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작별하고 상도동 큰 집을 나섰다.
주말에 7시간 걸려 상경하던 악몽이 떠올라 내려가는 길은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 망설이는데 대천에 들렸다 가면 얼마나 더 멀은 거리냐고 물었다.
아마도 배는 더 걸릴 거 같은데 어항에 들리려고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요즈음 대하와 꽃게가 한창이라는데 한 번 들렸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어항에 한 번쯤 들릴 때도 됐다면서 서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하여 서해고속도로를 탔다.
고속도로는 자기 맘대로 달릴 수 있을 정도로 한적하고, 단풍이 들려면 좀 더 있어야겠지만 비온 뒤의 산과 벼 수확이 끝나가는 들판이 말고 상큼해 보였다.
가슴이 확 트이는 서해 바다를 우측으로 하여 내려오다가 행담도 휴게소 들렸다.
아침나절인데도 정말로 만원 중에 만원이었다.
차는 다음 휴게소에 들려서 마시기로 하고 주차를 하고 평택 항과 대산 항 사이의 먼 바다를 바라보며 서해고속도로에 대해서 설명해줬다.
이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에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고을인 충청 북부 지역의 서산과 당진에서 서울 한 번 가려면 천안을 통하여 가는 길 뿐이어서 한 나절도 더 걸렸는데 지금은 1시간거리이니 얼마나 편리해졌고, 그에 따라 오지 지역이 얼마나 변화하였고, 전라도 오가는 차들로 인하여 만년 교통 체증을 면치 못하던 경부와 호남 고속도로가 숨통이 트였다고 설명했더니 그러냐면서 누구 때 고속도로가 났느냐고 물었다.
국토 개발 장기 계획 차원에서 추진된 것일 텐데 아마 DJ 정권 때에 완공되었을 것이라고 하였더니 골고루 발전해야 좋다고 하여 웃었다.
어항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느낀 것이 뭔가 활력이 되살아나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휴일에 가족 동반하여 해산물 알뜰 쇼핑과 생선회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전에 왔을 때의 분위기가 팍 가라앉아서 이거 큰일구나 하고 걱정할 때와는 영 달랐다.
주차장 입구에 멈춰 서서 차단기 버튼을 눌러대도 아무 반응이 없어 안내판을 봤더니 주차장도 무료였다.
빈 땅 투성이인 바닷가에서 주차장을 만들어 놓고 주차비를 받는 것이 영 못 마땅했었는데 그런 것이 해결된 것을 보니 대천 상인들이나 공공기관에서도 손님을 유치하고, 해산물 시장 경쟁력을 높이기 위하여 정신들이 바짝 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가서 안 그래도 될 만한 시골에서 다만 얼마라도 주차비를 받으면 기분이 안 좋았고, 그런 것은 편하게 쇼핑하며 돈을 쓰고 가야 기분이 좋은 손님들한테 좋지 않은 인상을 주어 소탐대실하는 잘못이라는 생각이었는데 늦게서 그런 것을 깨달은 것이 좀 아쉬웠다.
어항 좌판 시장도 활력이 있었다.
물 좋은 각종 활어도 많았고, 상인과 손님도 많았고, 팔고 사는 흥정소리와 활어를 배달하는 인력거꾼의 “짐이오, 짐” 하는 소리도 많이 들렸고, 생선회를 뜨는 도마 치는 칼 소리와 건어물 말리는데 파리 쫓는 팔랑개비 소리도 도 여기저기서 들리고, 방파제이 부딪히는 파도 소리와 어선 뱃고동소리가 어우려저 들리는 것이 살아 움직이는 포구의 시장 분위기였다.
우리 부부도 은근히 기분이 좋았다.
오늘이 궁정동 안가 사건의 십이륙(10.25)인데 그렇지 않아도 고(故) 박 대통령님과 동명이인인 단골 아주머니 좌판으로 갔더니 안 계시고 젊은 부인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포장 전면에 붙인 연락처와 이름은 맞는데 이상해서 내가 “아줌마가 아니시네” 하였더니 그 부인이 “저의 이모님이신데요 교회 가셨어요. 이모님보다 절대로 적게 안 드릴 테니 걱정하시지 말고 사세요” 하였다.
