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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낙엽만 굴러도 까르르

by Aphraates 2008. 8. 28.

낙엽만 굴러도 까르르 웃음이 나오는 사람처럼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것이 좋을까?

아니면, 세상 다 부서지는 듯한 천둥 벼락이 쳐도 표정 하나 없는 사람처럼 감수성이 부족하고 무딘 것이 좋을까?

다 장단점이 있을 테니 어떤 것이 더 좋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고, 본인 자신도 어찌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누가 고쳐줄 수도 없는 타고난 성품이라 하겠는데 밝고 인정이 넘치게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아무래도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하여 자기감정에 충실한 것이 좋을 것 같다.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좋으면 좋아서 소리를 지르고, 싫으면 싫다고 투정을 부리고, 아프면 아프다고 울어야 아이답고 정이 가지 좋은 일이 있어도 입을 꾹 다물고 잇고, 싫은 일이 있어도 내색 안 하고 있으면 정 떨어지다 못 해 섬뜩하기도 하다.


요즈음은 하루걸러 한 번씩 시내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한다.

불편한 점이 없지 않으나 자가 운전하고 다닐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여러 가지를 새롭게 느낀다.

버스를 이용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지긋지긋하게 고초를 겪었던 대중교통시대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잊혀졌던 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런 변화가 있다 보니 일상을 떠나는 기분에서 글 쓸 주제도 새롭게 떠오르곤 한다.

그 떠오르는 영감이 마르고 닳지 않는 샘물처럼 영원히 떠오를 것이 아니고 어쩌면 시내버스를 이용하지 않을 홀짝제가 폐지되기 이전에 이미 고갈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뭐든 지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하나의 주제로 메모했다가 글을 쓰는 감수성을 가졌다는 것이 여간 대견스러운 것이 아니다.

물론 그 주제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들이 뒤 섞여있지만 내가 그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현상을 내 눈으로 보고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니 누가 그 글을 보고 안 보고에 상관없이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것은 내세울 만 하다.


오늘은 짝수 날에 정해진 노선의 버스를 탈 때 마다 만나는 초등학교 중급 정도 되는 작은 여자 아이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그 아이는 똘똘한 거 같은데 너무 어른스럽게 하려는 것 같아서 정스럽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흐트러진 구석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몸가짐에 엄마들이 갖고 다는 손지갑을 하나 들고 버스 안으로 걸어 들어와서 좌석에 앉고, 좌석에 앉아서도 고개나 몸을 움직이는 경우가 없이 꽂꽂하고 표정이 없어서 누가 말을 붙일 수가 없을 정도이다.

쉽게 말해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그런 모습의 아이다.

그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는 어린 아이가 혼자 버스를 타니까 긴장되어서 그런가보다 하였는데 버스를 타고 내리는데 조금도 망설이거나 자세가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런 것이 아니라 타고난 성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리기 몇 정거장 앞에서 그 아이가 내리고 나면 여러 가지의 의문스러운 것이 떠오른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하고 싶다는 말을 안 하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먹고 싶다 안 하고, 아파도 아프다고 안 할 거 같은 그 아이의 가정생활과 학교생활은 어떨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라는 그런 아이를 둔 부모는 걱정 하나 안 하고 만족스러울까?

그 아이가 그렇게 길들여진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나중에 성인을 거쳐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반듯하게 잘 커 가는 아이를 보면 안심이 되어야 할 텐데 왠지 모르게 미심쩍고 걱정이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빈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이 자로 잰 듯이 올바르게 살아 자기가 한 만큼 어느 정도의 성공적인 사람이 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사람과 함께하는 다른 사람들이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해한다면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는 분명히 여러 가지 장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런 장점은 더 좋아질 수 있도록 장려해야겠지만 구르는 낙엽만 보고도 까르르 웃는 감수성도 기려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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