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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만회

by Aphraates 2008. 8. 16.
 

올림픽 경기 중계방송을 보다 보면 점수를 딸 때는 어렵게 따고, 줄 때는 쉽게 줘서 안타까울 때가 있다.

상대편 선수 입장에서 볼 때는 행운이겠지만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경기에 운이 안 따라 주는 불운인 것이다.

그리고 막판고비를 넘지 못하는 것이 속상할 때도 있다.

아나운서나 해설자 말대로 정신력으로 조금만 더 하면 이길 거 같은데 그 고비를 못 넘기고 무너지는 것이다.

하기사 그런 것은 관전 포인트에서 보니 그런 것이지 직접 땀 흘리며 뛰는 선수와 감독 입장에서는 그게 최선을 다한 한계일 수도 있으니 금메달과 동메달의 차이가 이렇게 큰 줄은 몰랐다는 탄식이 나오는 분위기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


무엇이든 실수하거나 잃은 것이 있으면 만회(挽回)하자.


실수하거나 잃은 점수를 만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려면 그 이상의 투입이 필요하고, 거기에다가 타이밍을 놓치고 난 다음에 만회하려면 그 몇 배의 투입이 필요한데 그나마 타이밍이 지난 것은 될지 안 될지 장담할 수가 없다.

한 쪽의 실력이 월등하여 차이가 많이 날 때야 잠깐 실수하여 실점한 것은 정신 차리고 분위기를 바꾸면 바로 만회할 수 있으니 별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양측의 실력이 팽팽하여 도토리 키 재기일 때 실점한 것을 만회하려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문제가 된다.

운동경기에서 실점한 것을 만회하려면 힘들 듯이 골프, 슬롯머신, 경마, 마작과 고스톱 같은 게임에서도 한 번 호되게 터져 크게 돈을 잃으면 복구하기가 어렵다.

게임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봐야 한다며 한 방이 있다고도 하지만 그 것은 상대방이 아주 하수이거나, 술에 취했거나, 나는 돈이 싫어 다 잃어주겠다고 작심하고 막 풔주는 자비를 베풀 때나 통하는 것이지 평상시 같으면 어림도 없는 소리로서 대박 한 방을 기대하고 무리하다가 더 터지기 마련이다.


그러면 만회하려면 무엇이 중요하고, 어찌해야 하는가?

만회하겠다는 의지와 시의적절한 타이밍이 중요하다.

실점한 것에 굴하지 않고 그를 마음에 담아 두지 않으며 만회하여 승리하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타이밍을 맞춰 그를 실천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잘할 수만 없는 것이 운동 경기다.

하다보면 체력도 딸리고, 주변 여건도 변화하고, 게임 흐름에 따라 마음도 느슨해져 좋은 컨디션을 계속 유지할 수만은 없어서 아차 하는 순간에 점수 차이가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작전 타임을 불러 선수를 쉬게 하면서 새로운 의지를 갖게 해 주면서 만회할 타이밍(Timing) 조절을 하게 해주는 것이다.

돈내기가 걸린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안 될 때는 다음 기회를 기대하는 의지를 갖고 자중을 해야지 대학 다니는 아이한테 보내줄 등록금인데 다 잃었으니 오늘 어떻게 해서든 만회해야 한다고 카드 게임에서 조잔한 투 페어(Two Pair)를 잡고 이미 에이스 풀(Ace Full)을 잡고 있는 사람한테 앤드 앤드 하는 배팅을 했다가는 등록금은 고사하고 아이를 불러내려 아르바이트를 시킬지도 모를 정도로 쪽박을 찰 수도 있다.


새로 나게 하소서.

하느님의 자식으로 새로 나서 당신보시기에 좋게 살자는 의미다.

다들 그 말씀을 잘 실천하는 거 같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없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니 나한테 그런 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진솔하고, 선하고, 아름답고 살고 싶어 할 것이다.

