하는 방역수칙에 따라 이미 자리 잡은 교우님들로 2층 대성전은 자리가 없었다.

안내원의 안내에 따라 3층으로 올라갔더니 그곳도 꽉 차기 일보 직전이어서 간신히 맨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3층에서 우리 부부의 지정석과도 같은 제대 앞 맨 앞자리를 내려다보니 무척 멀게 보였다.

 

미사 전은 아슬아슬했으나 성탄전야 미사는 영광과 평화 그대로였다.

청년 성가대 몇 명이 4(?)로 인도하는 성가에 따라 가장 초라하게 오신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며 보니 찬란한 빛이 우리 모두에게 편안하게 비치는 느낌이어서 좋았다.

아기 예수님 탄생하심에 감탄하면서 아울러 구만 아버지와 갓난 엄니를 비롯한 저승의 모든 이에게 안식을, 데보라와 함께 이 세상의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시라고 청하다 보니 미사가 끝났다.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참례하신 교우님들과 성탄 축하 인사를 나누고 생일 축하 떡을 하나씩 들고 나서는데 쓸쓸하다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고 참 평화로웠다.

요한 대자 님과 걸어오는데 바람이 매우 차가웠다.

근래 보기 드문 추위가 올 거라는 일기 예보가 적중한 것 같았다.

갈마 공원 인근의 노포에서 통닭을 사고, 바로 옆의 편의점에서 소맥 폭탄 제조 재료를 사서 들고 601호로 와서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밤이슬 맞으며 다니던 예년하고는 매우 달랐으나 아기 예수님 덕분에 즐거운 것은 조금도 다르지 않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였다.

 

이분도 온단다.

앞의 그 분과는 다르지만 이분도 사랑받기 위하여 태어난 분이다.

 

미당 선생은 늘 이분이라 부른다.

같은 용띠 동갑례로 같은 시대를 호흡했지만 섣부르게 이름을 안 부른다.

보통 사람과는 결이 다른 영애(令愛)였다.

어머니가 서거하신 이후로는 영부인이었다.

아버지가 서거하신 이후로는 올드미스였다.

격동기에는 보수의 리더 정치인이었다.

변혁기에는 정치의 중심인 대통령이었다.

이분의 인생은 영욕으로 점철된 파란만장했다.

 

아름답고 부러울 때는 청와대에서의 학생 시절이었다.

그 후도 청아하고 고귀한 자리를 이탈한 것은 아니었으나 전 같지 않았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염려했다.

그러나 한 번 밟은 엑세레이터에는 브레이크가 들질 않았다.

동승한 승객들과 승강장에서 기다리는 손님들과 논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대로 놔두질 않았다.

매력이 점점 줄어들고, 그 전처럼 끌리지 않았다.

어린 시절 살던 곳으로의 재입성은 불행이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세상 물정 모르는 귀하신 몸으로 최근에 회자하고 있는 파리떼와 하이에나와 동고동락할 게 아니었다.

얼떨결에 동행하며 이용당하고, 부모·형제의 사랑에도 금이 갔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결국에는 배신자를 심판해달라는 하소연과 함께 뭘 하고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었던 사람들 때문에 영어의 몸이 된 그 길이었다.

한사코 사양하여 걷지 말았어야 했던 그 길도 정리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이분이 온단다.

의왕에서 나온단다.

어디로 가야 하나.

오늘 오시는 그분은 다 아시겠지만 이분은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슬픈 인연이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어느 길인가는 가야 한다.

 

좀 길은 데 무념, 무상, 무주, 무체, 무위, 무행이었으면 한다.

세례명이 율리안나이다.

자기절제와 고행의 표상으로 통하는 율리안나 성녀를 따르고자 하는 날들이었으면 한다.

친박(親朴)은 없고 도박(逃朴)만 있다는데......,

배신과 변절에 대한 서운한 것이 많겠지만 흘러간 사람들을 포함하여 새로 나타난 많은 사람이 그를 일삼으며 횡행하고 있는 지금을 거부할 수는 없을 테니 아예 고개를 돌려 갈 길을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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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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