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버리면 죄 받는다.
이 소리는 내가 어렸을 때인 우리나라의 엥겔계수가 60%대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했던 1960년대부터 엥겔지수 20% 중반대로 지구촌 10위권의 선진국으로 진입한 지금도 여전히 듣는 소리다.
그렇게 들어왔으니 지겨울 만도 할 거 같은데 아무런 부담감이 없이 들리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 때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어서 버릴 음식이 없었다.
그런데도 먹는 음식을 소중하게 여기시는 어른들은 그렇게들 말씀하셨다.
어머니께서도 밥 먹을 때 마다 그 말씀을 하셨다.
밥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알뜰살뜰하게 살림을 하시는 스타일의 어머니가 아니었지만 그 말씀을 하시면서 음식 버리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어머니도 젊어서부터 그 말이 몸에 밴 거 같았다.
그 때는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었다.
때문에 끼니때마다 음식을 새로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김치 같은 것은 찬물에 담가 놓거나 줄에 매달아 우물 통에 보관하였고, 남는 보리밥은 부엌 시렁이나 솥단지에 두었다.
완벽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음식을 보관하는 지혜를 발휘한 것이었는데 그렇게 조심을 해도 시는 음식이 있었다.
그래도 신 음식을 버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것을 끓여서 혼자 드시거나 햇볕에 말렸다가 다른 음식을 만드는데 쓰곤 하셨다.
또한 가장 흔한 반찬의 하나였던 고춧잎장아찌 같은 것이 조금 남아도 그냥 버리지 않고 모아 두었다가 찌개를 끓이는데 이용하시곤 했다.
어머니는 그런 습관이 지금도 몸에 배어 있다.
집에서는 누가 먹어도 다 먹는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별 말씀이 없지만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키면 음식을 버리면 안 된다며 어떻게든 다 드시려고 하신다.
그래서 형수님께서는 그런 어머니의 고집스런 습관을 역이용하여 식사를 하시게 하기도 한다.
연로하시다 보니 몸이 조금만 불편하셔도 식사를 안 하시려고 한다.
조금만 잡수시면 회복될 거 같은데 입맛이 없다며 안 드실 때는 슬며시 집 근처의 아는 식당으로 모시고 간단다.
가서 주인한테 어머니가 드실 만큼의 양으로 한 그릇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여 음식이 나오면 이거는 어머니 몫이니 다 드셔야 한다고 하면 좀 무리를 하시면서도 다 드신다는 것이다.
물자와 식량이 부족하여 살아가기 어렵던 시절에 어른들은 근검절약이 몸에 배 있었다.
특히 주곡(主穀)인 쌀과 보리쌀에 대하여 유달리 애착이 심하여 곡식 한 알, 밥풀 하나라도 헤프게 버리는 경우가 없었다.
그러는 것은 근검절약 정신이라기보다는 보릿고개같이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을 거쳐 오면서 당신들 몸에 밴 생활 자체였다.
땅에 떨어진 이삭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줍고, 아이들 볼따구니에 붙은 밥풀 하나도 떼어 얼른 입에 넣으며 먹는 음식을 버리면 죄받는다는 확고한 옛 어른들의 생활 신념은 후세에도 대대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음식을 알뜰하고 맛있게 먹는 사람들이라면?
시장이 반찬이라고 하며 간장과 고추장까지 닥닥 긁어 먹는 배고픈 사람들, 뭐니 뭐니 해도 배곯는 설움이 제일 크다는 뼈저린 경험을 한 가난한 사람들, 가리지 않고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좋다는 영양사(의료인)들, 하나를 먹더라도 맛있게 먹어야 한다는 미식가들, 보통 사람은 1인분이면 찍 하지만 10인분을 먹고 나서도 서운해 하는 거구의 운동선수들, 밥 벅을 때 잠시 한 눈이라도 팔았다가는 순식간에 빈 그릇만 바라봐야 하는 한 타스는 되는 형제자매들을 둔 흥부네 같은 다산가족(多産家族)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데 이런 좋은 기회가 어디 있느냐며 볼이 터지라고 먹어 대는 초대받지 않은 식객(食客)들......, 이 밖에도 김치 쪼가리 하나 안 남기도 잘 먹는 사람들이 많다.
