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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팔리고, 헐리고

by Aphraates 2008. 10. 10.

갑천변에 있는 대형 할인점에 “마지막 세일”이라는 프랭카트가 휘날리고 있었다.

그 회사는 원래는 외국 소유의 대형 할인점인 K사였었는데 내국인 소유로 넘어 와 H로 상호를 바꾼 지 얼마 안 되어 의욕적으로 영업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흔히 계절이 바뀌면 대형 할인점들은 물론이고 백화점들도 여름 이월상품 처치를 위한 바겐세일을 하고 이상할 것이 없지만 마지막 세일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그런 것에 밝은 사람한테 물어 봤다.

그랬더니 소상하게 얘기 해주었다.

E사는 H 할인점을 인수하여 공격적인 경영을 하였지만 자금 사정과 비정규직 해고 문제로 나자빠지고 결국은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과 외국계 합작 회사인 또 다른 H사로 넘어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외국 기업이 국내로 들어 와 실패한 경우가 드물었다는데 어째서 세계 1,2위인 유통업체들이 우리나라에는 정착하지 못 하고 보따리를 싸 들고 나가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들이 실패한데는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단다.

우리나라의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 성향과 빨리빨리의 스피드 경영에 적응하지 못하고 창고형 매장의 자기네들 방식을 고집했기 때문에 외면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세계 어디에서도 실패를 모르던 굴지의 대형 유통업체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손을 씻는 단계를 넘어서 두 손 번쩍 들고 항복하고, 우리나라 유통업체들이 중국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 선방하는 것을 보면 국민특성이 유별나고, 외국 것이라면 사족을 쓰지 못하던 것은 근근하던 시절의 옛이야기가 된 것 같다.

그런데 인터넷 강국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에서 급신장하고 있는 인터넷 쇼핑몰은 어째서 거의 다 외국계로 넘어가는 것인지 아쉬운 점이 없지 않은데 대형 할인매장과는 달리 거기에서는 우리들이 뭔가 부족하여 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사가 안 돼서 팔렸다는 데야 말릴 장사가 없다.


인터넷 동영상을 통하여 중앙 데파트가 폭파되고 헐리는 장면을 보니 감회가 어렸다.

대전이 영남과 호남을 연결하는 교통요지였지만 칠십 년대 초반 근대화 시기에는 종합시장인 중앙시장 빼고는 번번한 상업시설 하나 없었다.

개발 위주였던 그 당시에 대전의 중앙통인 대전천 목척교에 쌍둥이 빌딩처럼 마주 보고 신식 상가로 들어선 중앙 데파트와 홍명 상가는 대전 상업 중심의 요람이었고, 데이트와 만남의 장소로도 인기가 좋은 명소였다.

고급 브랜드위주의 고가품을 취급하여 아이 쇼핑을 하는 코스이기도 했고,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 즐겨 찾았기 때문에 다른 재래시장에 비하여 장사가 잘 되는 이른바 몫 좋은 명당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여지없이 사람이나 명당이나 변하게 만들었다.

대전의 도심권이 둔산으로 이동하고부터는 역세권과 본전통의 중심가이면서도 변두리가 되어 사람의 왕래와 장사가 시들해졌고, 급기야는 하천 생태계를 훼손시키는 애물단지로 지탄을 받아 언제 산소 호흡기를 뗄 것인지 숨고르기를 당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괄시를 당하다가 엊그제 폭약 세례를 받고 주저앉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그런 것을 보면 사람이나 상가나 다 때를 잘 만나야 한다.

명물이 흉물로 둔갑한 것은 도심권 이동 영향이 가장 컸지만 그런 대형 상가도 대형 할인매장에 치어 숨도 제대로 못 쉬는 구멍가게처럼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아무리 자구책을 강구해 봐도 대형 할인매장과 동네 슈퍼는 하마와 붕어로 비교하면 적당할 것 같다.

대형 할인매장에 가서 한 번 쇼핑카를 밀고 매장을 돌아다니며 한 달 필요한 것을 사는 것과 시장바구니를 들고 동네 슈퍼나 재래시장에 가서 쓰다가 떨어진 것을 비교하면 10톤 트럭과 손수레 차이인데 어떻게 목숨을 부지하겠느냐고 탄식하던 동네 슈퍼 주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장사 먹여 살리려고 희생정신을 갖고 구멍가게에서 마냥 물건을 살 수도 없는 일이니 어떻게 정리가 되고 결말이 날 지는 예측하지 않고 안 봐도 뻔한 것이 아닌가 한다.

더 좋은 신식이 나와 구식이 헐렸다는 데야 뭐라고 할 말이 없다.


팔리고 헐리는 것들 대신에 무엇이 어떻게 들어서서 변화를 가져올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팔린 것이 있는 갑천변은 그 당시에 농사도 안 되는 쓸모없는 땅들이어서 아무 것도 없었으니 그만두고서라도 헐린 것이 있는 대전천변은 기왕 옛 모습대로 복원하는 거 그 때 그 자리에 있던 “목척교 호떡 집”과 선생님 몰래 드나들던 “신도극장”도 되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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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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