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지도자 상은 어떠해야 할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를 것이다.
평화 시와 전쟁 시의 지도자 상이 다를 것이고, 이장과 도지사의 지도자 상이 다를 것이다.
지도자는 소양과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 소양과 능력은 지도자의 자리에 따라 다르지만 기본적이고 공통적으로 갖춰야 할 것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인덕(人德)이다.
인덕이 있어 주변에 사람이 많이 꼬이면 세상없는 난관도 이겨낼 수 있지만 사람이 없으면 천하 없는 사람도 견디어 내지 못 한다.
개인적으로 학식과 덕망이 높아도 사람이 안 꼬여 혼자 깃발 휘날리며 북 치고 장구 치고 한다면 일이 잘 될 리도 만무하고, 그런 사람을 성공한 지도자라고 할 수는 없다.
꼬이는 형태는 뒤 따라 오는 추종이던, 함께 가는 동행이던, 앞 서 가는 선행이던 가릴 것이 없다.
꼬이는 사람도 남녀노소, 강자와 약자, 미녀와 추남, 식자와 무식자, 선인과 악인, 부자와 빈자, 백인과 흑인이던 구분할 것이 없다.
누구라도 좋으니 “오나라, 오나라. 대장금이다” 하는 식이면 된다.
사람이 꼬인다는 것은 그 만큼 편안하고 믿음이 간다는 것이고,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믿게 한다는 것은 그 만큼 인품이 높고 능력이 있다는 것이고, 인품이 높고 능력이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노력하고 최선을 다 한다는 것이다.
지도자는 “동네 아저씨처럼” 이어야 하지만 실제로 “동네 아저씨”는 아닌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그 것은 불가능할 거 같지만 수학 공식의 실수와 허수처럼 공존이 가능하다.
낮에는 누구도 의심치 않는 현모양처이면서 밤에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 하는 요부가 될 수 있는 것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안 되는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안 된다.
그러나 지도자의 생명이 걸려있고 조직의 장래가 걸려있는 중차대한 문제이므로 안 된다고 해서 포기하고 주저앉을 수는 없는 것이어서 시행착오와 분란이 있을지라도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네 아저씨처럼 다정다감하고 만능인 사람은 멋진 사람이다.
그는 천의 얼굴도 할 수 있다.
얼굴을 자주 바꾼다고 해서 변덕쟁이가 아니라 동네와 사람들을 평안케 하려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못 하거나 안 되는 일이 없는 일꾼이다.
사람들은 그를 동네 아저씨처럼 친하고 편하게 느끼면서도 동네 아저씨라고 함부로 하지는 않는다.
그도 화답이나 하듯이 자신을 스스로 지도자라고 생각하거나 내 세우지 않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지도자로 굳건하게 자리매김 되면서 사람이 꼬인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은 누가 하라고 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너무 순박하고 겸손하여 탈이다.
동네 사람들은 그를 융숭하게 대접하고자 줄을 서 있고, 다른 동네 사람들은 벤치마킹을 하러 오느라 야단이고, 각계각층의 저명인사들은 면담과 산진 촬영에 혈안이 되어 아우성이고, 정부에서는 포상을 하고 막대한 지원금을 내려준다 성화이지만 간단하게 그는 한마디로 “노, 땡큐”이다.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존경스럽고, 사람이 꼬이게 돼 있는 그이다.
그 동네는 그가 있어 행복하다.
그런데 그를 가까이 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건전한 인간으로서의 결격사유가 있는 이상한 사람이니 정신과적인 치료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그는 지치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은가 보다.
어디를 가도 먼저 와서 자세를 잡고 있다.
동네에 좋은 일이 있으면 내 일처럼 함께 기뻐하며 밤 새워 축하의 잔을 나누고,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내 일 제쳐 놓고 함께 슬퍼하며 사나흘을 밤새워 비통하게 운다.
정자나무 밑에서 동네 사람들과 김치를 안주 삼아 벌컥벌컥 마시며 취하여 헛소리를 하고, 국회의원이 오면 샐러드를 안주로 하여 홀짝홀짝 마시며 정국을 논하는 아는 것의 끝이 어딘지 모르게 똑똑하다.
노인 어른들께서 부르시면 만사 제치고 뛰어가 공손하게 분부를 따르고, 아이들 품행이 좀 바르지 못 하면 불호령을 내리며 바로 잡아주는 예의와 엄함을 겸비했다.
지도자는 함부로 이름 불리는 동네 아저씨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
편안하게 해 주는 동네 아저씨처럼 못 돼서도 절대로 안 된다.
지도자는 하늘이 내려 주시는 귀한 존재이면서 스스로가 얼마나 노력하고 능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위상이 달라지는 어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지도자가 동네 아저씨가 아닌 동네 아저씨처럼 되는 일차적인 몫은 본인의 것이고, 부차적인 덤은 동네 사람들의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그 몫을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그 몫을 다른 데로 전가하며 그래서는 안 된다는 원론적인 주장만 되풀이 된다면 원초적인 모순이 있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동네 아저씨”가 아닌 “동네 아저씨처럼”의 지도자를 원하고 기다린다.
목이 길어 슬픈 짐승도 아닌데 뭔가를 갈구하며 기다린다는 것은 현실이 그 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그 역경을 어떻게 헤처나가는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좋은 날도 있을 테니 그렇게 낙심할 것은 아니다.
오히려 너무 학수고대하다가 하늘을 향한 정통 해바라기처럼 굳어지면 문제이니 상황에 따라서 땅을 바라보는 개량 해바라기처럼 되는 여유를 갖는 것이 고난 극복의 지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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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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