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맘은 간절하지만

by Aphraates 2023. 11. 28.

양력으로 동짓달 그믐쯤이다.

영하의 날씨가 정상일 것이다.

그런데 보슬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다.

먼 산 지리산 자락에는 산 꼭대기만 보일 정도로 운무 휘감아 돌고, 그 아래로는 잔잔한 바람이 불어온다.

고운 치매라고 하더니 낭만적인 겨울날이다.

지금쯤이라면 특히, 날씨 고약한 지리산 자락이라면 눈이 펑펑 내려야 맞을 거 같은데 눈 소식은 좀 더 있어야 할 듯하다.

 

날씨만큼이나 모든 게 부드럽다.

과정별로 주어진 업무가 끊이지 않고 쏟아지지만 대과 없이 잘 진행되고 있어 바쁜 몸에 비해 맘도 편안하다.

이런 날에는 잘 되는 것을 에스카레이션하기 위하여 또는, 한 템포 쉬어가는 의미에서라도 오늘 한 잔 어떠십니까 하고 외칠 만도 한데 그 역시도 잠잠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맘은 간절하지만 함께 가십시다 하고 호탕하게 외칠 상황이 아니다.

부기가 아직 덜 빠진 볼을 만져가면서 저는 치과 진료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니 여러분들께서는 나가시어 행사 한 번 치르시는 게 어떠냐고 힘없이 말을 할 따름이다.

일주일의 말미만 달라고도 덧붙인다.

극적으로 상황이 반전될 것은 아니다.

그런 자리에 OO님이 안 계시면 앙꼬없는 찐빵이니 다음에 하자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아도 보기 싫은 OO이 참석하지 못하니 우리들끼리 가서 맘껏 즐기자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이쪽이고 저쪽이고 다 하기 나름이 아닌가 한다.

 

미당 선생은 애주가도 폭주족도 아니다.

술을 마시고 싶다거나 혼술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술이 없이는 얘기가 안 된다.

어울리는 재미로 함께 하다 보면 술 꽤나 다루며 제법 한다는 칭찬의 소리를 듣고, 그렇게 봐라 마셔라 하다가는 큰코다치니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를 받기도 하는데 칭찬과 경고에 상관없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이다.

다 알고 있으니 나는 나대로 살게 내버려 두라는 식이다.

물론 그런 스탠스로 인하여 삶에 큰 누를 끼친다면 재고해볼 만하겠으나 그럴 정도로 우려스럽지는 않고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편이니 그대로 두는 것이 서로 이익이 아닌가 한다.

 

어쩌면 가장 바쁜 한 주가 될 것 같은데 순탄하게 나아간다.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고 그만한 노력과 정성이 깃들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만 온갖 수고를 다 해도 틀어지거나 막히는 것에 비하면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고 한 것처럼 스스로가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열의와 인내를 가져야 할 텐데 역시 그 이상을 투입해야 그 정도의 산출이 나오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과감해야 한다.

돌진할 때는 앞뒤 안 가리고 황소처럼 밀어붙여야 하지만 후퇴할 때는 미꾸라지 빠지듯이 부드럽게 빠지는 것도 삶의 지혜다.

맘은 간절하지만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서 접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쿨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안 되는 것에 미련을 둔다거나 매달린다며 사람만 추하게 된다.

 

 

<http://kimjyyhm.tistory.com> <http://blog.daum.net/kimjyyhm>

<http://www.facebook.com/kimjyyfb> <http://twitter.com/kimjyytwt>

(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계산상으로는  (2) 2023.11.30
산산조각  (1) 2023.11.29
멸치 빵  (2) 2023.11.27
입만  (1) 2023.11.26
롱 패딩  (1) 2023.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