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포시 졸면 좋으련만......,
서대전역에 도착하여 운행 안내판을 보니 19:04분 같은 시간에 같은 트랙으로 호남선 열차와 전라선 열차가 동시에 들어오는 것으로 돼 있었다.
운행 시스템도 이상하고, 이용객들도 혼란스러워 저러다가 사고가 나면 어쩌려고 그러나 하는 걱정이 됐다.
궁금도 했지만 전문가들이 다 알아서 하는 일이니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걱정과 궁금증은 안내방송을 듣고서 왜 그런지 알게 됐고, 이용을 해보니 별다른 문제도 없었다.
목포 가는 열차와 여수 가는 열차를 묶어 한 기관차가 끌다가 분기점인 익산에서 분리 운행하는 시스템이었다.
서울에서 익산까지 기관차도 두 대로 운행했는지 아니면, 한 대가 익산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한 축을 인계받아 운행했는지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몇 분 더 지체하는 것 이외는 문제가 없었다.
기차는 그렇고.
내측으로 앉이 있는 애 어매인지 아가씨인지 분간이 안 되는 여자 때문에 좀 불편했다.
그렇게 예의 없고 칠칠찮은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겉보기와는 달랐다.
2호차 열차에 올라 창 측 좌석을 찾으니 안쪽으로 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목례를 하며 “안으로 들어갑시다” 했다.
그러자 벌떡 일어나 통로쪽으로 비켜서면서 길을 열어줬다.
제법 예의를 갖춘 사람 같았다.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아서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건장한 체격과 가지런한 옷매무새로 봐서 대충 짐작은 갔다.
짧고 쪼이는 스커트에 너른 블라우스에 군화 같은 신을 신은 스타일로 여유 있게 아무런 표정 없이 스마트폰을 보기 시작했다.
미당 선생도 산업안전지도사 면접을 위하여 산업안전보건법 책을 보면서 차내 분위기에 맞춰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열차가 논산역을 지나면서부터였다.
옆의 여자가 조는 데 좀 아름답지 못했다.
가볍게 살포시 졸면 보기 좋을 텐데 좀 험했다.
비스듬한 자세로 긴 머리를 통로 쪽으로 늘어트리다가 깜짝 놀라 자세를 바로잡는다는 것이 반대쪽으로 하여 내 어깨를 치기도 했다.
입을 씰룩거리며 음 음 하는 소리도 내고,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도 놓쳐 바닥에 떨어트릴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허벅지까지 드러난 양다리는 정면에서 보면 훤히 드러날 정도로 벌려져 있고, 이따금 어깨를 긁적이기도 했다.
생면부지의 사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였다.
일행이거나 나이 지긋한 사람 같으면 어깨라도 톡톡 때려 자세를 흩트리말고 조심하라 이르기도 하고, 창가에 걸어 놓은 여름 잠바로 자칫 잘못하면 허벅지 위로 다 보일 것 같은 아래를 가려줄 수도 있겠지만 그런 선행(?)이 추행(?)이 될지도 모르니 함부로 나설 순 없었다.
차내 예절과 미풍양속을 지키려면 간섭하는 것이 맞을지 몰라도 괜한 수고로 분란을 일으킬 것은 아니었다.
에라, 모르겠다.
어디까지 가는지 모르지만 네 몸 관리 네가 알아서 해라.
그렇게 단념하고는 책을 좀 더 보다가 21시 전에 남원역에서 내렸다.
부시럭거리며 “좀 내립시다” 하였더니 이번에는 아직 잠결인지 양발을 오므리는 것으로 길을 열어줬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은 눈꺼풀이라고 하더니 졸음 앞에는 장사 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쏟아지는 잠 앞에는 예의도, 미모도, 호감도, 평범함도 필요 없이 다 무너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우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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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