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회에서 별난 모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사람도, 사는 모습도 가지가지이지만 참 별난 모임도 많다.
종친회 및 가족 모임, 동창회, 향우회, 동호회, 갑례회(띠동갑), 사우회, 전우회, 직장 모임, 학부모 모임, 신앙단체 모임, 주당 모임, 운동 모임, 골목계(아파트 통로모임), 부녀회, 부부계 같은 일반적인 것은 다 알고 흔히들 하는 모임이어서 그런지 얘기도 안 나왔다.
그 대신 이색적인 모임 이야기들이 나왔다.
싱글(이혼녀) 모임, 식도락가(먹자) 모임, 애완동물 모임, 카바레 모임, 퇴근방향 모임, 카풀 모임, 복부인 모임, 오프로드 모임, 오락게임(고스톱/카드/마작)모임, 퇴출 모임, 수다 모임 등이 처음 들어보거나 특이하게 생각되는 모임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L 작가가 목욕동기 모임도 있다고 말을 꺼냈다.
다른 작가들의 귀가 솔깃하여 각자 하던 얘기를 중단하고 다음에 무슨 이야기가 나오나 하고 바라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조용해지고 자기를 바라보는 것이 좀 겸연쩍었는지 “그런 모임도 있다고요” 라고 하면서 말문을 닫았다.
그 모임에서는 흠이 될 정도만 아니면 집안 문제라던가 이성 문제 같은 것을 비교적 솔직 담백하게 얘기하면서 경험을 공유하는 편이어서 특이한 주제에서는 깜짝깜짝 놀래만한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목욕동기에서도 이어지는 이야기가 기대되었다.
좋게 생각하면 아름다운 대화가 아름다운 작품으로 이어지는 예술이고, 좋지 않게 생각하면 나이가 들어 갈수록 이야기나 모든 것의 강도가 세져야 감이 잡히는 주책으로 퇴폐다.
목욕동기 이야기에서 뭔가 재미난 것이 이어질 것도 같았는데 그냥 끝나는 것이 아쉬웠다.
그런 찰나에 우리의 호프 K작가가 홀연히 나섰다.
“그러면 그렇지. 그를 놓칠 리가 없지” 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는데 거나하게 취한 그가 익살스럽게 목욕동기 모임 이야기에 접근했다.
자기 젓가락과 술잔을 들고 L 작가 옆으로 옮겨 앉으면서 그 모임은 어떻게 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얘기해 보라고 하였다.
작가들끼리 다른 얘기를 하다가 술 취한 K 작가가 물어보니까 성가시러웠던지 “말이 모임이지 목욕할 때 되면 연락해서 같이 목욕하고, 기회가 되면 점심이라도 한 끼 같이 먹고 들어오는 것이지 여자들 모임이 뭐 특별한 게 있겠어요” 하고 가볍게 얘기했다.
그러자 K작가가 그렇게 짧게 얘기하지 말고 목욕탕에서 어떻게 하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좀 자세하게 얘기해보라며 고개를 쳐들고 더 밀착해갔다.
그제서야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눈치 챈 L 작가가 “아이고 이 화상! 나는 무슨 얘기 하나 그랬네요. 별 걸 다 묻네요. 그렇게 궁금하고 보고 싶으면 한 번 같이 갈까요? 넉살 좋은 K작가라면 못 할 것도 없지요? 다음 모임 때 연락할 테니 꼭 나와요” 라고 크게 나오는 바람에 목욕 동기 얘기는 끝을 맺었다.
그러나 K작가는 끝내 아쉬웠는가 보다.
술김이긴 했지만 헤어지면서 남자들이 여자들이 어떻게 목욕하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한 것인데 기왕 얘기를 꺼냈으면 다 얘기해주지 하다 말아서 사람 궁금하게 만들었다고 불만이었다.
동행하던 다른 작가가 이야기가 더 길어져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사춘기 소년이 꿈속의 여인을 상상하는 것도 아니고 발가벗고 목욕하는 거야 다 그게 그거지 뭐 특별한 게 있겠느냐며 궁금증을 갖지말라며 끌고 갔는데 목욕동기 모이란 것이 별난 모임이긴 하다.
거기에만 별난 모임이 있다녀냐?
여기도 있다.
지난주 주말에는 정년퇴직 동기가 아니라 정년퇴직동년(停年退職同年) 모임을 가졌다.
다들 생각지도 않았는데 저기 길(吉) 마당발이 주선하였고, 십 수 명이 참석하여 거의 백 프로였다.
그러니까 같은 해에 정년퇴직이 예정되어 있는 동료들이 모여서 형식도 목적도 없이 그냥 회비 각출하여 술 한 잔씩 함께 나누며 지난 세월과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 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노래 주점에 가서 옛날 방식으로 맥주 한 박스에......, 하면서 흥겹게 놀았고 다음을 약속했다.
출생과 사망에 대해서 나올 때는 순서대로 나와도 들어갈 때는 순서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정년퇴직동년 모임은 그 정반대이다.
화사에 들어올 때는 다른 혹은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 몇 년에 걸쳐서 입사하여 각기 다른 직위와 직무를 해 왔지만 퇴사 시에는 그런 거 저런 거에 관계없이 똑같이 같은 해에 나가는 것이다.
그와 비슷한 모임 한두 개 없는 동료들이 없을 테지만 같은 해에 정년퇴직을 하는 동료들의 모임이라니까 좀 색달랐고 다들 좋아하였다.
그런데 우리들보다도 늦게 퇴직하는 동료들이 벌써부터 그런 모임을 하고 있더라는 말을 듣고서 거기에도 선도 주자는 있다며 함께 웃었다.
그나저나 전이직(轉離職)같은 것을 안 하고 내 집으로 알고 열심히 하다 보니 다른 곳에서는 하기 힘들다는 정년퇴직을 걱정하는 복 받은 사람들이 되었는데 그 동안 겪어온 고난의 세월이 다 잊혀지는 기분이다.
그리고 이런 별난 모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이었다.
http://blog.daum.net/kimjyyhm http://kimjyykll.kll.co.kr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