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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입장이 곤란할 때는

by Aphraates 2008. 10. 17.

무슨 일 때문에 입장이 곤란할 때는?

삼국지나 손자병법을 병아리 눈물만큼 터득하고, 맛보기로 내공에 쌓은 자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유추해 볼 때 오계(五戒)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거 같다.


일계는 줄행랑의 삼십육계(三十六計)이다.

예상치 못 하여 대응할 수 없는 급박한 일이 벌어지면 일단 그 자리에서 튀고 돌아가는 추세를 몰래 훔쳐봐야 한다.

세상일이나 사람의 맘이 이상해서 일이 벌어진 순간에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고, 잡아먹을 듯이 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수그러들게 돼 있다.

그러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터지면 경천동지하더라도 발등에 떨어진 불덩이만 대충 털어내고 잠적하여 “나는 없소이다” 해야 한다.

그리고 태풍이 지나가고 잠잠해질 때까지 꼭꼭 숨어서 나타나지 말아야지 상황을 오판하거나 궁금하다고 때가 아닌 때에 나타났다가는 동전 오백 원에 길가에서 무참하게 얻어맞는 두더지처럼 되고 화만 더 키우게 된다.

지금도 그런 일이 통하는지 알 수 없지만 전에는 유력기관에서 독직 사건이 터지면 당사자는 행방불명이 되고, 주변 사람들이 뒷수습을 하는 줄행랑 방법 곧잘 통했다.


이계는 막무가내의 부정(否定)이다.

나와 연관된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거나 터질 기미가 보이면 입을 싹 씻고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잡아떼거나 아무런 연관이 없다며 묵묵부답으로 부정해야 한다.

정황 상으로도 그렇고 일부 증거물도 나와 나나 상대방이나 내가 잘못 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만 그를 그대로 시인했다가는 겉잡을 수 없는 큰일이 벌어질 것이 뻔하다.

그럴 때는 강한 부정과 미란다 원칙에 따른 묵비권 행사가 필요하다.

지금 시인을 하여 엄청난 불이이과 망신을 당하느니 나중에 삼수갑산을 갈 때는 가더라도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고 부정하거나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야기라며 무시해야 한다.

지금은 부부 싸움하는 형태가 다르겠지만 전에는 부부싸움 단초가 되는 것이 태반이 남자의 외도와 돈 문제였다.

어느 선배가 출장 간다는 핑계를 대고 숨겨 놓은 애인과 함께 눈을 피해서 먼 곳으로 밀월여행을 갔다.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둘이서 호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하필이면 거기에서 가족 여행을 나온 동료직원의 부인한테 들켜 그날 밤 그 집이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그 선배는 천연덕스럽게 아주머니한테 “당신은 나를 그렇게 못 믿고, 남의 말만 믿느냐며 절대로 그런 일은 없었다” 라고 발뺌을 하였다.

아주머니는 아니라고 부정하는 남편이 가증스럽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아니라고 믿고 싶었고, 문제를 키워봐야 동네 창피만 당하는 것이어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선배한테는 “당신 만일에 그런 일이 있다면 당신 죽고 나 죽고니 알아서 해”라고 엄중 경고하였고, 동네 사람들한테는 그에 대해서는 일체  얘기가 없다가 그와 비슷한 남의 이야기가 나오면 “남자가 바깥 생활을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 뭐” 라고 너그럽게 말하여 그 건은 일단락되었다.


삼계는 적반하장의 역공(逆攻)이다.

공격당하는 건은 사실이다.

그러나 확증이 없어서 떠도는 것을 의심삼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다 들통이 나고 문제가 심각해질 것 같다.

그 때는 공격당하던 쪽에서 오히려 열을 내며 역공을 하여 싹부터 제거해버려야 한다.

“아니 내가 그러는 것을 누가 봤다더냐? 누가 그런 소리를 하여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지 반듯이 찾아내어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 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방방 떠야 한다.

그러면 확증은 없지만 심증은 가서 뭔가 이상하다고 여기던 상대방이 슬며시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말꼬리를 흐릴 수밖에 없다.

그 때에 잘 못 되고 미심쩍은 것들을 깔끔하게 정리하면 정말로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깨끗이 끝난다.

그러나 위계로 역공을 잘 못 펼치고, 잘 못된 작태를 계속하다가는 꼬리가  잡혀 사단이 벌어지니 조심해야 한다.


사계는 용서의 진실고백(眞實告白)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도 있고, 한 눈을 팔수도 있다.

그런데 잘 못했다고 진실을 고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며 용서를 청하는데 안 된다고 내치는 것은 경우가 아니다.

그리고 뼈저리게 반성하는 척 하면서 또다시 그런 일이 되풀이 된다면 입장 곤란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삶 자체가 문제이니 거론할 것조차도 없는 것이다.


오계는 곤란회피의 사전예방(事前豫防)이다.

장래를 보장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입장이 곤란할 때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 것이 없도록 하는 사전예방이다.

즉, 입장이 곤란할 때를 만드는 것은 다 자기의 허물이니 그런 것이 없도록 잘 살아야 한다.


입장이 곤란할 때가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약점이다.

그 때문에 운신의 폭이 호랑이에서 고양이 정도로 약해진다.

그리고 또다시 입장이 곤란한 처지를 만들면 그 때는 고양이 앞의 쥐 정도가 되어 결국은 호랑이 앞에 쥐 정도로 약해진다.

강하게 살려면 한 번이고 두 번이고 곤란한 입장이 안 되는 것이 좋으니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겠는데 지금 상황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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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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