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다룰 때 유리그릇 다루듯이 조심조심해야 다루어야 할 경우가 있는가 하면 놋쇠 그릇 다루듯이 마구잡이로 다루어야 제 몫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착각을 하거나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유리그릇을 놋쇠 그릇 다루듯이 하면 깨지는 것은 뻔한 이치고, 놋쇠 그릇을 유리 그릇 다루듯이 퍼런 녹이 슬어 못 쓰게 되는 것은 안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모모네 집은 둘째 아이에 대한 기대가 대단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 형과 여동생은 물론이고 유일한 친구이자 안식처인 애완견까지도 그 아이를 유리그릇처럼 취급하고 있다.
춥거나 더우면 탈이라도 날까봐, 움직이면 작은 흠이라도 날까봐, 누군가 외부인이 건드려서 때나 묻힐까봐, 스스로 잘 적응하지 못 하여 색이라도 변할까봐 다들 벌벌 기면서 그 아이의 눈치를 살피며 조금이라도 불편하지 않게 하려고 온 신경을 다 쓰고 있고, 그 아이는 그런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그 가문의 마지막 보루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종손답게 제 구실을 하느라고 그런지 후덕하여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대학을 졸업한 후에 취직을 하여 제 자리를 잡았고, 막내인 외동딸은 참한 규수가 되기는 벌써부터 글러 먹어 젖혀놨으니 성격은 좀 까닥스럽지만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 하는 둘째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아이는 아주 금지옥엽(金枝玉葉)이다.
집안의 모든 것이 그 아이한테 집중 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 아이는 인간성이 틀려먹었고, 타고난 약골에 신경질적이어서 기 한 번 제대로 펴보지 못하는 가족들은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집채만 한 폭탄이 떨어져도 눈 하나 끄떡 안 하는 여장부 엄마는 그 아이가 눈살 한 번 찌푸리면 왜 그러는지 그를 파악하고 해소시키기 위하여 비상이 걸리고, 집안이 시끌벅적하다가도 그 아이가 올 때만 되면 함구하여 절간같이 조용하고, 식단 전체는 그 아이 취향인데다가 그 아이 식사시간에는 온 식구가 식탁에 앉아 함께 먹는 식사 도우미 역할을 해야 하고......, 한 마디로 숨 막히는 집안이어서 그 아이 입시가 빨리 끝나야지 그런 상태가 지속되다가는 큰일 나게 생겼다.
그 집이 그 아이 때문에 신경이 곤두 서 있다는 것을 알기는 하지만 그런 정도인 줄은 모르던 친구가 우연한 기회에 그런 것을 직접 보고는 질색을 하며 엄마한테 “그렇게 유리 그릇 다루듯이 조심조심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닌데 아이한테 너무 하는 거 아니니? 정성을 기울이고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것이야 어느 부모고 같은 심정이니 이해하지만 다 자기 그릇대로 가는 거야. 가족들이 무리하고, 아이가 자기 능력 이상으로 부담감을 갖고 조마 조마한다고 해서 될 이 아니다. 자칫 잘 못 했다가는 화가 미칠 수도 있으니 조심해라. 할까 말까 망설여서 일을 그르친다거나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마구잡이이어서는 안 되지만 때로는 잡초처럼 자랄 필요도 있는 것인데 뭐가 정답인지 모르겠다” 라고 일갈하였다.
그렇지만 그 엄마는 그런 소리 하려면 당장 나가라고 할 태세인데다가 잘 못 하면 친구들 간에 금이 가게 생겨서 더 이상 말 안 하였다.
내가 갈 길은 썩 좋은 길은 아니지만 우측인데 등 떠 밀려서 좌측으로 간다면......, 당사자 본인은 물론이고 모든 이의 불행이고, 그만큼 손실이 되는 것이다.
내 길이 아니다 싶으면 더 깊숙이 들어가기 전에 얼른 되돌아와야 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은 자기 길을 벌써 정하여 저만큼 가고 있는데 득도가 안 된다고 계룡산에서 일 년, 칠갑산에서 일 년, 오서산에서 일 년 하는 식으로 떠도는 돌팔이 도사처럼 자발없이 이 길 저 길 들락거리다 판이 끝나서는 안 된다.
내가 갈 길은 좌측이다.
그 조건에 그 능력이면 얼마든지 그보다 나은 길을 갈 수도 있었다.
하고 많은 길 중에 왜 하필이며 그 길이냐고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조금 부족할지라도 내가 가야 할 길은 좌측이었고 그를 선택함에 보람과 긍지를 느꼈다.
하는 일마다 신이 나고 재미가 있었다.
가면 갈수록 앞길이 훤하게 보이고 좋은 것이 술술 터져 나와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러면 된 것이다.
그렇다고 도를 넘어 무아지경에 빠져서는 안 된다.
너무 좋으면 그에 빠져서 다른 것을 알지 못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그 것들로부터 실증을 느끼고 한 순간에 함몰될 수도 있으니 가끔은 다른 길을 눈여겨보고 슬쩍 발을 들여 놨다가 빼 볼 필요도 있다.
유리 그릇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아이한테 올인하였다.
그러데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 하고 바닥에 떨어져 흠이 나거나 깨진 유리그릇처럼 된다면 참으로 좌절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붙여 쓸 수도 없고, 버릴 곳도 마땅치 않은 깨진 유리그릇이 한 구석에 방치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슬프게 한다면 우리 모두의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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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연 :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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