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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텔레병

by Aphraates 2009. 6. 23.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라고 한다.

빨리빨리의 성과물이다.

그러나 불편 없이 사용하고 있으니 그를 잘 못 느끼지 못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더 빠른 시스템으로 바꾼다.

조금만 느리거나 문제가 생기면 불만이어서 항의를 한다.

다혈질인 민족성의 영향도 있지만 우리보다 앞선 나라에서 인터넷이나 피시에 이상이 있을 때 그를 고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복잡하다는 글을 보니 외국 사람들은 참 무던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신속하고도 정확한 인터넷 서비스를 받았는데 우리나라가 다른 외국에 비하여 많이 앞서 간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제 저녁에 피시 작업을 하다가 뭔가를 말 못 만졌는지 인터넷의 일부분이 원활치 못하였다.

사용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지만 되던 것이 안 되니 좀 불편하였다.

매뉴얼이나 도움말을 보고 천천히 하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다른 일이 있어서 인터넷으로 전화국에 원격 서비스를 신청하였다.

아침 출근 시간이 되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담당자가 서비스 요청 사항과 문제점을 확인하였다.

곧 이어서 서비스 닥터와 연결이 되어 신고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터넷과 피시 전반에 걸쳐 칼큼하게 점검과 수리를 받았다.

인터넷과 피시가 팽팽 잘 돌아가는 것이 안 되던 일도 잘 될 거 같아 기분이 띵호아였다.


이쯤에서 최근에 겪은 전화와 인터넷에 관련 일들을 떠올리며 “Tele” 접두사가 붙는 것들과 텔레병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텔레마케팅(Tele-Marketing)이나 텔레 잡(Tele-Job)은 컴퓨터를 어느 정도 알고 이용하는 사람들한테는 보편화 돼 있다.

우리는 그런 거 모르고 알라고 할 필요도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를 이용하면 물건을 사고팔거나 일을 할 때 참 신속하고 편리하다.

웬만한 기능을 가진 모빌 한 대면 끝이다.

계약서 쓰고 현품 확인해야 하고 하는 수고가 아니어도 수억 원어치 물 건 을 순식간에 사고팔 수 있고, 날도 더운데 대전-광주-대구-부산에 들려 일일이 안 찍어도 칠갑산(七甲山) 용못골에서 시원한 물에 발 담그고 맥주 마셔가면서도 신속하게 해야 할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이제는 전화로 멀리 계신 부모님께 안부를 여쭙거나 중국집에 자장면이나 시키던 시대가 아니어서 첨단화 된 전화를 잘 활용해야 시대 흐름에 호흡할 수 있지 그러지 못 하면 시대에 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이 전화를 리드하고 자유로워야지 추종하고 매이면 곤란하다.

돈을 귀하게 여기고 요긴하게 쓰면 좋지만 돈에 매여 허덕이면 추한 것과 같은 이치인데 전화의 추종관계는 그 사용 내역이나 습관을 보면 안다.


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는 두 사람을 비교해봤다.


L 네 집은 전화요금이 오십 만원 정도가 나온다.

사용 내역은 투명하다.

엄청나게 많은 통화수이자 다른 번호인 국내 통화와 여로 곳을 통하여 빈번하게 정보를 검색하고 취득한 정보이용료다.

그만큼 부동산 중개의 본업을 위하여 많은 고객들과 통화를 하고,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하여 인터넷을 사용했다는 이야기이니 건전하고 역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닌게 아니라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는 비밀이라서 안 알려주지만 그 사무실에 들려보면 활력이 넘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통화를 하지만 짧게 짧게 하기 때문에 바로 바로 통화 연결되는 것이 공인중개업소라고 부르기 보다는 부동산 개발회사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


S 네 집도 L 네와 전화요금이 비슷하게 나온다.

그러나 내역 면에서는 차이가 많고 아리송하다.

적은 통화수이자 같은 번호인 국내외 통화와 몇몇 군데의 게임을 비롯한 유사한 것들을 이용한 이용료다.

본업은 뒷전이고 게임같은 것을 하거나 전화통을 붙잡고 누군가와 장시간 통화를 했다는 이야기이니 불건전하고 감쇠적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그 집에 가 보면 그런 걸 느낀다.

