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옆 벤치에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아가씨 둘이 앉더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 아가씨들은 아마도 근처의 어느 오피스 빌딩에서 퇴근하여 집으로 가던 중이었던 친구 사이인 거 같았는데 생김새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한 아가씨는 하얀 피부와 짧고 단정한 생머리와 가냘픈 몸매에 연한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것이 날아가는 잠자리 같이 상큼해 보였고, 다른 아가씨는 희지 않은 피부와 흐트러진 파마머리와 묵직한 체구에 검정색의 부한 윗도리와 청치마를 잘라낸 듯한 우중충한 미니스커트를 입은 것이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두꺼비를 연상케 하였다.
평소에 뚱보와 빼빼가 함께 다정하게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저들이 어떻게 짝꿍이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될 때가 의외로 자주 있는데 오늘 그 아가씨들도 꼭 그 격이었다.
그 아가씨들이 재잘거리며 하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기를 기울여 일부러 들으려고 들은 것은 아니고 그 들 때문에 내가 자리를 피할 것은 아니어서 벤치에 그냥 앉아있다보니 자연스럽게 들린 것이다.
무슨 이야기인가를 하다가 상큼한 아가씨가 “야, 너 그 옷 언제 샀냐? 너 편한대로 입는 것은 좋은데 스타일 좀 바꿔봐라” 하고 말했다.
그러자 우중충한 아가씨가 “왜, 안 어울리냐? 그럼 내가 너처럼 잠자리 같은 옷 입으랴? 이게 편리함을 강조하는 내 스타일에 딱인데 뭐 어때. 그러지 마라, 나도 패션이야” 라고 자기 옷을 만져가면서 말했다.
그런 이야기 이외도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 참 하더니 “야,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자” 하며 자리에서 일어서 갔다.
내가 한유한 날에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면 초저녁은 훨씬 더 지나고 한 밤중이 가까워 오고 있는 시간인데 그 때까지 재잘거리다가 오늘은 일찍 들어가자고 하니 늦게 들어가는 날은 몇 시인지 궁금했고, 시간 아까운 줄 모르고 몸 축나는 줄 모르고 밤늦게까지 쏴 다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녀들이 가고 나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어울릴 거 같지 않은 잠자리와 두꺼비가 콤비를 이루고, 잠자리는 잠자리대로 두꺼비는 두꺼비대로 매력이 있구나.
그리고 잠자리들끼리만 어울리거나 두꺼비들끼리만 어울리면 조화를 이룰 수도 없을뿐더러 특색도 안 나타겠구나.
그래서 잠자리와 두꺼비가 잘 어울려 나름대로의 장점이 나타나고 발전이 되는 것이니 자기가 최고라거나 최저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구나.
만약에 잠자리 같은 아가씨가 두꺼비 같은 아가씨의 옷을 입고 터프하게 나온다거나 두꺼비가 잠자리의 옷을 입고 조신하게 나온다면 갓 쓰고 구두 신은 것처럼 참 안 어울리겠구나.
그렇다면 두꺼비는 잠자리를 부러워하고, 잠자리는 두꺼비를 부러워할까?
가끔은 나도 그래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고, 살아가는데도 별다른 지장은 없을 거 같다.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잠자리에게 두꺼비가 필요하고, 두꺼비에게 잠자리가 필요하다는 기본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이 우리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집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오면서 생각하니 지나치다가 잠시 마주친 사람들의 평범한 대화에서도 삶의 지혜가 담겨있고, 그를 놓치지 않고 간파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즐거움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단단한 운동복으로 중무장한 미식 축구선수 같은 모습의 아가씨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도 패션이라고 한 말이 떠올라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작가 홈페이지 : http://blog.daum.net/kimjyy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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