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불러들인다.
마구 달려간다.
명시적으로도 그러고 묵시적으로도 그런다.
공개적으로도 그러고 비공개로도 그런다.
강하게 압박도 하고 힘없이 무장 해제도 된다.
막이고 마구고 같은 뜻의 말이지만 아름다운 말은 아닌 듯싶다.
양반과 신사다.
점잖은 체면에 차마 대놓고 그리 말은 못하지만 찌르고 찔리는 것은 엎어치나 메치나 마찬가지다.
지주) 너희가 누구 덕에 이만큼이나 살게 됐는지를 생각하면 토를 달지 말고 얼른 한 보따리 들고 달려와라.
소작인) 그야 당연한 말씀이지만 우리도 우리대로 할 만큼 했고, 모실 만큼 모셨는데 인제 와서 전후 사정 따질 거 없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시면 우리는 어찌 살라고 그러십니까.
지주) 말이 많다. 하라면 하면 아무 탈이 없을 텐데 왜 그렇게 토를 달고 뺀질거리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그런다고 달라질 것은 하나도 없으니 하든 말든 너희 맘대로 해라. 그러나 뒷날 벌어질 상황과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너희가 책임을 지고 감수해야 할 것이다.
소작인) 이를 말씀입니까. 우리는 상전의 영원한 하인이고, 죽으라면 죽는시늉까지 다 해야 할 처지입니다. 하지만 저희도 너무 어려워서 그러나 그를 헤아리고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앙망하옵니다.
지주) 이제는 그런 거 안 통한다. 누구도 예외는 없으니 소작료를 더 올리든지 땅을 내놓던지 해야 할 것이다. 우리도 더 잘 살아야 할 이유가 있으니 더 이상 말하지 마라.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 아니더냐.
소작인) 네, 어르신 그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간 무례한 측면이 없지 않았으나 그 역시도 주종(主從)관계를 망각한 것은 아니니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기를 청합니다.
지주) 알았다. 이제 뭔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우리는 상호 호혜 원칙이 아니라 명령 하달과 복종의 상하관계라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또다시 튀는 그런 불상사가 있으면 그때는 정말로 각오해야 할 것이다.
소작인) 깊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만수무강하십시오.
지주&소작인) 좋아, 좋아. 대화 끝.
막 불러들이고 마구 달려가던 둘은 그렇게 평화를 이어간다.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컨센스가 이루어진다.
표해봤자 표도 안 나고 득 될 것이 없는 감정이나 앙금은 없다.
화장실에 들어가 가 웃는다거나, 집으로 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는 그림은 그리지 말아야 할 텐데......, 그게 의문이다.
25일이다.
눈도 안 뜬 새벽부터 온갖 정기 공과금이나 정례 납부금을 빼간다는 스마트폰 신호음이 그치질 않는다.
빼갈 곳간은 바로 텅 빌 것을 알고 있다는 것처럼 서둘러 내가 먼저라고 아우성치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이지만 너무 하는 것 아니냐며 야속하다고 울분을 통보지만 맑았던 머리만 무거워질 뿐이다.
그렇다고 머리 흔들어댄다고 머리가 맑게 회복될 것도 아니니 따스한 물 한잔하면서 돌아가지 않는 머리 쥐어짜면서 대책을 생각해본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그런 말은 하지 말아라.
약육강식이라고 욕하지 말아라.
있는 자거 더 하고, 힘 센 자가 더 한다고 반항하지 말아라.
울분을 토한다고 해서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지재유경/志在有逕)고 했다.
남의 도움이 아닌 자신의 노력으로 헤쳐 나아가고 해결해야 할 과제다.
오리무중으로 막막하지만 더듬적거리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을 원망하지 말아라.
원망이 자신의 희망으로 오진 않는다.
“한 오백 년”은 그저 한 번 불러보는 것으로 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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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