그러자 데보라가 그게 아니라 “전에 보니까 아줌마가 몸이 좀 불편해지신 거 같던데 걱정이 돼서 그랬어요. 요즈음 꽃게와 대하는 물론 물이 좋을 테고 또 뭐가 좋아요?” 하고 물으니까 나는 들어봐야 모르는 자기들끼리만 알아듣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까 흥정이 끝났는지 살아 움직이는 꽃게를 큰 바구니로 한 바구니 담아 저울에 달더니 아이스박스에 부어 얼음을 넣고 포장하였다.
그런데 데보라가 나를 바라보면서 “뭐 회좀 드시고 가실래요?” 하길래 고개를 저었더니 그럼 저거 값이나 계산하고 가자면서 박스를 들었다.
그래서 얼굴을 물끄러민 바라보았더니 “나는 돈이 없어요. 주머니 돈이 쌈지 돈이라고 글도 썼다면서요?” 하고서 웃길래 속으로 “주머니 돈은 내 돈이 아니라 당신 돈이다” 라고 하고는 계산을 하였다.
전 같으면 싱싱한 생선회를 푸짐하게 먹고 갈 텐데 이제는 입맛도 변했는지 그 것도 별거 아니어서 그냥 가자는 합의도출이 바로 되는 것이었지만 돈 내는 것 까지 그리 쉽게 결정될 줄이야......,
어시장을 빠져 나와 주차장으로 가는 데 승용차와 대형 버스가 계속 밀려 들어왔다.
주차장에서 좌회전하려고 하는데 차들이 연시 들어와서 좀 기다리면서 “그래, 그러면 되는 거야” 라고 중얼거리니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그래서 “지금 다들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내 이야기는 그럴 필요 없다는 거야. 돈이 넉넉한 사람들은 푸르른 대천 앞 바다가 훤히 보이는 비싼 고급 횟집에 점잖게 앉아서 여유롭고 품위 있이 회를 즐기고, 돈이 좀 부족한 사람들은 싼 어시장에 나와서 발품 팔아 생선을 사고 회를 떠서 방파제에 앉아 바쁘면서도 낭만 있게 회를 먹으면 되는 거야. 내 오늘 어항에 와서 보니까 그런 기운이 역력하거든. 이런 상황이라면 어렵다는 경제 금방 풀릴 수도 있고, 우리나라 국민성을 생각할 때 조금만 동기 부여를 하고 기를 살려주면 얼마든지 하고도 남을 국민들이라는 것이야” 라고 하니까 어제 오늘은 장거리 여행을 하면서도 작은 트러블 하나도 없이 어찌 이렇게 의견일치가 잘 되는지 모르겠다며 자기도 동감이라는 것이었다.
대천 바닷가를 떠나 성주산을 넘을 때는 이미 점심때가 넘기 시작하여 좀 출출했다.
그런데도 특별하게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나질 않아 “오늘 오찬은 어디에 가서 무엇으로 모실까요? ” 라고 하였더니 “어제 그 냄비 우동같이 싸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부여 논산가는 길에는 마땅치 않을 테고 글쎄요......, 지금 배고파요? 상도동에서 싸 주신 떡이 아직도 말랑말랑하니 이거 몇 개 먹어보고 나서 결정하는 것이 좋을 거 같은데 내 생각에는 떡으로 요기하고 집에 가서 따끈하게 밥 하고 김치찌개 만들어 한 볼테기 먹을까 싶은데 어때요?” 라고 물어 그게 의견일치가 된 정답이라고 하였다.
집에 와서 짐을 올려다 놓고서 밥을 한 술 뜬 후에 샤워를 하고 직선 코스이 상경과 곡선 코스의 하경 길이었던 440km 장도의 피로를 풀려고 누웠고, 대보라는 아이스박스를 풀러 정리하면서 기분이 좋은지 “야, 오늘 꽃게는 곰지게 잘 샀다” 라는 말을 연발하였다.
나는 잠이 와 가물가물하면서도 “그래, 그러면 되는 거야. 잘 살고 못 사는 게 별 게 아니야. 다들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며 즐겁게 살면 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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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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