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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먹는 입을 바라보니

by Aphraates 2009. 6. 23.

오늘은 직속 상사인 경영진으로부터 인간적인 모멸감이 들 정도로 심한 질책을 당한 동료 간부하고 나란히 앉아서 식사를 하였다.

질책당하는 것을 직접 보진 못하였지만 대단했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얼마나 요란하였는지 당사자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그 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고, 서로 미안하여 함께하는 것조차도 꺼렸다.

그 건이 발생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결국은 회사와 다른 동료들에게 크게 누를 끼친 것이 되었으니 할 말이 없어서 당사자로서는 말 그대로 자식새끼들만 아니면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식당에 가 보니 그 동료 혼자서 고개를 숙이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절박한 지경이었을 때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와 비슷한 크고 작은 많은 것들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그 동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라도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옆에 앉았다.


我 : 밥맛없게 시리 왜 혼자요? 혼난 것 때문에?

彼 : (의자를 밀치며) 어서 오세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我 : 왜 안 그러겠어요? 그 일 처리하느라고 고생했어요? 그 후유증이 오래 갈 거 같은데 잘 대처하도록 해요. 그 양반인들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다 잘 해 보자는 뜻이고, 조직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너무 깊이 담아두지는 말아요. 그런 일 한두 번 겪어 보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많을 텐데 잘해보도록 해요.

彼 : 고맙습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니 수긍하고 이해는 하지만 사는 게 참 어렵군요.

我 : 그런 소리는 나 같은 사람이나 하는 것이고 당신 같은 사람이 그런 일로 그러면 시스템이 붕괴돼요. 지금은 술 맛도 없을 테니 다음에 아늑하고 흐드러지게 한 잔 합시다.

彼 : 예, 제가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그렇게 소곤소곤 이야기하며 밥을 먹다가 고개를 들어 그 동료의 먹는 입을 바라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 수난을 당하고서도 먹고 살겠다고 움직이는 입이 그렇게 애처로울 수가 없었고, 그런 것을 누가 알아 줄 것인가 하는 처절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나라도 잠시나마 함께 한 것이 다행이라 여겨졌고, 잘못은 잘못이더라도 그를 위해 주고 변명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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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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