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가 있었을 때 문단 모임에서 술을 한 잔 낸 적이 있다.
대단한 일이 아니어서 그냥 지나치려고 하다가 가까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술이라도 한 잔 나누는 것이 도리라는 생각이었고, 집에 가서 품계(品階)를 올렸더니 결재권자인 데보라가 더 적극적으로 찬성하여 자리를 마련했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다들 축하한다며 박수를 쳤다.
그리고 모일 때마다 늘 활력소 역할을 자임하는 한 작가가 일어서서는 축하의 말과 함께 “데보라 언니는 참 좋겠다. 이렇게 착하고, 멋지고, 예의바르고, 좋은 직장에 능력 있는 남편을 두고 있으니 뭘 더 바라겠어요?”라고 하면서 건배를 제의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돌고 잔이 왔다 갔다 할 때 그 말을 한 작가 옆으로 가서 한 잔 권하면서 말했다.
“나는 성질도 고약하여 뭐든지 내 맘대로 이고, 보다시피 이렇게 볼품없는 외모이고, 평생직장으로 알고 열심히 하였으나 능력이 부족한데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거요? 빈말이라도 작가님 이야기가 듣기 싫지는 않고, 데보라도 자기 남편을 최고로 알고 있지만 자신이 항상 부족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니 다행이겠지요?” 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김 작가님만 같으면 아주 준수한 남편이에요. 함께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우리 남편이 김 작가님만 같으면 노상 업고 다니겠네요” 라며 스트레스 받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다시 “늘 함께하다보니 귀한 것을 못 느껴서 그렇지 남들이 보기에는 작가님 네도 아주 멋진 부부예요. 남의 떡이 먹음직스러워 보이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 것이 최고라는 걸 알아야 해요” 라고 하였더니 그런 소리는 많이 듣고 어느 정도 인정은 하지만 현실이 그렇질 못 하다고 했다.
자영업을 하는 친구가 전화를 하여 이번 주일에 얼굴이나 보자고 했다.
시간을 내면 못 낼 것이야 없지만 다른 스케줄이 있어 편칠 못할 거 같아서 다음에 하자고 양해를 구했다.
“다음 주 월요일이 우리 회사 기념일이어서 3일 연휴이긴 한데......,” 라고 하는데 중간에 “그렇게 여유로우니 참 좋겠다. 어디 여행을 가려고 그러니?”라고 물었다.
이 나이에도 불철주야 뛰는 친구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좋긴 뭘? 부족하여 허덕이며 사는 것은 다 마찬가지야. 토요일에는 청양 본가에서 김장하는데 사역가야하고, 주일날에는 성당 축하행사와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고, 월요일에는 병원과 복지관에 다녀와야 해. 없는 살림에 맨 돈 쓰는 일만 몰고 다니네 그려”라고 하였더니 그렇게 살면 잘 사는 거지 누구는 별 수 있느냐며 그럼 다음에 다시 연락할 테니 그 때는 좀 만나서 오붓한 시간을 갖자고 하였다.
언니는 참 좋겠다.
동생은 참 더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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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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