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슬픔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고 한다.
군자가 성인이 되는 데 뜻을 두고 인(仁)과 예(禮)를 실천하며 그 경지에 도달키 위해 항상 근심한다는 종신지우(終身之憂)이고, 다른 하나는 한나절의 슬픔이라는 일조지환(一朝之患)이라고 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데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에 대하여 종신(終身)토록 걱정을 해야지 하루아침에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부귀영화에 대하여 슬퍼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라고 한다.
필자는 그런 것을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무엇이든 말은 쉽게 잘 하는 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 거는 아니고, 나도 슬퍼.
구구절절이 옳은 성현들의 가르침을 접하면 기뻐서 환호의 박수를 치며 그를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어.
그러나 사람이 미천한지 이룬 것 없이 주저앉는 것이 태반이야.
그럴 때 마다 내가 왜 그런 진리를 알았던가에 대해서 후회도 해 보았고,다시는 알지 않겠다는 오기도 부려보았지만 그냥 그렇게 넘기기에는 너무 억울하여 누구 눈치 볼 거 없이 하소연을 해 보는 거야.
그러니 너는 잘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두 번 슬프게 하는 거야.
그래도 그렇게 물어본다면 할 말이 없어.
슬픈 마음에 그를 보듬어줄 수 있는 다른 것을 찾고 또다시 그런 작업이 되풀이 할 수밖에 없어 종신지우는 그만두고 일조지환에 대한 생각도 할 겨를이 없는 아주 못난 사람이 되고 말아.
올 해는 한 번도 안 켜고 비상시를 대비하여 전원만 넣어 둔 에어컨 온도계가 연일 32도를 가리켰었다.
그래도 시멘트 외벽이 불 달궈지지는 않아서 그런대로 견뎠다.
그런데 말복이 지나자 하루 상간으로 온도가 27도로 뚝 떨어져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게 느껴진다.
사람이 참 예민하기도 하고 간사하기도 한 거 같다.
며칠 전만 해도 에어컨을 켤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이면서 하루에도 몇 번 씩 미지근한 찬물로 샤워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더위를 참았는데 온도가 몇 도 내려가니 찬물로 샤워하면 너무 차가워서 더운 물을 섞어야만 샤워하기에 적절한 온도의 물이 되다니 너무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선들선들하여 다 열어 젖혔던 창문을 반쯤 닫고 나니 지내기에 적절한 온도가 되었고, 침대에 누우면 더운 바람이 발목을 덥게 만들더니 이제는 방으로 스미는 바람에 발목이 시려 침대 시트를 찾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내내 가물더니 오늘은 때 아닌 장맛비가 내리는지 쉴 새 없이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다.
더위가 한 풀 꺾여 좋고, 가뭄을 해소시킬 비가 내려 좋은 날이다.
종신지우 같이 어려운 말은 뒤로 하고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정든 님과 함께 애호박을 총총 썰어 넣고 노릿노릿하게 익힌 따스한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 마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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