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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여기든가 저기든가

by Aphraates 2022. 3. 26.

어제는 청양에 다녀왔다.

그리움과 추억을 자아내게 하는 길이었다.

업무적으로 가거나 어디를 가다가 지나치는 것과는 결이 다른 나들이었다.

 

명분은 이달 말 정년퇴임하는 재영 지사장 아우님을 응원하는 것이었다.

부차적으로는 고향과 타향을 넘나드는 전력인으로 있다가 OB가 되어 귀향한 영우와 갑규 아우님과 밥 한번 먹자는 것이었다.

원래는 박(), (), () 선배님과 안() 대자 겸 후배도 함께하기로 했으나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다음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넷이서 시간을 함께했다.

이심전심도 있었다.

가는 버스 안에서 대전의 송()과 한() 아우님과 통화를 하게 되어 여차여차해서 청양에 간다고 하였더니 함께 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지만 다음에 다시 자리를 만들자며 달랬다.

 

갈마 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구암역에서 내렸다.

자리를 옮긴 새로운 유성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유선-공주-정산-청양-보령(대천) 직통버스를 탔다.

출발할 때부터 감회가 깊었다.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초까지 미당 선생이 공주의 중학교(公州中)와 대전의 고등학교(忠南工高) 시절에 오가던 그 길이었기 때문이다.

신작로로 길도 좋아지고, 번들번들하게 차도 좋아지고, 오가는 시간도 짧아지고, 지난 사람과 오는 사람도 달라지고, 세상도 달라졌지만 내내 그 길은 그 길이었다.

차창 밖을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승용차를 타고 다닐 때와는 사뭇 달랐다.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고, 여기던가 저기든가 하는 이미자 가수 아씨의 구슬픈 노래가 흥얼거려지며 눈시울을 적셨다.

 

잠시 시간 여유가 있어 돌아본 청양 시내도 그랬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런 한적한 소도읍일지 모르지만 미당 선생한테는 기막힌 곳이다.

인연과 사랑이 영원히 이어지는 고향이다.

태어나 자란 곳이자 중요한 인생역정이 이루어진 곳이다.

또한 언젠가는 종길 형과 구만 아버지와 갓난 엄니가 영면해 계신 옆으로 돌아갈 곳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일가를 이루고 꾸리고, 물로서 다시 태어나 가톨릭으로 세례를 받은 곳이다.

유신과 10.265공과 민주화 시대로 이어지는 정치적 격동기를 몸소 체험한 곳이자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 게임의 문화 창조에 참여하고 열광한 곳이다.

조직사회 구성원으로 신입 사원에서 시절부터 간부 사원이 될 때까지 사양(斜陽)과 청수리(淸水里)에서 웃고 울던 곳이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고, 꿈에도 그리운 곳인데 별다른 감흥 없이 무덤덤하게 지난다면 사람도 아닐 것이다.

충의예지애효신(忠義禮智愛孝信)이 가득하고 절대로 삼강오륜에 반할 수 없는 거룩하고 숭고한 곳인데 어떻게 가벼이 지날 수가 있겠는가.

 

점심을 하고는 갑규 아우님 청수리 끝자락에 자리한 농가에 들려 차담을 나누었다.

청양 토박이들답게 동네 사정이 훤했다.

특히 중앙과 지방의 정치 이야기를 할 때는 다 얽히고설킨 인물들이 화제의 대상이 되어 재미있었다.

() 제수씨가 모두 청양에서도 대천 쪽의 화성 출신들이어서 더 정겨웠는데 홈페이지를 통해 사진으로만 보는 데보라 언니도 함께하자고들 하시어 다음에 그렇게 하자고 약속하였다.

미당 선생은 농촌 출신이면서도 그 과가 아니어서 귀촌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지만 황토방도 만들고 텃밭에 이것저것 골고루 심어서 가꾸는 것을 보니 이런 게 바로 여유로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씨/이미자(임희재작사,백영호작곡)/1970, 다음

 

 

대전으로 돌아오면서 죄송스러운 맘에 간단한 기도를 바쳤다.

대전교구장 착좌를 하시는 김() 주교님에게 은총을 내려주시고, 갈마동 성당 주보 성인 대축일을 축복해 주시라고 기도드렸다.

아울러 오늘 기억한 모든 분들과 기억하지 못한 모든 분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주시고, 오늘 하루를 잘 살게 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리고 있음을 헤아려 주시라고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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