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은 우리 부부가 아끼는 아이 중의 하나다.
아니, 아이라고 하면 좀 어폐가 있다.
그때는 아이였지만 지금은 어른이다.
대학생과 고등학생 아들을 둔 학부모이자 중견 공무원이다.
M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참 순박하고 변덕이 없다.
주변에서 너는 수녀원에 갈 것이라고 할 정도로 순수하고, 뭘 하라면 하라는 대로 원칙과 최선을 다할 정도로 성실하다.
그렇게 사랑스럽지만 엉뚱한 면도 없지 않다.
물론 그 엉뚱한 것조차도 예쁘게 봐주는 우리다.
그 예를 하나 들면 이렇다.
M가 칠갑산 고을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다.
하루는 데보라가 세상 참 별일이라며 웃었다.
뭔지 궁금하니 어여 말해보라고 하였다.
엄마한테서 들었다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엄마가 내 속으로 난 딸이지만 그런 면이 있는 줄은 몰랐다며 웃더란다.
이야기인즉 이랬다.
M가 학교에서 오더니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슬프게 울더란다.
달래면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 다 얘기하더란다.
오늘 학교에서 반장 선거가 있었는데 떨어졌다면서 속상해하더란다.
반장 같은 것에 매일 아이도 아니고, 웬만한 일에 그렇게 실망할 아이도 아닌데 무슨 일이 있었는가 싶어 꼬치꼬치 물었단다.
반장 선거에서 떨어진 과정을 죽 설명하더란다.
반장 선거에는 친한 친구 한 명,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 한 명 해서 셋이 출마를 하여 투표를 했다고 하더란다.
투표 결과는 친한 친구는 두 표로 떨어지고, M은 영 표로 떨어지고, 다른 친구는 많은 표를 얻어 반장이 됐다고 하더란다.
M가 속상해하는 것은 영 표라는 것이라고 하더란다.
M은 친구를 생각해서 친구한테 투표했는데 친구는 M한테 투표를 안 하고 자기한테 투표해 M은 한 표도 얻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하더란다.
그러니 그 순진한 M 입장에서 얼마나 속상했을지는 알고도 남음이 있다.
엄마는 웃음이 나왔지만 참고 조용히 타일렀다고 하더란다.
자기가 반장이 되겠다고 자기한테 투표를 한 친구도 잘한 것이고, 친구를 위해 투표를 한 너는 더 잘한 것이니 그런 일로 다투지 말고 함께 잘 지내라 타일렀다고 하더란다.
따뜻하게 보듬어주자 요 착한 것이 금방 풀어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되돌아오더라고 하더란다.
우리는 재밌어 박장대소했다.
M한테 그런 면이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고,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아이를 보듬어준 엄마도 대단했고, 세상에 얼마든지 그럴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잘 이겨야 할 것이라며 응원한 부부도 보통은 넘었다.
M을 지지난해 여름에 봤다.
휴가차 가족이 남해에 왔을 때 삼천포로 오라 하여 저녁을 함께했다.
그때도 M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네가 어렸을 때 그런 일이 있었는데 기억나느냐고 묻자 수줍어했다.
그 얘기는 해도 해도 재밌다.
삼천포에서 올라가다 보면 거치는 곳이어서 언제 한 번 만나서 점심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마음뿐이었다.
반 달도 안 남은 여기 생활이니 여기서는 어렵게 됐다.
대전에 올라가서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테니 그때 다시 반장 이야기를 하며 웃어야겠다.
반장을 해보겠다고 손을 들 것 같지 않은 데 손을 들고 나섰던 M의 성은 최(崔) 씨이다.
우리는 M을 수양딸이라고 부른다.
M은 우리를 수양 아빠와 엄마라고 따른다.
버들 류(柳)인 엄마와 높을 최(崔)의 아빠도 절친 중의 절친이다.
지난번 정림동 회동에서였다.
전혀 엉뚱한 모습으로 화면에 비치는 또 다른 최(崔) 씨가 보였다.
앞자리의 두 최 씨께 최 씨들한테는 나도 반장 한번 해보겠다고 손을 드는 엉뚱한 유전인자가 조금씩은 섞여있는 것 같다고 웃으면서 우리 M처럼 순박한 모습은 아니라고도 했다.
그 인사가 다시 화면에 보인다.
지난번에 나도 한 번 해보겠다고 손들었다가 뭘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손을 내렸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손을 드는 것 같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을 연상케 한다.
맘이 무겁다.
그림이 좀 그렇다.
내 인생은 내가 사는 것이니 누가 뭐라 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길로 나섰을지라도 남들 생각도 해야 할 것이다.
보고 싶지 않은데 봐야 하는 입장에서는 고역이다.
헌법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헌법 가치가 뭔지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법을 제정하고, 법을 집행하고, 법을 판단하는 데는 나라와 겨레를 먼저 생각하겠지만 그 정도와 심도는 어떤지 헤아려봐야 할 것도 같다.
고고하고 도도해야 할 주체가 그래서는 안 되고, 가던 길을 갑자기 바꿀 것도 아니고, 갓 쓰고 구두를 신은 것 같이 엉거주춤한 모습도 안 어울리고, 변신과 배신의 트라우마를 상기시킬 것도 아니고......, 걸리는 것들이 많아 대도(大道)인지 소도(小道)인지 생각해봐야 할 텐데 심사가 복잡하다.
그나저나 M야.
너 같은 애는 손을 안 들어도 사모관대를 팍 씌어줘야 하는데 잘 돼 가지.
응원한다.
잘될 거다.
평소 하던 대로만 하거라.
자연스럽게 모자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양 엄마가 우리 M가 시험 합격하면 원피스 한 벌 사준다고 한 약속 지키지 못한 것을 보속하는 차원에서라도 이번에는 꼭 지키라고 푸시할려고 하는 데 나쁘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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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