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국과 청포묵과 김을 반찬으로 아침을 먹었다.
근래 들어 오랜만이었다.
아침 준비를 간단히 했으니 속도 풀 겸 좀 먹고 가라는 청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함께 먹어야 좀 먹는 사람을 생각해 줘야겠기에 그런 것이다.
어제 감리단의 황진이 집에서의 소맥폭탄+삼겹살 회식 속풀이를 겸한 아침이었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섰다.
문을 열고 나가자 데보라가 일렀다.
안 걷다 갑자기 너무 무리하지 말고 어려우면 중간에 대천 바다와 은포리 평야를 구경하며 기다렸다가 회사차를 타고 가라는 거였다.
속으로는 쓰러질 때까지 걸어볼 참이라고 각오하면서도 걱정하는 사람을 생각해 그러겠다고 했다.
대천 방조제로 들어섰다.
시민 걷기 운동 장려 차원에서 잘 정비된 바닷가 산책길이다.
길이 반듯해서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다리가 후들 거리고, 발바닥도 아팠다.
등에 땀도 나고, 옷매무새와 자세가 흐트러졌다.
원래 13-14km 길을 2시간여에 걸쳐 도보로 완주할 것이라 믿진 않았다.
가다가, 앉았다가, 사방팔방을 두리번거리다가 하는 스타일로 그 먼 길을 걸어서 그 시간에 간다는 것은 애당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좀 빨리 걸으면 되지 않는가 할지 모르지만 그 것은 쌀 없어 밥 못해 먹으면 라면 끓여 먹지 그렸느냐는 말과 같다.
완전군장으로 산악구보를 하던 최전방 특수부대 출신이지만 옛날 얘기다.
언젠가부터 다리에 힘이 쪽 빠져 걷기와 구보와 등산은 완전히 잠뱅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마에 땀도 났다.
속도 조절이 저절로 됐다.
시간을 다투는 것이 아니어서 쉬엄쉬엄 걸었다.
날이 밝아지면서 저만큼에서 다가오는 사람 형체가 보였다.
그 사람은 내 쪽으로 오고 내는 그 쪽으로 가니 가속이 붙어 얼마 안가 보령 환경사업소 인근에서 마주쳤다.
생면부지의 사람이다.
반가울 것도 안 반가울 것도 없다.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해야 했다.
“안녕하십니까” 하고 먼저 인사를 했다.
미당 선생보다는 연상으로 보이는 노익장이 듣던 라디오를 끄고는 “안녕하슈” 하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목에 건 발전소 출입증을 보면서 “이른 아침부터 어디를 그리 바삐 가슈. 그건 뭐요”라고 물었다.
“아, 저기 발전소에 갑니다. 이거는 거기 출입증입니다” 라고 했다.
노익장이 애처로운 눈으로 “그러슈. 청소하러 가슈. 발전소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는데유” 라며 다시 응시했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하고 멍했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이내 알아 들었다.
“네, 청소하러 갑니다. 걸어 가다가 회사 차 오면 타고 가야지요. 매일 그러는 게 아니고 가끔 그럽니다” 라면서 웃었다.
노익장이 “걷기 좋은 길이니 잘 가슈” 하고는 자기 갈 길을 갔다.
대천 사택에서 10km 지점인 주교리 어촌계 해변 노상 주차장에서 이/임 이사님께서 픽업해 줄 회사 차를 기다렸다.
청소하러 가느냐는 말이 떠올랐다.
웃음이 나왔다.
노익장의 측은지심이 고맙기도 했다.
머리도 희끗희끗한 게 나이도 들어 보이고, 허름한 것이 초라한 행색도 그래 보이고, 새벽같이 걸어가는 것이 발전소로 청소하러 가는 사람처럼 보였는가 보다.
한 방 얻어맞은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동정심을 살 처지는 아닌데......,
그러나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젊어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나이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격언을 상기하는 것도, O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속담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청소를 하면 어떻고, 심부름을 하면 어떻고, 남들이 기피하는 3D의 궂은 허드렛일을 하면 어떤가.
열심히 일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자 아름다운 사람이다.
어려운 처지의 사람을 걱정해 주는 노익장도 아름다운 사람이다.
하는 의미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http://kimjyyhm.tistory.com> <http://blog.daum.net/kimjyyhm>
<http://www.facebook.com/kimjyyfb> <http://twitter.com/kimjyytwt>
(kimjyyhm@hanmail.ne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공학석사/전기안전기술사/PMP, 사회복지사/요양보호사/국내여행안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