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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신정동에서

by Aphraates 2022. 6. 16.
달맞이꽃/이용복/1972, 다음

 

달맞이꽃(Evening Primrose)

주변에서 많이 봤을 것이다.

잘 알진 못한다.

장미, 개나리, 해바라기, 채송화, 봉숭아, 메밀꽃, 목화꽃......, 우리나라에 번식하는 토종 또는 외국산 꽃들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어떤 꽃이 달맞이꽃인지 골라내보라면 자신이 없다.

1970년대 초 한국의 스티브원더(Stevie Wonde)라고 하던 이용복 가수가 부른 달맞이꽃이란 노래는 그때 그 시절의 애환이 깃든 노래여서 지금도 가끔 찾아 감상하곤 한다.

 

서울 신정동에서다.

나올 눈물도 없이 근근하던 시절이었다.

중학교(공주)와 고등학교(대전) 유학 시절에 이어 새로운 타향살이를 시작한 것이었는데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객지 생활은 학생 때와는 사뭇 달랐다.

자신이 생각해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애달픈 시절에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듣고 부르던 노래다.

물론 미당 선생보다 더 험한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춘들도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고 직접 접하기도 했다.

고생 이야기를 한다면 당신 고생은 이빨도 안 난 얘기니 셧 더 마우스(Shut the mouth, 입 다물어라)라고 무시할지 모르지만 나름대로는 고난의 역경이었다.

 

신정동이란 동명이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목동지구가 주축인 양천구의 중심지였다.

행정상으로 개편되어 다른 이름으로 변경됐을 수도 있을 것이다.

 

논산 훈련소에는 눈물 고지가 있고, 철의 삼각 지대에는 하룻저녁 자고 나면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는 백마고지가 있듯이 미당 선생에게 있어서 신정등은 한 많은 인생 고지였다.

50여 년 전에 거기에서 주경야독(晝耕夜讀)했다.

되돌아보면 어떻게 견디어냈는지 모를 정도로 고난의 세월이었다.

부황 떠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귀향하여 고향에 사는 친구 명희가 한 말이 있다.

그게 사람 사는 곳이고, 거기도 서울이라고 하느냐고 했었다.

모진 고생을 하는 친구를 보고 돌아서 울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정말로 어려웠다.

살아났으니 생지옥이라고까지 말할 순 없지만 그 언저리 수준이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성현들이나 선각자들의 말씀이니 맞을 것이다.

그러나 모두에게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도 그런 소중한 말씀이 쉽게 다가왔을 것이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다.

쓰라린 인생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그런 것을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면서 강 건너 불 보듯이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죽느냐 사느나 하는 말을 달고 살아야 하는 경험을 해본 사람은 그게 바로 지상의 생지옥이라고 간단한 한마디로 말 할 수도 있다.

 

고난의 세월이었다.

그러나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숙명적이고 그게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를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의 한 단계였지 전부는 아니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그 시절의 손익계산을 해봐도 뭐라 간략하게 말할 수 없다.

그런 것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거나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편 가르기로 말하기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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