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이들이 부모님을 따라 하나 둘씩 도착하여 들어왔다.
작은 배낭을 하나씩 메고 문 앞에서부터 뛰어 들어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무척 밝았고, 잘 갔다 오라는 아빠 엄마들도 흐뭇한 표정들이었다.
KTX 기차를 타고 부산 태종대로 야외 학습을 나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기차가 무엇인지 정도는 막연하게 알지만 부산의 태종대가 어디고, 무엇인지 알지도 못 하고 관심도 없는 아이들이지만 연중행사로 떠나는 열 명의 단체 여행인지라 무척 기다리던 날이었다.
두 자리 수 더하기 빼기를 몇 년 째 해도 나아지는 것이 별로 없고, 몇 달에 걸쳐 칼질을 가르쳐 간신히 무우라도 썰 정도가 되어도 며칠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아이들이다.
일거수일투족을 리드해 줘야 하며 감시당해야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그 아이들한테는 학교 공부라던가 일반적인 사회생활 같은 것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현장체험이라던가 야외학습이 상당히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런 행사는 복지관 예산 사정상 어쩌다가 한 번 씩 하는 실정이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즐거운 날인지 모르는 것이다.
복지관생활을 하면서 말을 잘 안 들으면 달래보기도 하고, 혼내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안 들으면 최후의 방법으로 “그러면 OO는 기차타고 태종대 가는데 빼 놔야겠다” 하면 깜짝 놀라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만 봐도 기차타고 태종대 가는 것이 얼마나 기다려지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출발하면서 팀장님 계획에 따라 역할 분담을 하였다.
아이들은 열 명이다.
거기에 그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봉사자들은 전담직원 3명, 대학 자원봉사자 2명, 실습생 1명으로 6명이다.
그 정도면 아이들 여행 뒷바라지 하는데 충분 할 거 같지만 워낙 좌충우돌하는 아이들인지라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지거나 아이들이 없어질지 모르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자기 인지능력과 활동능력이 어느 정도 뒷받침 되는 아이들은 둘씩 짝 지어 손잡고 다니게 하고, 나와 자원 봉사자 한 분은 스스로 뭘 할 수 없는 아이 한 명씩을 전담하여 손을 잡고 다니면서 보살폈고, 나머지 사람들은 앞 뒤 좌우에 서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아이들을 감시하고 소리 지르느라 분주했다.
복지관장님과 부모님들의 배웅을 받으며 복지관 승합차 두 대를 타고 대전역으로 출발 하였다.
남자 선생님이 아이들한테 행동요령과 주의사항과 배낭에 가져온 것을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런 말을 잘 알아들을 리 없다는 것을 잘 아는지라 화장실을 간다던가, 어디가 아프다던가, 뭘 하고 싶다던가 할 때는 선생님들한테 말하되 혼자 행동하거나 뭘 사달라고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못을 박으며 “알았어요?” 하니까 “네” 하고 큰 소리로 답하였다.
잠시 침묵이 흐를 때 중학교 2학년생인 여자 아이한테 “우리 OO는 몇 살이지?” 하고 물었더니 나를 빤히 쳐다보고 웃으면서 “열 살인가......, 잘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평소 활동하는 것을 보면 그렇게 심각한 거 같지 않아서 무심코 물어본 것인데 그렇게 말하여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워 하니까 옆의 선생님이 “우리 OO이는 열다섯 살이잖아. 선생님이 며칠 전에 일러줬는데 벌써 잊어버렸어?” 하니까 태연하게 “네, 기억이 안 나요” 하였다.
그러자 선생님이 나한테 살짝 “저 아이는 하나, 둘, 셋 세다가 갑자기 열 셋이 튀어 나오는 아이이고, 자기네 집 아파트 통로 앞에 내려줘야 자기 집을 찾아가는 정도라고 하였다.
대전 역 동 광장에서 내려 역사로 올라갔다.
대합실에서 잠시 대기하는 동안에도 튀어나간 아이들 잡아온 것이 몇 차례이고, 수시로 화장실에 가고, 여기저기 새로 보이는 것들한테 관심 보이며 여차 하면 튈 태세여서 자리에 눌러 앉히느라고 한시도 눈을 돌릴 새가 없었다.
부산행 KTX에 승차하여 지정된 자리에 죽 앉혔다.
그리고 각장 가져온 가방은 선반에 얹거나 안고 있으라고 하였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기 배낭을 꼭 안고 있었다.
기차가 대전역을 출발하자 선생님이 각자 가져온 과자와 음료수, 복지관에서 준 빵을 먹고 싶은 사람은 꺼내먹고 봉지는 한곳에 모아서 갖고 있다가 나중에 선생님한테 주라고 하였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각자 가져 온 과자와 음료수를 먹었는데 나누어 먹지는 않았지만 선생님들이 누구 좀 주라고 하면 하나씩 주긴 했다.
