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기며 여유롭고 멋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리움을 바라만 보다가, 그리움을 찾아 의욕적으로 움직이다가, 그리움을 잊고 허욕에 빠져 그저 그렇게 실패한 인생이 된다면 참 허무하고 슬플 거 같다.
소식이 없던 윤(尹) 작가한테서 전화가 왔다.
한 동안 함께 즐겁게 활동하다가 언젠가부터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연락이 끊겼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어서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는데 다시 연락이 되어 무척 반가웠다.
가정과 가족 문제, 경제사회생활, 문단활동, 취미생활 등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그래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느냐고 근황을 물었다.
그랬더니 다른 것은 큰 변화가 없고 전에부터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면서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더니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되었다니 아주 잘 됐다며 축하를 해 주었다.
윤 작가는 부부사이가 원만하지 못하지만 아내가 양해만 해 주면 강원도 대관령 인근에 작고 아름다운 펜션을 하나 지어 관리하면서 살고 싶다고 하였는데 그 것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직장인인 부인은 서울에 그냥 남아서 전처럼 아이들을 돌보며 살고 있고, 특정한 직업이라고 할 것도 없이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던 자기만 간단한 짐 챙겨 싣고 내려갔단다.
펜션을 관리하여 돈도 벌고, 하고 싶은 일도 하면서 잘 지내고 있는데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공기 좋고, 경치 좋고, 속 썩을 일 없는 지상천국이니 언제 한 번 들리라하며 개략적인 펜션 위치와 이름을 가르쳐 줬다.
나도 좋아하는 곳이고, 대충은 아는 곳이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니 기회 봐서 조만간에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윤 작가는 함께 문단 활동을 할 때 보면 여러 가지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럴 때 마다 술잔을 기울이며 위로해 주었지만 저러다가 오래 가지 못할 거 같다는 걱정이 되었었다.
그런데 그런 나의 걱정을 불식이라도 시키듯이 안정을 되찾고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며 지내고 있다니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게 얼마 전이었는데 오늘 윤 작가가 큰 위기에 처해 있구나 하는 것을 직감하고는 깜짝 놀랐다.
휴가철이 끝나니 펜션의 피크도 지났을 거 같아서 주말에나 한 번 가 볼까 하고 윤 작가가 알려준 그 펜션을 인터넷으로 검색하였다.
많은 펜션이 있었는데 그 펜션도 소개가 되어 있었다.
아름답고 인상적인 펜션 전경과 함께 예약 접수 전화번호가 있었다.
피시 모니터에 그 펜션 홈페이지를 펴 놓고서 국선전화 번호를 눌렀다.
휴대폰이 아닌 그 전화를 받고 얼마나 놀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좋게 말해서 취미삼아 하는 펜션 관리이지 아무래도 손님을 유치하고 돈을 받는 영업활동인데 그런 일을 하면서 사람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궁금하였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것은 남자는 분명한데 윤 작가의 목소리가 아닌 거 같아 확인을 하였다.
“대관령 OOOO펜션 윤 작가님이시지요? 대전의 김(金)입니다. 어디 불편하신지 목소리가 좀 이상하네요” 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상대방이 “여기가 OOOO펜션은 맞고, 전화번호도 맞지만 윤 작가란 사람은 없는데요. 뭔가 착오가 있으신 거 같네요”
전화를 잘 못 한 것은 분명 아니어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하였다.
“서울 윤 작가님 펜션 아닌가요? 새로 지었는지 아니면, 지은 것을 구입하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지난봄부터 그 펜션을 관리하셨다고 하던데요? 그럼 실례지만 전화 받으시는 분은 누구이신가요?” 라고 물었다.
그러자 상대방이 껄껄 웃으면서 그 펜션은 자기가 2년 전에 지어서 별장을 겸하여 외부인 숙박 임대용으로 관리를 하고 있는데 누구한테 팔았다거나 임대를 준 적이 없으니 다시 한 번 알아보라는 것이었다.
죄송하다고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이름이 같거나 비슷한 펜션이 있는지 확인을 하였지만 없었다.
그 순간 아차, 하는 생각과 함께 그림이 정리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 작가가 그 곳의 펜션에 가 본 적이 있고, 내 수준이라며 애착을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닌 거 같았다.
하고 싶었던 것을 그리워하며 누군가한테 희망사항이 이루어진 것처럼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 상대가 나 인거 같았다.
걱정이 되었다.
허황된 것을 얘기할 상대가 아닌 나한테까지 그렇게 이야기할 때는 신상에 뭔가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바로 휴대전화로 전화로 연락을 해 볼까 하다가 그 작가의 그리움을 깨고 싶지 않아 그만두었다.
언젠가 다시 통화를 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왜 그랬는지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이고, 그대로 묻어 둔다 하여도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뭐 잘 하는 짓이라고 “윤 작가님, 어제 대관령 펜션으로 연락을 해봤더니 어떤 사람이 자기가 주인이라며 이상한 소리를 하던데 어떻게 된 것인가요? 왜 그런 거짓말을 하셨나요?” 라고 야박하게 하여 마음을 아프게 할 거 없지 않은가 말이다.
윤 작가를 생각하니 가슴이 찡했다.
자기가 말 한 것이 참이 아니라는 것이 바로 알려지고, 좋지 않은 이미지로 남게 되리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미지가 손상되고 부끄러움을 당하는 두려움보다는 자기가 바라던 바를 이루고 행복해져 있다는 즐거움에 스스로 처해있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고달픈 일을 잊고서 자기의 그리움을 찾기라도 한 듯이 함께 하던 작가한테 전화하여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잘 살고 있노라고 말했을 때는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어쩌면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 가닥 희망이었던 것에 젖어서 스스로를 위안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얼마 가질 못할 텐데 그리움의 욕망이 저주의 허욕으로나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윤 작가한테 무슨 일일까?
부부싸움, 대형 금전사고, 방랑자로 가출, 사고뭉치로 출문, 몸뚱이만 간신히 빠져 나오는 이혼, 저렇게 다니면서 누구한테 피해를 주거나 대형 사고를 치는 것이나 아닌가......, 이런저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본인이 쓸어 담아야 할 것들이다.
그리움을 찾는 착하고 선한 마음으로 하루 빨리 그 어려움에서 벗어나야 할 텐데 그렇게 방황하다가 마는 좌절은 없어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나한테 전화를 할 텐데 무슨 얘기를 해 줘야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남길 수 있게 해 줄 수 있을 것인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 차라리 그런 이야기를 잊어버릴 때까지 전화가 안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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