소박한 바람이기도 하고, 지극히 어려운 일이기도 한데 당연히 가능한 일이나 몸과 마음에 달라붙어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때를 벗어내고 새로 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새로 나서 새롭게 살면 참 좋겠지만 그 것은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그 판단은 당신께 맡기고 현실적으로 평범하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만도 큰 은총이라 여겼으면 좋겠다.

머리와 손발이 따로 움직이는 비정상적인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정신계통 아니면 신체계통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것이니 지체하지 말고 종합병원으로 응급 후송시켜 대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그렇게 만은 할 수 없다는데 만회의 한계가 있다.

그런 환자는 치료받지 않으면 얼마 못 가서 쫑(終)난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할 형편이 안 되는 것이다.


목장에서 목동과 양떼가 따로 놀 수는 없다.

그런데 제 각각이라면 어디엔가는 문제가 있는가 하면 어디엔가는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이니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목장은 황폐화되고, 목동은 양떼들한테 시달려서 바짝 마르고, 양떼는 스트레스 받아 풀도 안 뜯고 젖도 내지 못한다.

만회할 타이밍을 맞춰서 치료를 해야 한다.

치료가 끝난 다음에는 “양 떼를 돌보는 목동으로서 주인에 대하여 책임과 의무를 다 하고 있으며, 목장을 평화롭게 만들고 양떼를 편안하게 하고 있는가?  목동을 따르는 양떼로서 목동의 말을 잘 듣고 있으며, 젖을 펑펑 잘 내고 다른 양들의 규범이 되고 있는가?” 라고 물어보면 자신 있게 “예” 하고 대답하는 지 확인하여 대답이 시원치 않으면 재치료 받게 해야 한다.


근본이 잘 못 됐으면 고쳐야 한다.

그리고 근본은 그게 아닌데 실수해서 그렇다면 만회를 해야 한다.

고치거나 만회하자면 고통이 심하겠지만 그렇다고 피할 것이 아니다.

삼년구미불위황모(三年狗尾不爲黃毛:개꼬리 삼년 묻어도 황모 안 된다) 즉, 바탕이 못된 것은 세월이 많이 가도 좋아지지 않는다는 속담을 고착화시킬 것이 아니라 그럴 가능성도 다분하다는 것을 경계하며 열 잃기는 쉬워도 하나 얻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니 실수하고 잃은 것을 만회하기 위하여 온갖 수고를 다 해야 한다.


사람들은 어려움에 처하면 그를 벗어나기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이라고 외치며 두 손을 불끈 쥐고 일어선다.

개과천선(改過遷善), 면모일신(面貌一新), 심기일전(心機一轉), 일대전환(一大轉換), 대오각성(大悟覺醒), 마음을 비웠다는 등등의 말도 한다.

그러나 바로 눈앞에 요지부동인 큰 바위가 있고 산 넘어 산인지라 그 때의 마음뿐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천우신조를 기대하며 바위에 계란치기라도 해야 하고, 넘고 넘어서 못 넘을 산은 없으니 넘어야 한다.

근본을 고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니 내가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떤 고난이 따르더라도 그를 두려워하지 말고 머리를 디밀고 밀어붙일 일이다.


올림픽 경기를 응원하며 한 참 신나게 뛰어 놀거나 산과 들로 뛰쳐나갈  방학이자 연휴기간이다.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그를 뒤로 하고 물과 성령의 힘으로 새로 나겠다고 교육에 들어갔다.

오늘은 그 교육을 마치는 날이다.

언제부터 마셨는지 모르겠지만 새벽녘 동이 틀 때까지도 술에 취해 흐트러진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고성방가를 하는 또 다른 아이들을 보니 참회와 감동의 눈물을 흘릴 교육관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두 부류의 아이들을 비교 평가할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고, 부족함을 만회하며 새로 나려는 노력이나 하고 있는지 모르는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생각도 이 때 뿐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끄럽기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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