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아주 없으면 몰라도

by Aphraates 2008. 11. 6.

지난 주일에는 동문 부부모임에서 청양-홍성(광천)-보령(청라) 3개 시군에 걸쳐 있으면서 산상(山上) 억새 풀 밭으로 유명한 오서산을 등정하였다.

그리고 오천 포구에 가서 전국에서 알아주는 싱싱한 생선회와 간재미 무침으로 즐거운 점심 식사를 하였다.

그 모임에는 정년퇴임을 하신 선배님들도 계시고, 몇 년 사이로 다들 정년을 맞이하는 동기 및 선후배들도 있다.

옛세대들인지라 선후배지간이라도 나이는 뒤죽박죽이지만 거의 동년배들이서 부담이 없는데다가 뭔가 말이 통하고 오붓하니 재미있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참석들 하시는 것 같다.


웃음꽃을 피우며 식사를 하였다.

좋은 것이 나오면 서로 떠 주느라고 바빴고, 드시는 것이 좀 부실하면 그래도 먹는 게 남는 것이라며 조금만 더 드시라고 권유하는 것이 한적한 시골 여염집의 가족 식사 같은 분위기였다.

헌데 가는 세월은 정말로 어쩔 수 없는가 보다.

나도 예외가 아니지만 소맥 폭탄주 잔을 들면서 보니 다들 머리숱이 적은데다가 희끗희끗하시고, 얼굴에는 잔주름들이 패고 피부는 윤기가 줄어 든 것이 마음이 찡했다.

소싯적에는 다들 한가락씩들 하시던 동문들인데 이제는 지난날들을 다 뒤로 하고 주어진 작은 틀에서 살아야 하는 날들이 되었으니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감정을 숨기고 있을 수가 없어서 “선배님 엉아 들이나 후배님 아우들이나 머리와 얼굴을 보니 이제 얼추 돼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건강 조심하시고 즐겁게 사시어서 모임을 오래오래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모임 행사는 자주 하되 저렴하고, 간단하고, 질 높게 하려고 하니 아이디어 있으면 하시라도 하문해 주세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어느 후배님은 “당연하지요. 선배님들이나 우리들이나 지금 나이가 몇인데요? 예전 같으면 수염 허연 꼬부랑 할아버지 노릇 할 나이예요” 라고 하였고, 어느 선배님께서는 “아주 없으면 몰라도 나이 들수록 양보다는 질이 높아야 하니 뭘 하나 하더라도 고품질 소량 위주로 했으면 좋겠다” 라고 하셨는데 두 분의 말씀에 다들 동의하셨다.


아주 없으면 몰라도 먹고 살만 하면 나이가 들수록 무슨 일을 하더라도 품위 있고 고상하게, 옷을 하나 입어도 때깔 나게, 뭘 한 가지 먹어도 몸에 좋고 값나가게 해야 하니 아프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기본적인 돈이 있어야 한다는 어느 노인의 하소연이 떠올랐다.

또한 여행 준비뿐 아니라 일상적으로도 뭘 하나 하더라도 안목 있이 해야 한다며 좋은 것을 해야 한다는 데보라의 가사운용지침(家事運用指針?ㅎㅎㅎ)이 생각났다.

잔칫날에 잘 먹으려고 사흘을 굶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만 쥐어짜면서 절약을 할 때는 하더라도 쓸 때는 과감하게 쓰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엉뚱한 오서산과 오천 바닷가의 모임을 정산하면서 느낀 것이 재미있다.



http://blog.daum.net/kimjyyhm   http://kimjyykll.kll.co.kr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무 고르다가  (0) 2008.11.07
배 째라!  (0) 2008.11.07
그러고서도 잘 살고 있으니  (0) 2008.11.05
손으로 코는 막는데 뒤처리는 안 되고  (0) 2008.11.04
강행군하면서도  (0) 2008.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