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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원생

by Aphraates 2014. 8. 23.

퇴직 후에도 현직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크고 작은 모임 몇 개가 있다.

내가 종사하던 직업과는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거기에서 복무했기 때문에 각종 모임들과 연결이 된 것이다.

수십 년을 이어온 모임들이 별 탈 없이 이어져 오는 것은 모임마다의 정체성이 잘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고, 구성원들 간의 일체감이 형성돼 있다는 것을 반증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심(沈) 교수님 대학원 문하생(門下生) 모임이 있었다.

이십 여명의 모임이지만 어떤 조직의 형태를 갖는 것도 아니고, 일 년에 서너 차례 모이지만 정기적인 회의를 하는 것은 아니다.

모일만한 일이 있으면 모교(母校)에 근무하면서 모임의 연락책을 맡고 있는 이(李) 선생의 주선으로 모여서 간단한 연회와 함께 대화의 광장을 갖는 자연스럽고 소박한 모임이다.

 

오늘의 모임은 교수님의 대학원장 축하 자리였다.

월드컵 경기장 부속건물에 위치한 E에서였다.

모임에 앞서 가톨릭에 대한 얘기가 있었다.

교수님을 비롯한 선후배님들이 월드컵 경기장을 바라보시면서 나를 보고는 지난번 프란치스코 교황님 오셨을 때 여기 왔었겠다면서 가톨릭이 대단하고 존경받을 만하더라고 좋은 말씀들이 자자했다.

여러 사람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새벽부터 움직여야 한다는 것 이외는 평소 하던 대로 한 것인데 아무 탈 없이 잘 된 공동체 행사였고, 국민들께서 천주교를 사랑하시고 도와주셔서 가능했던 것으로 불편을 드린 것에 대해서 미안하고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를 드렸다.

그러자 다들 이곳을 지나면서 또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하여 봤지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면서 그런 불편이라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고, 함께 기뻐한 그런 것이 도움이라면 얼마든지 더 할 수 있다고들 하시는데 기뻤다.

 

문하생들을 대표하여 내가 다시 한 번 축하의 인사를 드렸다.

제자들로서 영광으로 여기고, 이게 교수님의 끝 보직이실 거 같은데 건강 조심하시면서 즐겁게 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씀드렸다.

교수님께서는 보직을 맡을 처지가 아닌데 어떻게 하다 보니 맡게 됐다면서 정성을 들여 소임을 다 할 것이라고 하셨고, 취임한지 얼마 안 됐는데도 원장을 맡으므로 서 따라오는 다른 몇 개의 보직을 겸직하게 되다보니 부수적인 행정과 행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가르치는 일에 아무래도 소홀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하셨다.

이어서 선후배 동문들이 돌아가면서 근황을 소개했다.

사업가, 회사원, 공무원, 교사, 백수 등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동문들께서 최근 본인의 동정과 주변 동향을 이야기하는데 실감이 났다.

좋은 일들도 많고, 언짢은 일들도 많지만 그에 연연하지 않고 열심히들 살아가는 모습이 성패(成敗) 여부를 떠나 자랑스러웠다.

 

참 좋은 시간이었다.

대학원 시절 원탁 토론 수업을 하듯이 옛 모습 그대로였다.

각자의 입장에서 볼 때 긍정해야 할 일들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성인(知性人)답게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이성을 지키면서 정성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요즈음 여기저기서 소통과 통합의 소리가 자주 등장하는데 지나간 사람들이 모여서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다가올 날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조촐한 우리들의 만남이 그의 모범사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흐뭇한 기분이었다.

현세의 원생(院生)을 과거의 생원(生員)이라 해도 좋을 듯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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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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