썰렁하고, 사람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른 채 졸고 있, 계속 통화중이어서  전화 한번 하려면 짜증부터 난다.

중개사무소라는 호칭도 과분하고 동네 노인들 쉼터인 골목길 입구의 복덕방이라고 하는 편이 낫다.


S는 텔레병(Tele病)이다.

복덕방 일은 저 만큼이고 첫날밤 지내기 전의 남녀 같이 시도 때도 없이 전화기를 붙잡고서 떨어질지를 모른다.

텔레병이란 말은 이 글에서만 쓰려고 내가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1회용 단어인데 전화에 목숨거는 전화병(電話兵)도 아닌 것을 전화에 목이 매이는 것은 정신적인 중증 장애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써 봤다.

우리나라의 텔레병은 미국 정신의학회에서까지 “한국인에게 주로 나타나는 분노증후군”이라고 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하는데 인터넷 강국의 장점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무한질주하는 것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속도조절이 필요할 거 같다.


성당에서 단체 회합을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전화기 진동소리가 들렸다.

서로 얼굴을 쳐다보다가 앞에 앉아 있는 자매님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호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번호를 확인하고 밖으로 나갔다.

통화를 끝낸 자매님이 잠시 후에 들어왔다.

자매님이 나가면서 회합이 잠시 중단되었고, 다들 자매님이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 그 자매님이 뭐라고 한 마디는 해야 할 것 같았다.

둘러댈지 모르는 순박하고 착한 자매님인지라 전화 왔던 것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였는데 딸아이가 저녁을 뭘 사 먹고 들어가느냐고 물어서 알려줬다며 겸연쩍어 하였다.

다들 파안대소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아이는 2년차 대학생으로서 그런 것 정도는 제가 스스로 알아서 해결할 수 있을 나이라는 것을 다 알기 때문이었다.

다 큰 아이가 밖에 나와 있는 엄마한테 전화를 하여 뭘 사먹어야 되느냐고 물어봤다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요즈음 아이들이 연약하고 자기 주관이 약하다는 것은 알지만 마마 걸 스타일이 아닌 그 아이조차 작은 일 하나만 있어도 엄마한테 쪼르르 전화하여 자문을 구한다니 차마 그럴 줄은 몰랐다.

그리고 아이들이 제들끼리 저녁 한 끼 먹는 것까지 엄마한테 물어본다면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전화기에 매어있는 지 모를 일이니 전화병에 걸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되었다.

그런 것을 모녀지간에 정이 깊다고 칭찬을 해 줘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러다가는 시집도 엄마가 대신 가 줘야 할지도 모르니 지금부터라도 서서히 트레이닝을 시켜야한다고 충고를 해 줘야 하는 것인지 감이 안 잡혔다.


텔레병에 걸린 사람이 어디 아이들뿐인가?

어른들도 적지 않다.

전화기가 쉴 새 없다.

전화기를 한 번 잡았다 하면 얼마 동안 통화했는지 모를 정도로 길다.

전화 예절은 따질 것도 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차 안에서, 걸어가면서, 공공장소에서,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옆에 있거나 말거나 시시콜콜한 내용의 전화를 걸거나 받기도 한다.

언젠가는 불 꺼진 공원 화장실에 아무 생각없이 들어갔다가 전화를 하며 슬피 우는 꼭지 덜 떨어진 사람 때문에 기겁을 하고 튀어 나온 적도 있다.

자질구레한 일로 늘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것은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안 하면 불안하여 견디기 어려운 것은 텔레병이다.

텔레마케팅이나 텔레잡이 아니더라도 필요할 때 전화를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강아지가 밥을 먹였느냐를 놓고 전화가 오고가는 식으로 농한기에 시골 동네 사랑방 대담하듯이 한다면 전화를 거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나사가 몇 개 정도는 풀린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집은 국선전화 한 대, 모빌 두 대, 인터넷 1회선이다.

이용료는 한 달에 거의 고정빼기로 십 삼 만 원 정도 나오는데 다른 집에 비하면 적은 편이지만 이용료 때문에 국내외 전화와 정보 이용에 제약을 받지는 않는다.

다른 집에 비하면 전화를 덜 사랑하고, 자료 검색은 무료를 주로 이용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집 출신이라서 그런지 전화를 사랑하는 것을 넘어 텔레병에 걸린 사람을 보면 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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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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