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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고장 날 때도 됐지만

by Aphraates 2008. 8. 29.

차를 구입한지 11년이 다 되어 가고, 연말이면 운행거리 22만km 실적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다.

차종은 몇 년 전에 이미 단종이 되었다.

그러나 다른 차에 비하여 특별히 튼튼하다고 하기에는 그런데도 공장이나 서비스 센터에서 수리 받는데 별다른 지장이 없어서 그런지 멀쩡하게 운행되는 차들이 꽤 된다.

나도 이따금씩 차를 공장에 입고시켜 수리를 받는다.

정비사의 이야기로는 내부적으로 별 이상이 없다 하고, 다른 사람들이 외관상으로 볼 때는 연식은 꽤 된 거 같은데 차가 깨끗하다고 말하여 운행에 별 지장이 없다.

이대로라면 내구연한 15년 이상에 30만km 이상을 운행 주파하는데 무리가 없을 거 같다.

따라서 차를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게 언제 적 차인데 아직도 그런 차를 타고 다니냐면서 더 늦기 전에 바꾸라는 주변 사람들의 성화가 변수가 될 수 있을 거 같다.


병은 자랑해도 건강은 과신하지 말라고 하였다.

내 몸뚱이가 고장 날 때도 됐지만 큰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내 차도 그랬으면 좋겠다.

아니, 차는 그래도 수시로 점검을 받고 있으니 회사에서 받는 정기 건강진단 이외는 병원을 병원답게 이용하지 않는 내 몸뚱이보다는 더 나아야할 것이다.

물론 내 몸뚱이나 차가 언제까지나 현재처럼 불편 없는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않는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고 우수한 기계일지라도 쓰고 세월이 가다보면 하나하나 마모되어 제 성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작동을 멈추게 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고, 조금만 등한시 했다가는 바로 표가 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누구나 아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이고 기계고 별 탈 없이 그런대로 돌아갈 때는 그런 것을 잊어버린다.

그리고 때로는 내 사전에 고장이라고는 없다며 천년만년 무사할 줄 알고 큰소리치지만 언젠가는 부서지게 되어 그 때가 되고 나서야 후회하며 아무 말도 못 하게 된다.

호되게 당하고 난 다음에 놀라서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키고, 기계는 움직일 때 기름칠 하고 닦아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며 그렇게 하려고 한다면 그 때는 이미 늦으리 이다.

미리미리 준비했으면 상황이 그렇게 악화되지는 않았을 텐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뻔히 알면서도 무관심하다가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은 사람들의 본성이 아닌가 한다.


심장병과 혈압, 당뇨, 갑상선, 위암, 부인병......, 이지가지 성인병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 하는 지인들이 늘고 있다.

또한 성인병은 아니지만 건장한 사람이 인대가 나간다거나 파상풍에 걸려 고생하는 경우도 있는데 나이 젊었을 때는 술과 담배를 입에 달고 다니며 별 짓을 다 해도 멀쩡하더니 카운터 한 방에 힘 못쓰고 눈치만 보는 사람도 있다.

세월이 말해 주고, 그 세월의 탓인 거 같다.

환자 문병을 가서 이야기를 해 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큰 병이 유발되는 것은 다 유전적인 요소에서 기인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평소에 잘 관리했더라면 그 정도까지는 안 됐을 것이라며 후회하는 것이다.

몸뚱이를 너무 함부로 굴렸다는 것인데 차도 평소에 수리를 잘 하여 조심스럽게 운행하면 훨씬 더 오래 탈 수 있었을 테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한탄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함께 봉사활동을 하던 남(南) 마티아 부회장님께서 위에 이상이 생겨 서울 큰 병원에서 대수술을 받으시고 투병중이시다.

먹는 것이라면 남 못지않게 즐기시던 분이다.

그런데 술이라도 많이 드시고, 뭘 먹으면 속이 불편하여 음식을 가리던 분 같으면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한다지만 안 그러던 분이 위에 이상이 생겼다니 이해하기 어렵다.

수술 며칠 전에 올라가셨는데 기다리는 동안 무척이나 두려우셨을 것이고, 수술 후에는 많이 고통스러우실 것이다.

그런데 관심을 갖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리 나이 때면 거의 60년을 써 가니 고장 날 때도 됐어요. 다 아는 병이고 수술만 하면 되는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 잘 하시고 내려오세요. 기도 중에 기억할게요” 라고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농담 섞인 전화 한 통화뿐이었으니 사람이란 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참 보잘 거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슬펐다.

그나저나 한 번 올라가서 복스러운 볼이 쏙 들어갔을 그 분과 함께 놀아 주며 고장 날 때도 되었는데 그만 하기 다행이라면서 놀려주고, 추석 전에는 어느 정도 회복되어 조상님들께 부끄럽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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