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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응모불가

by Aphraates 2008. 8. 27.

인력채용이나 입찰에서 능력 여부를 떠나 규정에 정한 자격기준이 미달하여 응모 자체가 불가능하다면 차별받는 것이다.

규정은 공정하게 유능한 인재를 뽑고, 능력 있는 업체를 선정하기 위하여 있는 것인데 형식적인 자격기준이 족쇄가 되어 그러지 못 한다면 발전적이고 전향적인 차원에서 볼 때 시스템 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차별받을 것은 자격이 아니라 능력인데 출신성분이나 학력 같은 외적인 것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은 정실 인사와 함께 만고의 병폐인데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것에서도 선진국과 후진국이 구별된다.

자격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후진국에서는 일보다는 인간 중심으로 판단하여 세세하게 엄격하고, 선진국에서는 인간보다는 일 중심으로 판단하여 최소한으로 정할 정도로 비교적 느슨하다.

두 방법은 장단점이 있어 어떤 것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고 운용하기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고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자격기준이 엄격한 후진국에서 그와 관련한 비리가  많고, 자격기준이 느슨한 선진국에서는 그와 관련한 비리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 하거나, 정해진 코스를 밟지 못하거나, 기회를 놓치고 잡지 못 하거나 한 사람은 응모 불가를 당한 서러움이 있을 것이다.

그게 다 제 밥그릇대로 제가 갖고 가는 것이지만 한 참 일할 때는 자격미달로 응모 불가여서 운신의 폭이 좁고, 일손을 놓았을 때는 능력미달로 응모불가여서 꼼짝달싹 하지 못하는 것은 이래저래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처음부터 끝까지 응모불가인 것이다.

불굴의 의지로 자신의 불리함을 박차고 일어나 약진하는 사람들이 보면 그런 생각은 패배주의에서 비롯된 자기비하이니 청산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꼭짓점이 지난 사람들이 볼 때는 그런 성공은 특이한 케이스이니 논외로 치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볼 때 응모불가의 영향이 상당히 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내외적으로 좋은 인재개발 코스와 프로젝트 아이템 발굴 프로그램들이 막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격과 능력 면에서 응모불가여서 그림의 떡이나 다름이 없는 거 같다.

백수와 실직자가 많아 사람이 넘쳐난다는데도 정작 필요한 사람을 구하려고 공고를 하면 대부분이 응모불가이거나 함량미달이어서 합격하는 소수의 사람만 여러 곳에 합격을 한다니 풍요속의 빈곤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주변에서 이제부터 시작이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 의기소침하지 말고 경험을 되살려서 적극적으로 나가라 하고, 사람 중심에서 일 중심으로 변해가는 사회 분위기일지라도 생각과 행동이 처져 묵은 칼을 쓰기에는 이미 때가 지나서 현상유지를 하기 위해서만도 무진 애를 써야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인생은 연습 삼아 한 번 해보는 것이 아니다.

역동적인 삶의 현장에서 막연한 추측과 개연성만으로 응모를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받아줄 수도 없는 것이다.

나도 한 번 해보고 싶고, 하면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해서 친선 게임처럼 놀이삼아 데들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이가 들으니 취직하기도 힘들다며 투덜대던 지인이 생각났다.

그는 밤낮으로 일 해봐야 돈 몇 십만 원 만져 보기 힘든 농촌 사람이다.

동네 인근에 새로 들어선 공장에서 일용직 채용에 응모를 했단다.

그러기 전에 관련 업무를 관장하는 군청의 친척한데 얘기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런다고 안 되는 일이 될 거 같지도 않고,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이 창피한 일이어서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응모를 했단다.

이력서를 들고 공장으로 찾아갔더니 이력서를 읽어 본 인사 담당자가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며 이렇게 말하더란 것이다.

“아주머니 우리 회사에서 채용하는 일용직은 단순 노동을 하는 직무이지만 만 45세 미만이어야 합니다. 아주머니는 그렇게 나이가 안 들어 보이고, 그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도 같지만 회사 규정상 자격 자체가 미달이니 서류를 제출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 연령 제한은 기분 내키는 대로 정한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 합리적인 방법에 의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를 어길 수는 없습니다. 안타깝지만 우리 회사하고는 인연이 닿지 않는 것 같으니 다른 곳을 알아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서운하더란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도 한 마디 했다.

“아니 그런 단순 노동을 하는 데는 시골에서 막 일을 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제 격일 거 같고, 우리들도 가까운 곳에 있으니 일도 더 잘 하여 회사 측에서 봐도 이익일 텐데 나이가 뭐 대수라고 그리 까닥스럽게 따지나요? 그럼 나이 조금 든 사람은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농사나 짓던지 장사나 하라는 건가요? 헌법소원이라도 내던지 해야지 안 되겠네요”

집 앞에 있는 일터를 놔두고 버스를 타고 몇 십리 밖의 엉뚱한 공장에 다녀야 한다는 것이 속상해서 해본 말이지만 어디를 가도 나이 40대 중반이 지나면 그런 응모불가의 제약을 받는다는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원통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한 때는 청노(靑老)갈등으로 인하여 불협화음일 일더니만 지금은 좀 누그러진 거 같은데 청년이라고 해서 노년이라고 해서 응모불가라고 너무 서운해 할 것은 없다.

청년이 할 일이 있고, 노년이 할 일이 따로 있는 것이니 세상을 넓ㄱ p보면 뭔가 할 일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금박스럽지 못한 사람을 보고 내가 그 나이라면 별 짓이라도 다 하겠다고 나무라지만 그 것은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는 것에 불과하다.

막상 그런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이 내 나이가 되면 아랫사람들한테 같은 소리를 할 테니 현재의 자기 위치와 역할에 맞게 잘 사는 것이 복 받은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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