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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그러고서도 잘 살고 있으니

by Aphraates 2008. 11. 5.

사람이나 기계나 나이가 들면 버걱거리기 마련이다.


차가 달리면 문 옆에서 바람 소리가 심하고, 라이트가 누렇게 변색된 데다가 한 쪽 라이트에 물이 고여 털면 툭툭 떨어지고, 뒷바퀴도 나른 나른 하고, 어쩌다 시동을 걸려면 발로 탁탁 차야 되는 불편이 있어 은진미륵 서비스 센터에 가서 수리를 받는데 좀 창피했다.

차가 어느 정도의 수령이 되었으면 바꾸던지, 수리를 잘 하던지 해야지 무리하지 않게 살살만 타면 새 차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무관심했었다.

그런데 수리하고 나서 알아보니 내 차처럼 오래 타면서(22만키로/11년) 겉만 멀쩡하지 괄시당한 차도 없었던 것 같아 미안했다.

그런데도 사고 한 번 경험하지 않고 어쩌면 그렇게 차를 깔끔하게 타고 다녔는지 내가 생각해도 우습다.

거금의 수리비가 들어간 것도 문제지만 차의 안전성과 편리성만 챙길 것이 아니라 기능과 외관 면에서도 신경을 써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관심이 없고 몰라서 그런 걸 어떻게 하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차뿐이 아니라 집에서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거 같은데 그러고서도 잘 살고 있으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홍 반장 같은 팔방미인은 아니더라도 남자라면 웬만한 집안일은 할 줄 알아야 하는데 뭘 하면 본전은 고사하고 약값도 안 나오니 차라리 맡기거나 부탁하는 것이 훨씬 나으니 문제다.


청문 틀에 틈새가 벌어져서 바람이 들어온다?

관리사무소에서 나와서 눈 깜짝하는 사이에 고쳐줬다.

베란다의 방충망 창이 떨어졌고 거실의 큰 액자를 걸 수가 없다?

그 분야에서 일하는 지인한테 연락했더니 뭔지 알아듣고는 물어볼 것도 없이 와서는 힘도 안 들이고 장난감 다루듯이 잠깐 사이에 끼고 걸었다.

식탁 다리가 부러져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밥을 먹는다? 

무슨 얘기인가를 하다가 아우님한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어디 가는 길에 들려서는 집어던져도 괜찮을 정도로 견고하게 맞춰주고 갔다.

거실에 있는 대형 화분을 베란다로 옮겨야 하겠는데 괜히 대들었다가 허리라도 삐끗했다가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며 그냥 놔둔다?

친척이 와서 보고는 이렇게 복잡하게 두고 답답해서 어쩌냐며 번쩍 안아다가 내 놓고는 다른 것 더 할 거 없느냐고 물었다.

음용수 정수기나 공기 청정 정화기 필터 하나 교환하려면 연장이라는 연장은 온 거실에 다 늘어놓고 조수까지 꼼짝 못하게 잡아 두고서는 이런 거는 전문가라고 들먹거린다? 

서비스 센터 요원이 오더니 뭐 하는지도 모르게 감쪽같이 해 놓고 가는데 십 여분 종도 걸렸는데 그 것도 커피 마시는 시간까지 포함해서였다.

거실 의자에 앉아있는데 바퀴벌레가 지나가면 저기 벌레가 있다고 소리를 지르며 잡아라 잡아라 한다?

건너 방에서 뭘 하던 사람이 수건을 들고 잽싸게 나와 팍 때려서 잡았다.

이른 새벽 산보 나가는 길에 쓰레기봉투를 들고 승강기를 기다리다가 거기에 누가 타고 있으면 다시 들어와 그 봉투를 현관에 살며시 내려놓는다?

화장을 하다가 그를 본 사람이 하지 말라니까 왜 그러느냐며 맨발로 나가서 버리고 들어왔다.


그러니 나는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고, 어떤 힘과 복으로 사는 것인지......, 그러고서도 잘 살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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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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