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 노래 일발 장진!
발사!
해 저문 소양강에......,
이후락 부장이 평양에 다녀오고, 818 판문점 미루나무 사건이 터지고 하면서 혼돈에 혼돈을 거듭하고 있던 1970년대 초중반 병영의 모습이다.
먹을 거라고는 OO이라고 하는 삼시 세끼 밥이오, 즐길 거라고는 담배 피우며 위문 편지 읽는 것이 고작이었던 한탄강변의 쫄병 시절이었다.
초라하고 근근한 깡마른 모습이었지만 요즈음 군대 좋아졌다고 구식 라떼를 외치던 구닥다리 고참들이 종종 벌이던 공갈 잔치였다.
중간 고참이 갓 전입 배치돼 온 신병을 앞에 세워놓고 떨어지는 나뭇잎도 조심스럽다고 하는 제대 날짜 받아 고향 앞으로 갈 준비를 하는 갈참의 심심풀이 땅콩을 만들어주던 장면이었다.
가장 강력한 명령체계의 조직이자 제도와 행정에서 앞서가는 군이었으나 그런 고리타분한 일들이 일상적이었던 시절이었다.
오월동주라 하기도 그렇고, 초록동색이라 하기도 안 어울리지만 그렇게 모순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상전벽해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
그렇다고 과거는 비인간적이고 현재는 인간적이라고 단정하긴 그렇다.
다만 민주화되고 현대화된 지금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따름이다.
외동이 낳기도 버거워하는 지금 그랬다가는 결딴난다.
자식 군대 보내 놓고 자나 깨나 아들 걱정하는 치맛바람을 유도하는 작전 실패라는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그런 것이 아주 부도덕한 처사라고 폄하하기에는 좀 그렇다.
이율배반적인 것을 통해 딱딱한 상하 복종 관계를 유연하게 만들고 사기진작을 기할 수 있는 좋은 작전의 하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맥 특공대가 일전을 벌였다.
해방 전에 태어나신 공군 출신의 대장님과 6·25동란이 끝난 한참 뒤에 태어난 육군 장기 하사관 출신의 막내 대원에 이르기까지 잘 통했다.
의기투합에 임전무퇴의 그림이었다.
중부 전선 임진강변 육군 특수부대 출신의 김 병장이나 강원도 화천 부대 출신으로 국군의 날 행사 요원으로 여의도 사열과 분열에 참여한 박 병장이나 병과와 작전 내용은 틀리지만 쿵짝이 잘 맞았다.
이심전심과 이구동성의 화음이 기가 막혔다.
무엇이 그렇다는 것인지......,
향촌에서의 김 병장 삼천포 마감 기념 작전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펼친 군대 이야기가 그랬다.
지루할 시간이 없었다.
스르르 밀려오던 졸음과 피곤도 역전의 용사들 군대 아야기만 나오면 싹 가시는 것은 여전했다.
작대기 하나 출신 임(林) 이병이 있었으면 더 푸짐했을 것이다.
비록 방위였지만 육군 훈련소 옆이 집이어서 보고 들은 것이 많다.
군대 이야기만 하면 더 잘했고 더 신바람이 났다.
서울 가 본 사람 보다 안 가 본 사람이 더 잘 안다는 것처럼 현역을 능가하는 군대 이야기였다.
몸소 체험한 것은 아닌 보고 들은 것이어서 깊이가 없어 금방 밑천이 드러났지만 “방위는 물러나시고” 하는 핀잔을 하진 않았다.
어려운 시절에 군대 생활을 한 현역 정예부대 출신들은 이렇게 잘 통하여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화기애애한데 그 기운이 아파서 몸져누운 논산 친구한테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가 일발 장전을 명령할 것도 없다.
누구라도 일발 발사를 사양할 것도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군대 이야기는 신선놀음이다.
도낏자루 썩는지 모르고, 알딸딸하던 술이 다 깬다.
노래 일발 장진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재미난 군대 이야기는 설이 끼어있던 지지난 주의 이야기였다.
정월 대보름이 낀 이번 주는 조용히 머물다가 내려가는 일정이다.
이제는 여파도 감각도 무디어져 네들은 네들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각자도생해야 할 코로나 걔들 때문이지만 정리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은 사정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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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