먹으면서도 장난치는 아이들은 장난 치고, 말하는 아이들은 말하고 하였는데 아침나절이라서 그런지 조는 아이들은 없없다.
오히려 어른들이 졸았다.
기차 안이 좀 소란스러웠다.
많지는 않았지만 다른 손님들은 봉사자들이 조용히 하자고 제제를 하여도 안 되는 아이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해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11시 반경에 부산역에 도착하여 태종대 행 시내버스를 타기 위하여 지하도를 이용하여 건너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하여 승강장 앞에 있는 김밥 집에 들어갔다.
좁은 집에 열다섯 명이 들어가니 꽉 찼고, 무엇을 먹을 것인지 메뉴를 선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결국은 어른들은 소고기 덮밥이고 아이들은 돈가스로 통일하였다.
음식을 만드는 동안에 김밥을 몇 줄 시켜서 탁자별로 돌리도록 주문했고, 주방에 가서는 아이들이 배고프니 밥을 많이 달라고 하였더니 밥은 얼마든지 있으니 필요한 만큼 더 먹으라고 하였다.
시간차를 두고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자 빨리 먹는 아이들은 자기 것 다 먹고 더 먹고 싶어 하였고, 늦게 먹는 아이들은 반도 못 먹고 있었다.
모자란 아이들이 있는 것 같아 더 시켜주던가 남길 거 같은 아이들 것을 나누어주면 어떠냐고 하였더니 잘 먹는 아이들은 먹어도 먹어도 한이 없고, 못 먹는 아이들도 이 정도는 다 먹는다며 내버려 두라고 하였다.
나중에 보니 더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포기하였는지 가만히 앉아 있고, 천천히 먹던 아이들도 조금도 안 남기고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다.
부산역 앞에서 태종대 행 101번 시내버스를 탔다.
예전에는 부산의 명물이었던 영도다리 위를 건너면서 이것이 똑딱선이 오고 갈 때 입 벌리듯이 하던 영도다리라고 하였지만 선생님들 이외는 알아듣지 못하였고, 푸르른 바다를 흰 물살 일으키며 들어오고 나가는 수많은 커다란 배를 보고 좋아들 했다.
부두 근처를 지날 때 커다란 크레인을 보고 옆에 앉아 싱글벙글하는 아이들한테 “너희들 오늘 선생님 말 안 들으면 저기 외쪽 크레인에는 OO이, 오른 쪽 크레인에는 XX이를 매달아 놓을 거야” 라고 했더니 거짓말 하지 말라며 몸을 비틀어가면서 자지러지게 웃었다.
그래서 더 즐겁게 해주려고 “아니다 선생님은 거짓말 안 한다. 너희들이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저기 나가는 큰 배 보이지? 거기에다 실어서 엄마 아빠도 못 보는 먼 나라로 보내 버릴 거야” 라고 하였더니 싫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자 몇몇 손님이 뒤돌아보기에 내가 고개를 숙여 미안하다고 인사를 하고는 아이들한테도 이따 차에서 내려서 다시 이야기하자며 끝냈다.
태종대에 도착하여 보니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어린 아이를 동반한 가족, 발랄하게 움직이는 젊은 연인들, 발걸음도 조심스러운 노부부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곤색 제복에 훈장을 단 한 무리의 참전 용사들도 있었다.
이번 아이들 나들이에서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맛있는 것을 배낭에 메고 기차를 타고 멀리 나가는 데 의의가 있었고, 우리 봉사자들은 그런 아이들이 아무 탈 없이 여행을 할 수 있게 뒷바라지 하는 것이 중요한 임무였기 때문에 다른 것이 특별하게 필요치가 않았다.
이번 나들이의 하이라이트는 대전에서 부산까지의 KTX 열차와 태종대의 다누비 열차였다.
다누비 열차는 모노레일의 기차가 아니라 손님용 카고를 몇 대 연결하여 자동차가 끌고 가는 것이었다.
태종대 놀이터에 가자마자 다누비 열차를 탔다.
태종대 중턱에서부터 정상 인근까지 일주하는 20여 분의 코스인데 푸르른 바다가 보이는 쾌적한 숲속 산길을 천천히 달리는 기분이 좋았다.
관광 코스를 잘 몰라 일주를 한 번 하고 나서 다시 전망대까지 도보로 올라가 대마도까지 아득히 보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사진촬영도 하였다.
다른 항구와는 달이 바다에 크고 작은 배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떠 있어서 역시 부산은 우리나라 최대의 항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부산의 상징이기도 한 오륙도는 어쩐지 초라하게 보였다.
사진촬영을 하고 났는데 한 아이가 안 보였다.
