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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전사모 여인

by Aphraates 2008. 8. 29.

전사모는 오늘 내가 마음속으로 어느 여자에게 붙여줬다가 바로 폐기시킨 못 마땅한 별명으로 전화를 사랑하는 홀로 된 여자의 모임(전사홀여모)의 약자이다.

노사모를 필두로 걸핏하면 만들어지는 별의별 사모가 다 있기에 나도 한 번 붙여봤던 이름인데 실상은 상당히 기분 나쁜 전사모였다.


느긋하고 점잖게 자리에 앉아 지나치는 거리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쏠쏠한 시내버스를 탔다.

분위기에 젖어서 눈알 굴리는 거 표 안 나게 하며 차 안과 차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관저동에서 여대생들과 함께 한 여자가 탔다.

특이하고 발랄한 옷차림에 얼굴 생김새로 봐서 애송이 가정주부는 아니고 삼심 대 초반은 되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여자는 처음부터 전사모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휴대전화를 하면서 당당하게 차에 올랐고, 요금을 낼 때는 전화기를 어깨에 올려놓고 볼로 누르고 통화하는 유연한 모습이었다.

내 좌석 의자 건너편 의자에 앉아서는 깔깔거리는 전화가 계속되었다.

전화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여자가 전화하는 목소리가 제법 커서 차 안에 있던 몇 명 안 되는 승객들의 벌레 씹은 듯한 불쾌한 인상의 시선으로 그 여자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그래도 그 여자는 그런 눈총을 느끼는지 못 느끼는지 안중에도 없다는 표정으로 막무가내이더니 이번에는 한 술 더 떠 샌들을 벗어 양말도 안 신은 맨발을 샌들 위에 올려놓더니 더욱더 편안한 자세로 전화를 계속하였다.

처음에는 전화하는 것이 무슨 내용인지 감이 안 잡혔지만 하도 오랫동안 전화를 하니까 파악이 되었는데 아마도 자기 친구와 통화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남들이 들을 깨는 중요한 사항이 아니어서 집에 가서 조용하게 해도 충분할 거 같은 그저 시시콜콜한 수다였다.

계속 그러니까 점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나서서 “여보시오 거기 여자 분, 전화 좀 조용조용히 하든지 아니면 내려서 하던지 하지 몰상식하게 버스 안에서 뭐 하는 짓이오?”하고 큰소리칠 수도 없었다.

속으로만 배터리나 나가버려라 하고 악담을 했다.

나이 들 만큼 들은 것 같건만 나는 주책이라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 물정 모르고 자기 맘대로 제 멋에 사는 지극히 함량미달인 여자였다.


뻔뻔한 통화는 버스가 도마동에 올 때까지 이어졌다.

시간상으로는 l0 여 분밖에 안 되어 공공장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했더라면 한 참을 더 해야 할 전화일지 모르지만 좁은 공간에서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짜증스럽고 불쾌한 표정들이었다.

도마동에서 전화기를 접어 손으로 잡고 있기에 이제 끝났나보다 하였더니 이게 웬걸 차 안의 눈총에 반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하는데 아까하고 엇비슷했다.

그러나 이번 전화 상대는 이야기하는 것이 별 재미가 없는지 그럼 다음에 연락하자며 전화를 접어 외부를 손으로 닦아서 손에 쥐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끝났던지 아니면, 목적지에 다 와서 내리려는가 보다 하였는데 점입가경이었다.

이번에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느라고 번호를 눌러 대고 전화기를 귀에 갖다 대고 하기를 여러 번 하다가 전화 연결이 안 되는지 문자를 보내느라고 전화기를 눈앞에 가까이 대고 유심히 들여다보며 눌러 대고 있었다.

내가 갈마동 고개에서 내릴 때까지 승객이 많거나 적거나 내내 그 모양이었는데 그렇게 정서가 불안한 여자를 보니 내가 다 심난했다.


정말로 못 말릴 전사모였다.

다니다 보면 그런 전사모들을 종종 볼 수 있었는데 아이들이 개학을 하고 버스가 붐비기 시작하니까 함량미달인 전사모가 더 극성을 부린다.

푼사모(푼수를 사랑하는 아이들 모임)가 상당하고, 덩달아서 주사모(주책을 사랑하는 어른들 모임)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모에 철퇴를 내리던지 해야지 이미지 좋던 버스가 며칠 상간으로 스타일 구긴다.

업무적으로 시간과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전화를 해야 할 사람이라면 몰라도 보통 사람들 같으면 특히 여자들은 거리에서 전화하는 것을 쑥스러워 하는 것을 넘어 전화기 자체를 안 갖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사모들은 전화기가 없으면 불안하여 안절부절 못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휴대 전화 증후군에 걸린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치명적인 중병으로 옮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니 그런 사모들은 각성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사람들이 많이 있는 공공장소에서는 진동으로 놔야 한다는 전화 예절은 그만 두고라도 용건만 간단하데 이야기하는 기초적인 시민의식이라도 조금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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