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드러났다.
민낯에 속곳까지 다 보여주고, 다 보았다.
죽어도 못 보여준다 결사반대한 것도 아니고, 결사코 한 번만 보자 애걸복걸한 것도 아니다.
갑작스레 속이 발칵 뒤집힌 것이 아니다.
동이 트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듯이 민낯이 보이고 밑천이 드러났다.
처음에는 이슬비로 인하여 흙 속에 묻혀있던 뿌리가 조금씩 드러나다가 나중에는 소낙비가 몰아쳐 밑동까지 훤히 다 드러났다.
수습 불가다.
흙을 뿌려 감춰보기도 하고, 포장으로 가려보기도 하고, 잔뿌리를 쳐내 보기도 하고, 반대쪽에 불을 질러 눈길을 돌려보기도 하고, 보이는 것은 뿌리가 아니라 백수오라 우겨보기도 하지만 백약무효다.
다들 어안이 벙벙하다.
보인 측이나 본 측이나 차마 그렇게까지 될지는 몰랐다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
진리(眞理)는 곧 순리(順理)라는 말이 생각난다.
뭐든 억지로는 안 된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 그게 뒤바뀔 수는 없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팔자소관이든 자가당착이든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모두 인정하고 다음 수순으로 들어가야 한다.
누가 대신해 줄 것이 아니다.
공과(功過)는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내 몫이다.
과보다는 공이 크도록 천우신조의 정성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달달 다 털린 것 같아 허망하고 민망하다.
호사다마의 역순환 사이클이 흐트러지는 것 같다.
망망대해로 내몰리는 돛단배가 된 기분이다.
만회할 방법이 달리 없다.
원칙과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막연한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에 몸을 던질 수는 없다.
언제 먹구름이 몰려올지 모르는 하늘을 바라보며 손가락만 빨 수는 없다.
어게인(Again), 다시다.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다 비우고 내려놓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무너지고 흐트러진 것을 두고 어루만지며 쓰라린 실패를 경험 삼아 하나둘 다시 맞춰 나가야 한다.
일단 심호흡을 하자.
다음은 자세를 가다듬자.
그다음은 돌격 앞으로 나가자.
더 센 폭풍우가 밀려온다.
도토리 키재기로 유불리를 따질 겨를이 없다.
밑천이 실한지 허한지 살펴볼 것도 없다.
향기 나는 아름다움인지 악취 풍기는 불결함인지 냄새 맡아볼 것도 없다.
너, 나를 좋아하니 싫어하니 떠볼 필요도 없다.
영미 본토 빠다 발음으로 I see what you mean(무슨 말인지 알겠어)라고 물을 것도 없다.
생각하는 머리, 움직이는 팔다리, 보는 눈, 듣는 귀, 맡는 혀, 느끼는 피부에 따라 다 다를 테니 함부로 가타부타 말할 것도 아니다.
각기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나무아미타불 과 도로아미타불 중에 어느 불경부터 깨우쳐야 할지 판단이 안 서면 설(薛) 가수의 나침반 노래로 위안을 삼아도 되겠다.
지난 한 주 논산, 예산, 대천, 청양드 충청도 일원을 돌았다.
초가을 풍경과 함께 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인적 교류으 행차였다.
무슨 여론 동향을 파악한다거나 민생 투어를 한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르게 만나야 할 이유가 있어 돌았다.
곳곳에서 걱정의 소리가 나왔다.
가벼운 발걸음에 무거운 마음이었다.
기왕에는 그런 소리와 걱정을 하시던 분들이 아니다.
그런데 많이 달라졌다.
격앙된 표정과 날카로운 비판이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이게 바로 민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민심이 이심전심으로 통하여 공감하고 그에 합당한 길을 가야 할 텐데 정작 그래야 할 장본인들은 어찌 생각하고 있는지를 가늠해보기도 했다.
유성의 T 기획사 사장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일하는 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 안 되는 것을 억지로 해달라고 하니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이었다.
다 보여주고 다 봤다.
다 판단하고 있다.
그런 것을 안 그렇다고 억지 부리며 악전고투할 것이 아니다.
그럴 시간과 틈새라도 있으면 작은 것 하나에라도 선방하는 것이 좋다.
슬기롭고 지혜로운 성공의 길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나로부터이고 가까이로부터이다.
두 번에 걸친 3일 황금연휴의 시월 초였다.
그를 따질 처지는 아니니 좋은 날들은 다른 이들에게로 돌리기로 벌써 결정하여 기대감과 압박감 없이 자유로웠다.
한 것은 별로 없다.
그래도 결산은 있어야 할 것 같아 을씨년스러워지는 날씨를 이겨내고자 하는 소맥폭탄 특별 작전을 간단하게 펼쳤다.
미당 선생은 대천과 대전의 어돈(魚豚)이 충돌하는 내전 상태라서 몸을 사리기도 했는데 충청도 일주를 하면서 들은 걱정의 소리가 소맥폭탄 작전에서도 이어졌다.
대전이나 충남이나 같은 호서의 충청으로 함께 가는 것이다.
정도는 차이는 있으나 걱정을 공감하면서 그를 해소하는 데 미력이나마 이바지하자는 것으로 작전을 끝냈다.
연말까지 또 다른 황금연휴는 없지만 또, 그에 맘 설렐 처지도 아니지만 각자 잘 지내자는 백 다방 커피로 브라보를 외쳤다.
http://www.facebook.com/kimjyyfb
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사회복지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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