다른 아이들은 한 곳에 모이게 하여 꼼짝 말라고 하고는 그 아이를 찾느라 비상이 걸렸는데 좀 떨어진 화장실에서 찾았다.
다른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주의를 환기시키려고 그럴 때는 선생님을 찾으라고 하였는데 왜 아무 말 없이 혼자 갔느냐며 나무라자 눈물까지 흘렸다.
하지만 조금 지나니까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웃으면 잘 따라다녀 아이 분별력 없는 아이가 혼자 용변 보려고 간 것을 모르는 어른들이 잘못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촉박한데 내가 데리고 다니는 아이는 뒤 떨어져 발이 아프고 숨이 찬다면서 자꾸 앉아서 쉬려고 하여 손목을 잡고 억지로 끌고 내려왔다.
아이도 머리카락 사이로 땀이 송송 나는 것이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닌 거 같았지만 걸음을 잘 걷지 못하는 나도 파 짠지가 되어 버스 승강장까지 내려가니까 팀장 선생님이 너무 고생하신다며 파트너를 좀 쉬운 아이로 바꾸자고 하였다.
그런데 바뀐 파트너인 이 녀석은 버스 간에서 간헐적으로 외마디 소리를 지를 버릇이 있었다.
다른 손님들이 깜짝깜짝 놀래 내가 목례로 인사하면서 괜찮다고 손을 내 저었더니 왜 그런지 알아챘는지 아무 말들이 없었다.
부산역에서 16시 30분 KTX 열차를 탔다.
아이들은 차에 타고 자리를 잡은 다음에 선생님의 하라는 대로 배낭을 풀어 남은 과자와 음료수를 먹기 시작하였는데 아침에 출발할 때는 많이들 가져와서 두툼하던 배낭이 다 먹었는지 홀쭉해 보였다.
나도 몸이 피곤하여 지나가는 이동주보한테 시원한 맥주라도 한 캔 사 먹을까 하다가 그러면 아이들도 사고 싶어 할 거 같아서 참았다.
어두워져서 대전역에 도착하여 플래트 홈을 빠져 나왔는데 체격이 큰 한 아이가 화장실을 향하여 막 뛰는 것이다.
그 순간에 한 선생님이 뒤따라 뛰었지만 그 때는 이미 그 남자 녀석이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뒤였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는데 바로 여 선생님이 쫓아가서 볼일 보고 옷도 제다로 못 올리고 나오는 녀석의 옷을 매만져 주며 데리고 나왔다.
뒤에서 그를 보는 우리 일행들도 답답하였지만 그 화장실에 있던 여자 분들은 덩치가 인왕산 호랑이만 한 놈이 뛰어 들어와 화장실 문도 안 닫은 채 용변을 보는 모습을 보고 무척 당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이 입장에서 보면 급하니 남자 화장실이고 여자 화장실이고 가릴 거 없이 화장실이니 갔고, 빨리 용변을 보고 나가야 우리들 하고 함께 갈 수 있으니 옷도 안 올리고 달려 나온 것이니 어쩌면 아무런 사심 없는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이한테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기에 내가 손을 잡으며 “OO아, 그렇게도 급했니?” 하고 물었더니 무슨 말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웃기만 하였다.
대전역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복지관에 돌아왔다.
지하철에서 선생님들을 따라 좀 걷던 아이들은 복지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들을 보고는 뒤도 안 돌아 보고 달려갔다.
부모님들이 선생님들한테 수고 하셨다며 네들도 인사해야지 하니까 고개를 가볍게 끄떡여 인사를 하고는 각자 자기 집을 향해 갔다.
이렇게 해서 태종대 나들이는 끝났다.
선생님들 여섯이 남아서 뒷정리를 하고, 갈비탕으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면서 소감도 이야기 하였다.
서로가 고생들 많으셨는데 참 좋았고, 어떻게 하루가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면서 다음에도 이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들 하셨는데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나는 종종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왜 사회복지사가 되려고 하시나요? 의무적으로 하기도 어려운 일인데 왜 자발적으로 내 돈 들여가며 심신의 장애가 있는 사람들하고 함께 하려고 합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질문하는 사람의 표정은 존경스럽고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직접 대 놓고 하지는 않으나 다른 일로도 얼마든지 자선 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는데 당신이 뭐 그렇게 박애정신이 강한 사람이라고 그런 일을 하느냐며 못 마땅하게 눈치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 마다 내가 하는 대답은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하고 싶어서 그런다” 라는 간단한 말인데 솔직히 말해서 나중에는 어떤 생각이 들는지 모르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번에 복지관아이들 하고 부산 태종대에 다녀온 것도 마찬가지다.
체격 좋고 힘 센 아이들과 씨름하고, 아이들한테 무슨 일이나 안 벌어지는지 신경 쓰고 하느라 무척 힘들었지만 어려운 줄 모르고 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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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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