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손시러우시지요

by Aphraates 2021. 12. 24.

근래 보기 드문 추운 성탄절이 될 거라는 일기예보다.

춥다고야.

그럼!

겨울은 겨울답게 춰야지.

그런 겨울을 잘 이겨내야 꽃피는 봄날을 기약할 수 있지.

자연스레 이열치열의 날을 맞이할 필요도 있지.

가장 추운 날에, 기장 비천하게 오심에, 가장 따뜻하게 됨을 반전이라 말하고 싶진 않다.

 

지난 주일이다.

삼천포로 내려올 때다.

데보라가 갓 구워낸 호두과자에 시원한 물을 마시고 싶다 하여 금산 인삼 랜드 휴게소에 들렸다.

코로나 방역 강화가 재시행된 여파인지 사람과 차가 의외로 적었다.

정부에서 뭐라 하던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유분방한 개인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외국과는 확연히 다르다.

생업과 직결되는 자영업 소상공인들이 손실 보상금 백만 원은 턱없이 적다며 항의 집단행동에 나서는 것이 애처롭고, 자신을 돌아볼 새도 없이 창궐하는 역병에 정면 대응하면서도 부족하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관료계와 의료계의 헌신봉사도 눈물겹다.

그래도 부푸는 곳이 있으면 쪼그라드는 곳이 있는 고무풍선 같은 현실에 담대하게 응하면서 양측을 다 어우르고 응원하는 국민이 있어 외롭지 않다.

당황하거나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솔선수범하여 방역에 협조하면서 난국을 타개에 진솔하게 임하는 우리에게 성공적인 K 방역은 계속 이어져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는 예감이다.

 

데보라가 찰칵찰칵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빵 굽는 기계가 보이는 호두과자 코너 앞으로 갔다.

점원한테 상자에 넣지 말고 오천 원짜리 한 봉지 달라고 주문해 놓고는 지갑을 열더니 미당 선생을 바라보았다.

지갑이 비었다는 표정이었다.

그저 바라보고만 있으면 바깥양반의 직무유기다.

얼른 지갑을 꺼내 열어보니 그 지갑도 근근했다.

딸랑 오만 원짜리 한 장이었다.

빈 지갑이라고 털어 보이면 무책임한 것이다.

비상금인데 이거라도 쓰라면서 신사임당 님을 내미니 두말할 것 없이 얼른 받아 점원한테 건넸다.

거스름돈을 받더니 셀 것도 없이 그 답 지갑 주인한테 건넸다.

제대로 받았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정석이지만 만 원짜리 네 장과 오천 원짜리 한 장이 틀릴 리가 없으리라는 생각이었다.

 

만 원짜리 두 장을 손에 들었다.

나머지는 지갑이 아닌 호주머니에 넣고 돌아섰다.

호두과자 봉지를 들고 따라오는 데보라한테 한 장 건네주면서 앞을 가리켰다.

자선냄비였다.

오가는 행인도 별로 없는데 훤칠한 키에 기다란 외투와 투박한 모자와 얼굴을 가린 마스크를 쓴 구세군이 자선냄비 앞에서 종을 흔들고 있었다.

불우한 이웃을 도웁시다라던가, 보람찬 한 해와 새해가 되라든가 하는 명확지 않은 덕담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축복하였다.

 

둘이서 한 장씩을 자선냄비에 넣었다.

구십도 허리 굽혀 인사하고 허리를 펴면서 손시러우시지요하면서 가볍게 웃었다.

구세군께서 아닙니다. 춥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하셨다.

가슴이 찡했다.

후회도 됐다.

거스름돈을 호주머니에 넣을 것이 아니라 그것만이라도 다 자선냄비에 넣을 걸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고 뒤돌아서서 다시 자선냄비로 가기도 멋쩍어서 차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데 가기 싫은 곳에 억지로 끌려가는 것처럼 발걸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차 밖에서의 자선냄비는 일단락 지었다.

차 안에서 입천장이 델 정도로 뜨거운 팥소가 흘러내리는 호두과자를 먹으며 차창 밖으로 자선냄비를 바라보았다.

무거웠던 발걸음은 가벼운 발걸음이라 해도 좋으니 오늘 못한 것은 다음에 해도 되는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하면서 고속도로로 들어서 씽씽 달렸다.

신나는 속도는 아니나 110km2차선을 스무스하게 달리는데 쪼그만 방개 차가 약 올리기라도 하듯이 쌩하고 추월하여 지나가기도 하고, 덜덜거리는 육중한 소리를 내는 고물 트럭이 그렇게 달리려면 왜 차를 갖고 나왔느냐고 호통이라도 치듯이 골골거리며 추월하여 내뺐다.

고속도로나 휴게소나 인파와 차량은 한산하고, 서해안으로 눈보라를 동반하고 있다는 날씨는 차가웠다.

그런데도 훈훈한 구세군의 말씀이 삼천포에 도착할 때까지도 참 따스하게만 느껴졌다.

 

오늘 올라가는 휴게소에 자선냄비는 어떨까.

더 손시러우실 것 같다.

날씨는 더 추워질지라도 펄펄 끓어오르는 자선냄비였으면 좋겠다.

제한된 인원만 참석해야 하는 성탄전야 미사는 봉헌이 가늠할는지 그도 불투명한데 현실이 어려울지라도 오시는 분 기쁘게 맞이하련다.

자선냄비도 어려우면 개인적으로는 증손자뻘인(--- ) () 총리님의 환하게 웃는 자선냄비 앞에서의 그림으로 대치하면 되니 밝은 웃음을 지을 일만 남아있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지만 일희일비하지 않으시고 꿋꿋하게 자리매김을 하시느라 입술이 부르텄다는 대통령님 내외 군복 차림의 백령도 사진도 믿음직하여 보고 또 보면서 성탄 전야의 새벽을 연다.

 

http://blog.daum.net/kimjyyhm

http://www.facebook.com/kimjyyfb

http://twitter.com/kimjyytw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21.12.27
그 분  (0) 2021.12.25
지각 대장  (0) 2021.12.23
임진강이 부른다  (0) 2021.12.23
구경  (0) 2021.1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