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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호(胡)

by Aphraates 2022. 2. 10.

가물가물하다.

중학교 입학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1960년대 초중반이 된다.

 

앞 냇물 가에서 놀다가 친구와 쌈이 붙었다.

코피 나게 치고받지는 않았으나 격렬한 입 쌈이었다.

순박한 시골 아이들이었으니 발랑 까진 아이들이 하는 욕은 없었겠지만 칠갑산 자락 벌터 동네에서 나올 수 있는 욕이라는 욕은 다 나왔던 것 같다.

옆에는 빨래하는 동네 아줌마들이 계셨다.

애들이 늘 하는 싸움인지라 그러니라 하셨는지 별다른 말씀 없이 친구들끼리 그러지 말고 친하게 놀라고 이르셨다.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며 빨래하는 동네 아줌마들에 맘껏 뛰어 노는 개구쟁이들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한데 그도 잠시였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욕을 막 하다가 어디선가 어른들로부터 들은 후레자식이라는 말을 친구한테 퍼 붰다.

친구도 그런 강도의 다른 욕으로 대꾸했다.

 

그 욕소리에 동네 아줌마들이 가만히 안 계셨다.

강하게 꾸짖으셨다.

아주머니 한 분이 우리들을 불러 세우시더니 무서운 얼굴로 혼내셨다.

친구들끼리 때리고 욕하면서 싸울 수 있지만 후레자식이라는 욕은 쓰는 게 아니라며 다시는 그리지 말라고 엄하게 하셨다.

 

그렇게 혼이 나고 쌈은 끝났다.

다시 싸우기 전으로 돌아가 헤헤거리며 놀았다.

나쁜 욕이라는데 욕에 대해서도 잊고 지냈다.

별다른 생각도 없었다.

욕은 다 같은 욕이다.

악한 욕이고 착한 욕이고 경중을 가리는 것이 별 의미가 없다.

아예 욕을 안 하면 되는 것이지 이 욕은 해도 되고 저 욕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동네 아줌마들이 그 욕에 대해서 왜 그렇게 노하셨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중학교인가 고등학교인가 국사 시간에서였다.

호래자식이나 호로 새끼라는 욕은 우리나라를 침범하고 능멸한 청나라 오랑캐들로부터 유래된 아주 악한 욕이어서 누구한테도 해서는 안 된 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호()는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의 그 호다.

 

어릴 적의 그 경험은 지금도 유효하다.

성질이 나고 화가 나면 다른 욕을 안 한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런 상스런 욕은 쓰질 않는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그 욕이 들려온다.

기억 안 해도 좋을 반세기 전의 아픔을 들춰내게 하고 있어 유감이다.

그러 소리를 하는 사람도, 그런 소리를 듣는 사람도, 그런 소리를 피할 수 없는 사람도 모두가 괴로운 시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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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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