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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그래, 견디어 보자

by Aphraates 2008. 7. 12.
 

이 것이 먼저인지 저 것이 먼저인지 분간할 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으로서는 처음인 거 같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옆집 친구 천수가 처음 보는 사탕을 먹는 것을 보고 혹시 하나 주려나 하는 생각에 쫓아다녔다.

집이나 밭에서 일하시는 엄마는 늘 내 곁에 있다는 것을 의지하며 밥만 먹고 나면 함께 노는 친구이니까 사탕 하나 정도는 줄만도 한데 같이 노는 것은 노는 것이고 사탕은 사탕이어서 주질 않았다.

그 아이가 하라는 대로 다 하고 눈치를 보면서 한 나절을 여기저기로 따라다녔는데도 입에 넣었던 사탕이 다 녹으면 돌아 서서 하나 까 제 입에 홀라당 넣고는 우물거릴 뿐 주질 않았다.

사탕을 먹고 싶어 하는 애타는 모습을 우리 엄마나 형들이 봤으면 네가 무슨 거지새끼냐며 된통 혼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로지 사탕하나 얻어먹으려는 욕심으로 나하고 싸우면 늘 지고 얻어맞아 울던 그 아이한테 거꾸로 꼬봉이 되어 질질 끌려 다녔다.

그러나 날도 더운데 꼬봉 녀석을 오야지로 모시고 따라다니느라고 땀 흘리고 힘만 뺐지 사탕 한 알 못 얻어먹고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서는 애꿎은 엄마만 귀찮게 졸라댔지만 학고방도 없는 시골에서 장날이야 돼야 엿 가락이나 사 들고 들어오시던 엄마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시렁에서 맞대가리없는 보리 개떡과 찬물을 내 오시면서 다음 장에 가면 을 눈깔사탕과 건빵을 사다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시고서야 가까스로 진정이 되어 땀 흘리고 지쳐서 마루에 누워 잠이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모르면 몰라도 잠을 자면서도 그 아이가 먹던 사탕이 생각나서 잠꼬대를 했을 것이다.

아무리 주전부리 할 것이 없고, 사탕을 먹고 싶어도 그렇지 그렇게 참을성이 없어서야 되겠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어린 아이가 친구가 먹는 사탕을 하나 얻어먹고 싶어 하는 것은 순수한 사람의 욕망인지라 부끄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다만 문제라면 참을성이 없는 요즈음 아이들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생각하고 노력하여 올바른 자세로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쉽게 얻으려 하고 그게 안 되면 못 된 짓을 하는 것이 문일 것이다.


벌써 반세기가 지난 옛날이야기인데 그 때 그 친구는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은 내가 어렸을 적에 그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다른 동네로 이사를 하였다.

너무 어릴 때(4-5살 정도)라 추억의 감미로움도 없고, 그 친구의 모습과 그런 일들에 대한 아득한 기억과 함께 그 친구 이름만이 생각난다.

살아있다면 지금도 수소문해 보면 만날 수 있겠지만 만나봐야 완전히 남남 같은 분위기일 텐데 그럴 필요는 없고 그저 그 때 그런 일이 있었다 하는 것만 남기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 먹고 싶어도 나에게는 없으니 견디어 봐?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바라는 바에 대해서 욕구충족을 하지 못하면 다른 일도 안 되는 데 먹고 싶은 것을 참는다는 것이 그게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장마철인데도 맛보기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인지 연일 폭염(暴炎)이 계속되고 있는데 집이고 사무실이고 에어컨을 가동시키지 않은 채 견디고 있다.

시원한 여름을 보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고, 맘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지만 그저 참고 지낸다.

에너지 절약 정책에도 호응하고 가계살림에도 보탬이 되는 일이니 많은 사람들이 그러는 것처럼 당신도 동참해야 할 것이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거는 아니다.

추운 겨울에도 발을 거실 차가운 새시에 대거나 배를 차가운 바닥에 대고 자야 편한 체질에다가 아지랑이 피는 봄만 되면 차 에어컨을 가동시켜 써늘하게 하고 다녀야 쾌적한 기분으로 운전을 할 수 있는 체질이다.

그리고 조금만 더워도 땀을 흘리며 짜증 부려 일이 안 되는 체질인 나로서는 이 더운 날씨에 손바닥만한 선풍기 하나 틀고 있는다는 것은 인간 극기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오늘은 회사로 출근을 하면서 데보라한테 폭염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에어컨을 틀 수 있도록 에어컨 팬 위와 아래에 빼곡하게 차 있는 화분을 정리할 것을 부탁하였고, 사무실에서는 에어컨 메인 스위치를 올리지도 않고 앞뒤로 흥건히 흐르는 땀을 서울 형수님이 보네주신 부채로 부채질을 하면서 견디었다.

그리고 퇴근해서는 견디는데 까지는 견디어 보려고 창문이라는 창문은 다 활짝 열어놓고 샤워를 하고 부채질을 하면서 참았다.

어렸을 때야 친구가 먹는 사탕이 먹고 싶어서 나오지 않는 사탕을 내 놓으라고 엄마를 졸라댔지만 지금은 손가락 하나 까딱만 하면 가슴 써늘하게 만드는 바람이 부는 에어컨을 틀 수 있지만 자력으로 견디어 보는 것이다.


김 선생, 우습고 엉뚱한 면이 있어.

더우면 시원하게 하고, 다른 일을 더 잘 하면 될 것을 뭘 착각하고 있는 같은데 그런다고 누가 상 주나?

상은 무슨 상?

내가 이런 이야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는 사람인지 알지도 못할 텐데 상 받을 일은 아니고 가장 싫어하는 것을 가까이 하면서 인내력을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이고, 견딜 수 있으면 올 여름 내내 그래 보려고 그러니 신경 쓰지 마.


앗싸, 파이팅!

그래, 견디어 보자.

영하 20도의 임진강 칼바람 혹한에도 산 계곡에서 찬물로 목욕하다가 이러다가 얼어 죽는가 보다 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태도 견디어 냈는데 이 까짓 땀 조금 흘리는 더위쯤이야 누어서 떡먹기에 새 발의 피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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