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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하다 하다 할 거 없으면

by Aphraates 2022. 6. 15.

C 아우와 서천의 K 대자(代子)네 아이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관심을 둬야 할 아이들이다.

나이가 제법 든 아이들이니 제들 앞길은 제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부모는 생업 때문에 낙향했으나 아이들은 장래를 생각하여 대전에 남아 있는 것인데 피차가 고달픈 삶을 사는 것은 눈으로 직접 안 봐도 알 수 있다.

뭐 도움도 못 되고 안타깝다.

아이들 사정을 잘 아는 C 아우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니 역시 어렵게 지내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 애들과 긴밀한 관계라는 아이에 대해서도 어찌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몇 년째 공시족(公試族)인데 여의찮은지 친구네 일을 도와주면서 그럭저럭 지내는 거 같다고 했다.

좀 짜증스러웠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으나 합격하지 못하는 아이도 답답하겠지만 그 세계에 대해서 좀 아는 사람으로서는 더 답답했다.

 

아우가 들어야 할 소리는 아니나 한참을 설명했다.

한번 시작한 거 끝장을 봐야 한다.

하나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니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

경쟁률이 높고 어려워 안 되는 애들은 난공불락이지만 되는 애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된다.

안 되면 그 길이 아니란 걸 알고 다른 길을 찾아야지 왜들 그렇게 매달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공이 뭔지 모르나 찾아보면 갈만한 곳이 많고, 잘 찾아가면 자기 적성을 살려 열심히 하여 성공할 수 있는 길도 많다.

사 농공상 시대도 아닌데 왜 되지도 않는 공무원에 미련을 두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인지 안타깝다.

요즈음 공직 계통 인기도 시들하여 경쟁률도 떨어지고 인재들이 가기를 꺼린다는데 왜 거꾸로 간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렇게 열변을 토했다.

아우가 그래도 안정되고 전망 밝은 공무원을 하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반문하여 그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나 젊은 애들이 그렇게 안정적인 것만 추구한다면 발전이 없다는 말로 공시족 이야기는 끝났다.

그리고 언제 두 아이를 불러 밥이라도 한 번 먹어야겠다면서 옆에서 잘 좀 지켜보고 돌봐주라고 당부하는 것으로 전화 통화도 끝났다.

 

창가에 서서 비 내리는 밖을 바라보노라니 그와 관련한 생각이 이어졌다.

청양과 예산 형수님들께 수요일 정산(定山) 오찬과 관련하여 여기 대전은 차 자욱이 날 만큼 비가 쬐끔 내리고 있는데 거기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두 곳도 마찬가지인데 지속되는 가뭄 해갈에는 어림도 없다고 하셨다.

 

하다 하다 할 거 없으면 그걸 한다.

그게 뭘까.

OO 기사였다.

남들이 그리 폄하한 것이 아니다.

그 일을 하고 계신 당사자들이 3D 중의 3D의 하나라면서 스스로 하는 자조 섞인 말이었다.

 

예전에도 있었다.

정 할 것이 없으면 농사를 짓든가, 구멍가게 하든가, 칼국수 장사를 하든가 한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먹고 그냥 논다는 소리는 잘 안 했다.

뭐든지 하긴 할 것인데 좀 가려서 하겠다는 것이었다.

또 하긴 해야겠는데 어느 것도 여건이 안 맞아 못하는 먹고 대학생이라고 본인 신분을 밝히는 격이었다.

된밥 찬밥 가릴 형편이 아니었던 고난의 시절에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좀 이상하다.

 

이런 것도 있다.

그 당시 취직문이 좁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청춘들이 취업할 곳이라고는 몇몇 안 되는 대기업과 공기업 정도였다.

그것은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꿈의 직장에서 신의 직장으로 위상이 높아져 경쟁률이 치열하여 웬만한 취준생들은 몇 수까지 하는데도 들어가기 아렵단다.

 

공무원은 좀 다르게 변모하는 것 같다.

그때 그 시절에는 고등고시나 행정고시 패스 같은 것은 몰라도 하위직 공무원을 하겠다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처우는 먹고살기 어려울 정도인데 국가와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사명감은 높아야 했으니 좋아할 리가 없었다.

 

마지 못해 그 길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놀며 놀았지 안 한다는 것이었다.

도시락 싸 갖고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했던 하위직 공무원이나 일제 순사의 그림자가 어른거려 가까이하기를 꺼리는 경찰이나 위험을 항시 안고 일해야 하는 소방 같은 특수직 공무원 같은 경우는 인기가 높지 않았다.

운전 면허시험처럼 책자 한 권만 보고 가도 합격하기도 했고, 소사나 문서 수발월같은 용원을 거쳐 정식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실업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취직할 곳이 마땅치 않던 미당 세대도 철도청(코레일)이나 체신청(KT)를 가라고 하면 내가 왜 거기에 가느냐면서 손사래를 쳤다.

초등 교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2년제 초급대였던 교대는 학비도 안 내고, 군대도 안 갔다.

졸업하면 바로 발령이 나고, 교감과 교장 승진도 유리했다.

가난한 집을 생각해서 거기로 가라고 하면 핑계를 대면서 가기를 꺼렸다.

가고자 하여 시험을 치르면 낙방할 확률이 높은 학생들이 뭘 모르고 시건방지게 나오는 것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만큼 인기가 높지 않았다.

 

지금은 그들이 다 신의 직장으로 통한다.

참 격세지감이다.

너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공무원이 돼라.

부모님 말씀 따라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어느 직급의 무슨 직책이든 가문의 영광이고 고시 패스했다는 주민 축하 플래카드가 걸린다.

시답지 않은 대기업에 들어가 껍죽대고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공무원 친구들은 별것도 아닌 것이 폼잡고 까분다고 무시한다.

노량진 공시촌에는 전국에서 모인 공시족들이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밤낮없이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다.

낙방하는 해가 거듭될지라도 내 사전에는 결코 포기라는 말은 없다면서 언젠가는 합격할 거라는 희망으로 코피 흘려가면서 공부한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가 점점 바뀌고 있단다.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것 같단다.

식어버린 공시열풍에 정부는 "비상"..경쟁률 하락한 진짜 이유

일간지에 실린 기사다.

공직이 인기가 줄어들고, 공직 선호 열풍이 식어간다는 것이.

도저히 시험을 통과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공무원 세계가 문호를 활짝 개방한 것도 아닌데 한산해져 간단다.

선진국에서는 특별한 분야를 제외하고는 공적 역할이 줄어들고 민간 영역이 커진다.

후진국에서는 아방궁 같은 커다란 공공 청사가 있지만 선진국에서는 다 허물어져 가는 시골 역사같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할 정도로 초라하다.

그런 트랜드를 추종하는 것은 아닌 듯한데 공무원 인기가 시들하다니 무슨 연유인지 두고 볼 일이다.

어차피 복고풍으로 될라치면 OO 수술을 하면 예비군 훈련을 빼주던 때처럼 낳았다 하면 32녀는 기본이고 연필 한 다스만큼 낳아 대가족을 이루던 것도 함께 살아났으면 좋을 텐데 성하고 쇠하는 것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찌드는 것이 매우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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