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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라이방

by Aphraates 2014. 8. 21.

시골에서는 안경 쓴 모습을 보기도 쉽지 않았던 시절에 라이방(Ray Ban)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었다.

라이방은 특별한 사람들이나 쓰는 것으로 알았다.

대개가 검은 선글라스(sunglass) 형태였다.

부자인 멋쟁이들이나 연예인들, 중요한 국가 기밀을 다루는 비밀요원들이나 간첩들이나 쓰는 것으로 알았다.

 

보통 사람들이 라이방을 쓰고 다니면 건방져 보였다.

햇볕이 없는 비 오는 날이나 밤중에 시커먼 라이방을 쓰고 다니면 남들 안 하는 짓을 하고 다니는 허파에 바람들어간 사람들이라 비웃었다.

강한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하여 짙은 색깔이 있는 라이방이 필수품인 열대지방이나 북유럽 지역이 아닌 우리나라 같이 라이방을 안 써도 시력보호에 큰 지장이 없는 곳에서 누구인지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얼굴을 가리는 짙은 라이방을 쓰고 다니는 것은 건방지다는 소리를 듣기 안성맞춤이었다.

 

지금은 라이방이 보편화됐다.

우리나라가 경제 규모가 커지고 생활의 질이 높아지면서 서구화를 추구하게 됨에 따라 코쟁이들이나 쓰는 것으로 알고 있던 라이방이 자연스럽게 일상용품으로 변한 것이다.

강열한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해야 하는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햇빛에 노출되는 운전자들처럼 눈을 보호를 하기 위하여 라이방을 썼고, 장단거리 여행을 할 때 챙겨야 하는 여행용품이 되기도 했다.

머리 허옇게 얼굴 쭈글쭈글한 노인들도 한여름에는 라이방을 쓰고 다니시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다.

값도 저렴하다.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지 어떤지 모르겠으나 외국 유명 메이커 브랜드 라이방은 기 십만 원씩 하지만 국내산은 저렴하여 눈의 도수에 맞게 만든 라이방도 몇 만 원에 부담 없이 구입할 수가 있다.

 

지인을 만나기 위하여 시청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검은 안경을 쓴 훤칠한 키의 여자가 옆에서 오기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안경을 벗고 나한테 어디 가시냐며 인사를 해서 보니 OO 엄마였다.

길바닥에서 길게 얘기할 것은 아니어서 바로 가던 길을 갔는데 성형수술을 하여 가리려고 그런 것도 아니구먼 햇빛도 없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흐릿한 날에 웬 라이방인지 건방져보였다.

연예인들이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 밤에도 커다란 라이방을 쓰고 다닌다거나 밴드들이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하여 얼굴에 착 달라붙는 라이방을 쓴다는 것처럼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것이고, 그럴만한 사정이 없다면 꼭지가 좀 덜 떨어진 것이라고 나 홀로 짐작하면 되는 것이니 라이방을 안 쓴 내 입장에서 판단할 것은 아니다.

 

성경에도 “남을 심판하지 마라”고 했다.

하마터면 그를 잊고 그 애 엄마한테 실수할 뻔한 것처럼 의리(義理)를 외치는 연예인 K군한테도 그랬다.

그는 주야장천(晝夜長川) 검은 라이방을 쓰고 다닌다.

연예인이니까 그를 자기의 컨셉(concept) 으로 삼는가보다 라고 이해하면서도 아무래도 시건방끼가 있는 것 같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한데 그게 오판이었다.

자동차에서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그의 눈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라이방을 안 쓸 수가 없다는 진행자의 말을 듣고는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는 노상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피치 못 할 사정으로 라이방을 쓰고 다니는 그 연예인을 내적으로는 이미 오판을 하는 실수를 하였고, 외적으로도 언젠가는 건방지다고 오판할 판이었는데 건전한 그한테 나쁜 생각을 한 것이 미안했다.

그런 그가 “모닝와이드-웨더쇼”에 나와 검은 안경을 쓴 채 제대로 한 방을 날리는 모습이 좋았다.

 

라이방에 대한 오해로 완벽한 실수를 하려다가 반반의 실수를 하였으니 빨리 그로부터 빠져 나오면 되는 것이고......,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난관을 헤치고 밝게 살아가는 의리의 라이방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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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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