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아들 낳기만 바라던 때다.
남아선호사상이 지배적이던 그 시절에 그랬다.
줄줄이 사탕으로 태어나는 딸은 환영받지 못했다.
끝물 딸은 이름조차도 서러웠다.
제발 딸좀 그만 낳자는 취지로 이름을 붙였다.
끝순이를 비롯하여 말숙이, 말자, 섭섭이, 종남(鐘男)이가 그 예다.
맏딸은 살림밑천이다, 장녀는 장남못지 않은 가정의 기둥이다, 무남독녀 외동딸은 금지옥엽이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 아들만 낳다가 끝에 난 고명딸은 집안의 보배다 라고 치켜 세우기도 했다.
하나 그렇게 말하는 자체가 딸은 후순위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춘향골 이야기다.
맏딸이 서서히 끝순이가 돼간다.
깃발을 들고 활기차가 출발할 때는 황소라도 잡을 듯이 기세등등했다.
깃발을 내리고 설거지를 해야 하는 지금은 행여 황소 뒷다리에 치일까봐 조심조심이다.
알파에서 오메가로 들어가는 요즈음 뒤숭숭하다.
안으로눈 분주하게, 밖으로는 조용하게 마무리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든 뭐든 끝이 좋아야 한다고 했다..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 과정에 걸리는 것들이 시작할 때만큼이나 많다.
엄살이 아니라 실제로 어렵다.
입출(入出)이 잘 안 맞는데다가 사람과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정성을 들여 작업을 해놓아 한 숨 돌리려고 하면 이것으로는 안 된다며 재작업을 해야 할 사안들도 있다.
전후좌우로 그런 상황이 되다보니 화도 치민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큰 말썽이 없는 한 대충대충 해서 끝내자” 하는 무책임한 생각도 든다.
어제도 끝순이 일의 연장선상이었다.
자동차 트렁크 가득 싣고 왔다.
폐기 대상 수준의 것들이다.
Off Line, On Line의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다시 찾게 될 만한 중요한 것들은 놔두고 그 밖의 것은 대전 집 창고로 이관하는 과정이다.
냉전 시대에 보안을 강조하던 시절에는 모든 자료는 파쇄했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다.
산업 비밀이나 지적 재산권 보호등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는 지금일지라도 그 정도의 기밀 사항은 아니다.
어지간한 자료들은 언제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적절한 수준의 보안 유지만 하면 된다.
전방 상황이 악화되면 예비군 동원을 하고, 낌새가 이상하면 민방위 소집을 하고, 여차하면 직장 비상소집을 하던 때와는 다르다.
지금은 안전 제일처럼 보안 우선을 중시할 위기 상황은 아니다.
출근 시에 맨 먼저 하던 출근부 사인도, 퇴근 시에 마지막으로 꼬박꼬박 적던 보안점검 일지도 빛바랜지 오래인데 옛날식으로 하면 동키호태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자료 보관은 백업(Backup, 원본 보관) 차원이다.
혹시 언제 찾게 될지 모른다.
사본을 한 3년 정도 개인적으로 비상 보관하는 것이다.
말끝마다 통신 보안을 외치고, 움직일 때마다 보안 유지를 강조하던 특수부대 출신의 라떼와 꼰대의 6.25 전쟁 세대로서 흐물흐물 약해지는 보안의식이 좀 미안하지만 세태가 그러니 어쩔 수 없다.
따라야만 하는 것은 불가항력적이다.
서류 정리를 하고, 화재와 보안 점검을 하고, 책상과 사무실 문을 잠그자고 하면 못들은 체 하거나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판에 보안사와 안기부를 이야기하는 것은 왕따 당하는 길을 자초하는 격이 될 것이다.
다음 주는 EPC 인계인수 사전 회의가 있다.
엄청난 서류, 자료, 도서와 도면들이 양산될 것이다.
그를 어느 수준으로 정리정돈하고 이첩 보관할지 결정해야 한다.
고민할 것 없이 있는 그대로하면 좋지 않나......,
그게 정답같지만 현실성이 없다.
몇 트럭분은 될 생산되었거나 생산된 것들을 원본대로 보관하는 것은 불필요하기도 하거니와 인력과 경비 낭비다.
가라지는 날려버리고 알곡만 챙겨야 하는데 그 가라지와 알곡을 어느 수준으로 분류하고 결정할 것인지도 간단치 않은 문제다.
건설하는 동안 이만한 자료 생산이 되었으니 알아서 쓰라면서 운영에 넘기면 거부를 넘어 욕을 몇 바가지로 얻어먹을 것이다.
시종일관 한결같아야 한다.
중간에 변화가 있었을지라도 시작과 끝이 같아야 한다.
콩을 심었는데 팥이 나온다면 잘 못된 것이다.
흙송아지를 보냈는데 금송아지를 받았다고 해서 이게 웬 떡이냐며 날름 받아 먹으며 마냥 기뻐할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맏딸로서 일 잘 해놓고 끝순이로서 괄시를 받는 것은 성공작이 아니다.
실패작이 될 텐데 그래도 편한대로만 강행한다면 그는 짱구다.
문 열기를 기다렸다가 아침 일찍 머리를 깎고 와 목욕 재개했다.
맑은 정신과 가벼운 몸으로 지도사 면접 공부를 좀 했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지만 조금씩 연마를 하는 게 좋을 듯하다.
중간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모르니 유비무환이다.
저녁은 미향에서 미당 선생을 비롯한 청양 전력소 출신 불공장 사람들 청쫄(靑卒) 번개팅이다.
남원 양반 때문에 미루고 미뤘는데 우연히 성사가 됐다.
다 참석하지 못 하는 게 흠이나 그래도 좋다.
맏순이고 끝순이고 따질 거 없는 기분 좋은 만남이니 소맥폭탄 여러 개 날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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