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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돈을 달라하네

by Aphraates 2024. 6. 11.

돈을 달라하네.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막무가내다.

맡겨 놓은 것 내놓으라는 듯이, 빚쟁이 빚 받으러 온 것처럼 그런다.

있는지 없는지에 관계없이 달라는데 안 줄 재간이 없다.

, 드리지요.

그도 감지덕지라며 순순히 내와야 한다.

얼굴을 찡그리며 못마땅하게 생각할 거 없다.

반갑고 즐거운 것은 아니나 응당 줘야 할 것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갑자기 찾아왔으나 놀라지 않고 성은망극(聖恩罔極)과 황공무지(惶恐無地)를 읊조리며 고맙게 여길 일이다.

 

1932호가 그런다.

향촌 주인장을 모신지 15년에 주행거리 24km이다.

연식으로 볼 때 몸살을 하고 피로가 누적될 때도 됐다.

미리부터 챙기고 돌봤어야 하는데 좀 소홀했다.

불찰이었다.

함부로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하는 안일함 때문에 일이 커진 측면이 있다.

 

한 보름 전이다.

차의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기어를 넣을 때나 후진할 때 울컥울컥했다.

A/S 센터에 가서 임시 조치를 하고 보름 정도 별다른 이상 없이 잘 다녔는데 갑자기 또 그랬다.

원기 회복을 바랬지만 잘 안됐다.

센터의 소개를 받아 자동 변속기 전문점에 갔다.

성실해 보이는 중년의 사장님이 한창 점검을 한 후 사무실로 와서는 오래도 타셨다면서 자동 변속기에 이상이 있어 전면 교체 수리를 해야 한다고 설명하셨다.

시간도 며칠 걸리고, 비용도 O 백만 원 정도 소요될 것 같으니 대전에 올라가셔서 수리하라고 권유하셨다.

대전에는 휴일에만 올라가고, 이런 상태로 임시 운행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며 우물거렸다.

그러자 남원을 지나다가 고장이 발생하여 오신 줄 알았다며 여기여서 근무하시면 여기서 수리하시는 것이 편리하다고 하셨다.

중요한 수리이니 수리 후에 시험 운전도 해봐야 하고, 경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으니 한 번 믿고 맡겨보시라고 하시는데 믿음이 갔다.

 

망설이며 차를 바꿔야 하나하고 중얼거렸더니 한참 더 타셔도 될 차라 하셨다.

귀가 솔깃했다.

애착이 가는 차였기 때문이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중한 것이 있다.

정년퇴임 무렵에 사 순환보직 지역인 전주로 출퇴근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갓난 엄니를 모시고 여기저기 다니고, 재취업하여 청주와 삼천포와 천안과 남원을 오가면서 손때가 묻고 정이 든 차다.

좀 문제가 있다고 해서 갈아치우는 것은 미당 선생 취향이 아니다.

그 소리에 용기가 났다.

다른 말 할 것 없이 잘 좀 해주시라고 하였더니 남원은 지역이 좁아서 누가 뭘 어떻게 했는지 금방 알게 된다며 걱정하시지 말라고 하셨다.

 

지난 금요일 일에 발생한 건이다.

점심 먹으러 나왔다가 차를 맡기고 사장님의 픽업을 받아 현장에 갔다.

퇴근하여 대전에 올라올 때는 현대의 강() 책임 님이 이백면 현장에서 남원역까지 픽업해주셨다.

가방 하나 메고 올라왔다가 가방 하나 메고 내려가는 기찻길이 약간은 어색하긴 했으나 홀가분하고 다른 묘미도 있는 듯했다.

이제 연식이 되어 돈을 달라고 하지만 노여워하지 않고 선뜻 내주는 맘이 한결 가벼워 불편한 행랑 길도 덩달아 산들바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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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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