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정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빌딩가이다.
그 빌딩 숲도 아파트 옆에 있는 공원과 함께 나의 산책길이다.
공원은 나무숲으로 본연의 산책을 하기가 좋아서 자주 가고, 빌딩가는 사람들의 숲으로 나름대로 사람 부딪히며 산책하는 즐거움이 있어서 가끔 지난다.
오늘은 빌딩가로 나갔다.
빌딩가 옆의 음식점가와 쇼핑가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을 보는 것이 재미가 있었고, 빌딩가의 빌딩 정문은 대부분이 셔터가 내려져 있고 후문 쪽으로 사람들이 오가기 때문에 좀 한적하였다.
걷다보니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었다.
걸으면서 담배를 피우지는 않기 때문에 한적한 곳을 물색하다가 바로 앞에 고개를 반짝 들고 쳐다봐야 빌딩 끝이 보이는 두 빌딩 사이의 공간으로 향했다.
그 곳은 불빛이 안 들어 어둡고, 빌딩 벽 양쪽으로 큰 나무가 있어서 빌딩 사이의 채양막 역할을 하고 있다.
인조 대리석 벤치도 몇 개 있어서 잠시 쉬기에는 안성맞춤인데 낮에는 사무실에서 나온 남자와 여자들이 차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보이는 장소이다.
담배를 꺼내 들고 불을 붙이면서 들어가니 몇몇 여자들이 있었다.
밤이라서 분간이 잘 안 됐지만 사회생활 경험이 좀 있어 보이는 아가씨들이었다.
그들도 담배를 피우고 있었는지 내가 들어가니까 맨 안쪽에 있는 벤치로 옮겨 내가 있는 반대편을 바라보며 연기를 품어대고 있었다.
여자들이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대 놓고 담배를 피운다면 눈살이라도 한 번 찌푸렸을 것이고, 내 면전에서 맛 담배 질을 하였다면 무슨 원망을 들을지라도 소리라도 한 번 질렀을 테지만 나름대로 예의를 지키려고 장소를 가려가면서 점잖게 피우는 것이니 하등의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들은 담배를 다 피우고 나서도 이야기가 계속되었고, 나도 다 피우고 나서 좀 앉아있다 가려고 그대로 있었다.
무슨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한 사람이 수다를 떨고 두 사람은 장단을 맞추었는데 발랄하고 밉지 않게 재잘거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살며시 웃었다.
그랬더니 수다 떨던 아가씨가 나를 향하여 몸을 돌리더니 “아저씨, 안녕하세요? 북경 올림픽 폐막식에 나왔던 비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요 비가 나으냐 보아가 나으냐 하고 말씨름이 벌어진 거예요. 아저씨는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세요?” 하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화제는 대표적인 한류(韓流) 연예인으로서 중국과 일본과 동남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여자 가수 보아(권보아)와 미국에서 시선을 집중 받고 있는 남자 가수 비(정지훈) 중에서 누가 더 노래 잘 하고, 춤 잘 추고, 멋과 매력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뜻밖의 질문을 받고 잠시 망설여졌다.
그 두 사람은 연예인으로서 국위 선양을 하고 돈도 많이 벌었다고 하지만 내 취향은 아니어서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낯서른 사람이 낯서른 사람한테 재미있게 물어보는 것인데 그냥 말 수가 없어서 가장 보편적이고 간단한 답을 하였다.
“두 사람 다 좋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남자들은 여자인 보아를 좋아하고, 여자들은 남자인 비를 더 좋아하지 않겠어요? 그게 맞을 거 같은데……. 안 그래요?” 라고 하였더니 그렇겠다며 고개를 끄떡였다.
내친 김에 나도 하나 물어봤다.
“요즈음은 담배 피우는 여자 특히, 젊은 층에서 많은 거 같던데 좀 멋있게 피우지 왜 이런데 숨어서 도둑 담배를 피워요? 음식점이나 술집에 가 보면 옆 사람들 전혀 의식하지 않고 맛있게 피우던데 말이오”
그랬더니 다른 한 아가씨가 “담배 피우는 여자들이 많아 진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여자들이 담배 피우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이기 때문에 남자들처럼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피우기는 아직은 좀 그렇지요” 라고 이야기 하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벤치에서 일어서면서 “아직은 좀 그렇지요? 나쁘게 생각할 것은 없을 거 같은데 담배 피우는 여자를 고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문제아로 보는 거 같아요” 라고 말하고는 그 곳을 나왔다.
아이들이고, 여자들이고 간에 성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 때문에 담배 피운다는 것은 어폐가 있고 습관성인 거 같다.
담배는 한 번 길을 들여 놓으며 빠져 나오기 어렵다.
그러니 술은 몰라도 담배는 정말로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알고 아예 발을 안 들여 놓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애시당초부터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지 말고, 입문하지 않도록 교육되어야 한다.
이런 나의 지론은 아직도 변함이 없는데 아이들과 여자들 흡연인구가 늘어난다니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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