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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생색

by Aphraates 2008. 7. 12.
 

애경사(哀慶事)를 치루고 나면 감사의 인사를 하게 된다.

인사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아직도 예전에 하던 식으로 직접 찾아가거나 모셔서 인사를 하거나 감사장을 보내는 것이 주류를 이루지만 서서히 이메일과 전화를 통하여 인사를 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어떤 식이 되었든 간에 함께 슬퍼하거나 기뻐해 준 정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은 하나의 예의로서 필요할 텐데 간소하게 하는 방법이 좋을 듯하다.


헌데 개중에는 몰라서 그러는지 아니면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애경사를 치르고도 아무런 인사도 없이 그냥 지나치는 무례를 하는 경우도 있다.

청장년층에서 생각하면 상거래를 하고 주고받는 영수증도 아닌데 그렇게 생색을 내고 꼭 확인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경사나 애사 집에 직접 가지 못하고 부조금으로 인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인사가 잘 됐는지 도중에 배달 사고가 발생했는지 궁금하다는 것이 옛 습관에 젖어 있는 노년층의 이야기이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 확실하게 하고 깐깐한 사람들은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기다리다가 거꾸로 상주나 혼주한테 전화를 하여 일은 잘 치렀느냐고 물어보면서 자기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하고 부조금으로 대신하는 결례를 하였다는 인사로 답례를 하지 못한 사람에 대해여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한다.


애경사 인사하는 것과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식으로 잘 안하지만 예전에는 부서(모임)별로 단체 부조금을 전하거나 비공식적인 자금 또는 판공비로 부서장(단체장)의 부조금을 담당자가 처리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면 이중으로 인사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것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어서 착오에 의한 것이지만 없는 집에 돈 보태주는 것이 아닌 상부상조의 정 표시인 부조금인데 한 사람 이름으로 두 번 씩이나 인사를 한다면 겨레라고까지는 할 거 없을 거 같지만 모양새가 영 안 좋은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모른 체 하거나, 양측에서 잘 아는 사람들끼리 쥐도 새도 모르게 은밀하게 처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또한 여기저기 겹친 애경사집에 인사 다니다 보면 결혼 봉투(축결혼)와 조문 봉투(부의)를 서로 바꿔 인사하고, 빈 봉투로 인사만 하고서 근사하게 한 상 때려 먹고 의기양양하게 나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럴 때도 가까운 사람들이 서로 연락하여 해결하곤 했다.

그런가 하면 답례 인사를 하면서 난처한 경우도 있다.

서로 인사를 나눌 사이인 사람들이 많은 곳에는 직접 찾아가서 답례인사를 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그 곳에는 모르는 사람도 있고, 알기는 하지만 부조금을 전하며 인사를 나눌 사이가 안 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과 마주치면 서로 어색하기 때문에 선뜻 찾아가기 어려워 망설여진다.


부자인 사람이 기계가 팽팽 돌아가게 만드는 윤활유 역할의 할 거금을 희사하거나 빈자인 사람이 자기 밥값도 안 되는 소금을 기부하거나 관심을 기울이고 정을 표시하는 의미는 같은 것이다.

그런데 거금 희사자한테는 코가 땅이 닿도록 절을 하며 지속적인 배려를 부탁한다고 조아리고, 소금 기부자한테는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그런 식으로 도움이 안 되니 다음부터는 올 것도 없다는 식으로 처리를 한다면 돈 만 알고 정을 모르는 그 사람들은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아울러서 그도 저도 아니고 아무런 답례도 없이 묵묵부답인 양식 없는 무례한 사람들은 거금과 소금을 차별하는 사람들보다도 더 한심하여 그런 일을 아예 안 하는 것이 자신들이나 이웃들에 도움이 되는 무용지물일 것이다.

하기사 그도 저도 필요 없이 가까운 친지들이 모여 축복하거나 애도하는 서양식으로 일을 치루면 좋겠지만 동양적인 관습과 사고방식으로는 그도 어색하니 일을 치르려면 이래저래 어려움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다.


인구는 늘어나지 않고, 주머니 사정은 달그락거리는 형편인데 애도하고, 축하하고, 찬조해야 할 곳은 왜 이렇게도 늘어나는 것인지 부도나겠다고 하소연하는 주변의 소리를 듣고 그를 직접 체험하면서 인사와 답례도 적절하게 잘 해야지 안 그랬다가는 결례를 하고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생색내기가 아닌 주일날 아침의 단상으로 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