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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밥상은

by Aphraates 2022. 3. 5.

가야지 가야지 했다.

떠날 날을 기다렸다.

학수고대까지는 아니어도 돌고 도는 회자정리에 이자정회를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기왈 갈 거 빨리 갔으면 했다.

그런데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막상 현실에 당착하고 보니 얽히고 설킨 것이 많았다.

 

삼천포 생활.

하루도 안 틀리는 3년이었다.

고향을 떠나 객지에 있다가 객지를 떠나 고향으로 온다면 귀향의 기쁨이어야 할 텐데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착잡했다.

삼천포에서는 1+1=2였던 것을 대전으로의 1+1=1로 만든 것은 홀가분했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1+1=2, 1+(-1)=0, 1+1=1, 1+1=10이 된다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

수학 공식으로 답은 하나이지만 인간 공식으로는 다양한 답이 있다는 것을 체험한 것이다.

 

이사 가던 날이다.

 

둘이 사는데 무슨 살림살이가 그리도 많은지 세 번에 걸쳐 승용차에 가득 실어 날랐다.

언뜻 생각하면 별거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짐을 싣고 풀면서 느낀 것은 2차 대전시부터 지금까지 잘 날아다니고 있다는 B52 대형폭격기에 탑재한 포탄을 늘어놓은 사진을 봤을 때 저 정도로 많은가 하고 놀랄 때와 비슷했다.

 

고상을 비롯한 성물과 갓난엄니 사진을 모신 배낭을 마지막으로 이삿짐을 차에 실었다.

차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빵빵했다.

사무실에서 보내 써오던 탁자와 의자를 밖으로 내는 것을 끝으로 작은 핀 하나 없이 집을 싹 비웠다.

현관, 거실과 안방 창문, 보일러실과 화장실 문을 활짝 열고 집안 곳곳을 깨끗하게 청소했다.

안 좋은 뒤태는 남기고 싶지 않았다.

원룸 주인께 지금 시간부로 집을 비운다며 후속 처리를 부탁했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했더니 오히려 자기가 고마웠다면서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지내시라고 인사했다.

 

텅 빈 집에 둘이 서서 주모경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집안 곳곳을 돌아보고 만지면서 삼 년 동안 편안하게 있게 해줘 고맙다면서 다음에는 더 좋은 집 주인을 만나 잘 모시라고 당부했다.

방 현관문을 나서는데, 원룸 정문을 나서는데, 차고를 나서는데 이제 다시는 볼 날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웃고 있는 데보라도 그랬다.

늦은 나이까지 찾아주는 이 있어 일하는 것은 좋지만 이런 작별은 할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짐 때문에 차내 거울을 통해 뒤를 볼 수가 없어 답답했다.

대신에 양측 밖 백미러를 볼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밥상은 밝았다.

하기동 대모님께서 버릴 것은 다 버리고 홀가분하게 오라고 하셨지만 그러지 못하고 웬만한 것은 다 갖고 왔다.

욕심이라기보다는 타고난 성격이다.

 

밥상은 특히 더했다.

삼 년 동안 둘이 마주 앉아 밥을 먹던 밥상이다.

누가 가져갈지도 모르고 어떻게 때려 부술지도 모르는데 복받은 밥상을 낯선 객지에 놔두고 올 수 없었다.

둘이서 힘줘 밀어 넣는 것으로 차에 실었다.

밥상은 절대로 안 된다는 부부 일심동체로 통했다.

 

삼천포 용궁수산 시장에 들렀다.

데보라가 단골집에 가서 주문해놓은 활어 도다리 2박스를 들고 왔다.

차에 공간이 없어 데보라가 안고 탔다.

운전석에서는 많이 불편할 거라 걱정을 하고, 조수석에서는 좀 불편해도 괜찮다고 했다.

 

도다리는 또 다른 감사의 작별 인사였다.

 

한 박스는 올라오다가 논산 임쫄 집에 들려 전했다.

투병 중인 친구가 먹어야 얼마나 먹겠는가만은 봄 도다리에 가을 전어라고 하는 맘을 전하고 싶었다.

두 부부가 차담하면서도 병을 걱정하는 소리는 안 했다.

피할 수 없으니 억지로 피하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라 부탁했다.

현상 유지라도 하게 조금씩 먹고 조금씩 움직이라며 윽박지르듯이 일렀더니 그렇겠다고 고개를 끄떡였다.

 

다른 한 박스는 미당 본가 큰형님 것이다.

내일(오늘) 귀향 인사차 청양과 보령 선영에 인사를 드리러 갈 참이다.

중간에 큰집에도 갈 것이다.

남새밭의 쑥을 좀 뜯어다가 그 유명한 쑥도다리 국을 끓여 드시라 하자고 데보라가 생각해낸 것이다.

 

밥상은 챙긴다.

도다리를 준비한다.

그것은 두 집 살림을 한 집 살림으로 합치는 세러머니였다.

선거를 며칠 앞두고 합쳐진 하나가 어찌 될 것인지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이 하룻밤 사이에 금세 잊혀가면서 또다시 설왕설래이지만 너무 그럴 거 없다.

다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순리에 따르게 될 것이다.

1+1=?에 대해 너무 노심초사할 것은 없다.

 

만감이 교차하던 합쳐진 첫날 밤을 보내고 단순한 생각으로 사전 투표와 인사로 첫날 행보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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