그 정도 까지는 아니어도 음식을 알뜰하고 맛있게 먹는 사람들 중의 한 부류로 가톨릭인을 들 수 있다.
음식문화가 바뀌고, 세대교체가 되면서 지금은 예전과는 좀 다르지만 아직도 천주교 신자들끼리 모이면 남기지 않고 아주 알뜰하게 음식을 먹는데 그 것은 사람들과의 모임을 비교해보면 확실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헐벗고 굶주리는 형제들이 많은데 나만 배불리 먹고 남기는 것은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나누어야 하는 신자의 도리도 아니고,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당신께 대한 예의도 아니라는 신심이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그 것이 각자의 몸에 배어서 그럴 것이다.
다 하느님께서 주신 고마운 선물인 내 맘대로 버린다는 것은 큰 죄악이니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태오복음22.22)” 라는 가르침을 늘 상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음식의 종류가 많고 좋아도 내 입맛에 맞는 것만 조금 먹고 마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식당에서 음식을 시킬 때는 항상 적당하게 조금만 시키자 말하고, 종업원들한테도 안 먹는 반찬들은 죽 가져오지 말고 달라고 요청하는 것만 가져오라고 부탁한다.
누구를 만나거나 모임 하는 술자리에서도 그런다.
소맥 몇 컵에 소고기 궈서 몇 점 먹고, 국물 넉넉하고 담백한 몇 젓가락의 소면 한 그릇이면 그만이다.
물론 일행들은 그 정도까지 조촐한 것은 원하지 않고, 식당 측에서도 내가 그렇게 간소하게 달라고 하여도 가져올 것은 다 가져오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기본 마인드는 음식을 남기지 말자는 것이다.
서재에 앉아서 무엇을 하다 보면 아파트 동 앞에서 “탁! 탁! 탁!”하는 소리가 새벽에서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간간이 들린다.
그 소리는 주민들이 배분된 잔반통을 갖고 나와 음식물 분리수거 통에 부우면서 잔반통의 음식물을 털어내느라고 두드리는 소리다.
주변이 잘 안 보이는 새벽과 밤에는 운동복이나 반바지 차림의 남자들이 눈치 보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두드리고, 다 보이는 훤한 낮에는 앞치마나 원피스 차림의 여자들이 당당하게 두드린다.
관리 사무소에서 비치한 대형 음식물 분리수거통 2개로도 부족한지 어떤 때는 거기에 붓지 못한 잔반통이 죽 놓여 있다가 매일 새벽에 오는 음식물 수거 차량이 와야만 이 해결이 된다.
내가 사는 아파트 동의 호수가 90호이다.
한 집에서 3일에 한 번씩 잔반통을 비운다고 하면 하루에 30호 정도가 잔반통을 갖고 나와 비운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버리는 시간대를 구분 안 하더라도 잔반통 두드리는 소리가 자주 들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그렇게 줄이자고 하지만 주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먹매가 좋거나 안 좋거나 한 집을 가릴 거 없이 버려지는 음식들이 많은 것이 현대 생활패턴이고, 식당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남는 음식을 그냥 버리는 것이 아니라 분리수거하여 재활용 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돈으로 환산하면 15조원 정도이고, 그를 처리하는데 별도로 5천억 원 정도가 소요된다는 자료를 본 적이 있다.
외국과 비교하면 어떤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낭비인데 우리 민족의 음식문화와 생활습관을 감안할 때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
그렇다 할지라도 어렸을 때부터 음식을 버리면 죄받는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생활습관에 길들여지도록 하는 것은 필요할 것이다.
여보시오, 새벽의 남자와 낮의 여자 분!
음식물 분리 수거통 탁! 탁! 탁! 두드리는 것을 우선 한 달에 한번 씩만 줄이도록 해 보실 의향은 없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