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0.05
지도상에도 안 나타난 심심산천(深深山川)일지라도 지도만 펼치면 눈에 확 뜨이는 휘황찬란한 도시보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이 좋다.
비가 오면 판잣집이 무너질까 걱정이고, 겨울이 되면 가스 중독이나 안 될까 두려운 달동네일지라도 비가 와도 비가 오는지 뭔지 알 바 아니고, 사시사철 냉난방기가 돌아가 쾌적한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부촌보다는 손때가 뭇고 삶의 애환이 깃든 터전이 더 끌린다.
현대 문명 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진 호화로운 저택일지라도 맘이 편칠 않지만 초롱불 켜 놓은 온돌방의 초가삼간(草家三間)에 가면 맘이 포근하다.
어찌 보면 반대로 나아가는 청개구리 심보가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비록 초라하여 보잘 것 없을지라도 자기의 뿌리나 근본을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것은 인간 기본 성향인 회귀(回歸) 본능이 아닌가 한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하지만 타향에 살다보면 타관 타는 것을 느끼는 것은 아무래도 타향이 고향과는 격이 다른 것이고, 내 집처럼 편안하게 지내라고 하지만 남의 집은 어쩐지 어설프고 불편한 것은 함께 한 것들에 대한 애증이 깃들여 있어서 그럴 것이다.
구수한 된장국이 길들여진 사람한테 최고급의 스테이크를 칼질하라는 것처럼 구미에 맞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도 할 것이다.
제 놀던 물이 좋다고 한다.
그런 것은 사람이 덜 깨이고 진취적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낯설고 새로운 것보다는 낯익고 해묵은 것을 더 친밀하게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원적지(原籍地)는 아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자기 동네가 좋다고 들 말한다.
현재 사는 곳이 다소 불편하거나 경제적으로 이득이 적을지라도 정이 들면 그 곳을 떠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맘이 그렇다.
다른 곳보다는 자기 동네를 더 좋아하니 자랑을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특별한 애향심이 있다던가 우리 것이 좋다는 선조님들의 말씀을 실천하려는 차원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저 좋아하는 것인데 그게 올바른 맘가짐일 것이다.
너무 오버하는 측면도 없진 않다.
곳곳을 돌다가 대덕구의 S동에 정착한 친구는 자기네 동네가 번잡하지 않은데다가 계족산도 가깝고 하여 연령층 구분할 거 없이 살기 좋은 곳이라면서 그 곳으로 이사 오라고 권하기도 한다.
내가 볼 때는 좀 다르다.
그 지역은 시내 변두리 끝자락에 자리 잡은 맹지 비슷한 곳이고, 바로 옆으로 경부 고속도로를 따라 길게 줄지어 의치한 곳이기 때문에 매력 있는 주택단지는 아니다.
실정을 뻔히 다 아는데 만날 때마다 자기 동네 자랑이니 짜증난다.
그렇다고 싫은 것을 내색하기는 싫다.
속으로는 내가 약 먹었간디 그런 변두리로 가느냐고 하지만 겉으로는 유연하게 나온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 다르듯이 주거 여건을 좋아하는 것도 다 달라서 나는 거기로 이사 갈 맘이 없으니 네들이나 거기서 건강히 살라고 한다.
남쪽 끝인 금산 방향의 S와 북쪽 끝인 청주 가는 쪽의 S에 사는 지인들도 자기 동네가 좋다고 하는데 는 인색하지 않다.
아직 개발이 덜 되어 불편한 점이 있지만 재경 지역인 북으로 뻗어나가는 장래를 봐서는 전망이 밝으니 투자 차원에서 그 곳으로 오라고 한다.
뻥튀기하면서 사람들을 홀리는 호객꾼도 아니고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다.
꼬신다고 해서 넘어갈 사람도 아니고, 돈이 눈에 보인다 해도 당장 투자할 돈이 없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지만 그들이 자랑하는 것은 사실과는 괴리감이 크다.
대전 토박이나 다름없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그곳들은 고등학교 다니던 1970년대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것을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인데 자기가 살고 있어 좋다니 통할 수 없는 얘기다.
J동과 G동으로 이어지는 논산 방향에 사는 사람들도 자기 동네 자랑하는 데는 일가견이 있다.
널찍한 지역이고, 산수 좋고, 교통도 편리한데 비해 집값은 비교적 낮은 지역으로 조건이 좋아 거기에 뿌리를 내렸다고 칭찬한다.
생각하는 것도 가지가지다.
대전이야 서울 같은 대도시도 아니고 지방 거점도시로서 산수 안 좋고 교통 불편한데가 어디 있다고 왜 그렇게 스스로 외곽지역에 살고 있는 티를 내는 것인지 그렇게 좋으면 좋은 사람들이나 거기서 살면 될 것이다.
보는 눈도 다 제각각이다.
완전 아파트 숲으로 맥질한 W동과 H동으로 연결되는 서남부권, 세종시를 잇는 N과 G동 등 최근의 신도시 쪽에 사는 사람들은 아파트 단지와 아파트가 잘 설계된 지역으로 예전 아파트와는 격이 다르다며 값도 만만치 않다고 싱글벙글한다.
그 곳들은 기반시설 인프라가 미흡한 베드타운(bed town : 잠자는 위성도시)으로서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다가 최근 거품이 빠지면서 집값이 하락하여 빈 집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고가의 새 집이어서 좋다고 하는 집에 가 봐도 별로 끌리는 것이 없고, 뭐 하나를 하려고 해도 도심지로 나와야 하는 것은 여타 변두리 지역과 다를 바 없을 텐데 뭐가 그리 좋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대전(大田) 시내를 놓고 객관적으로 볼 때 중구와 동구의 구도심 권과 재개발 지역, 북부 공단지역과 테크노 밸리, 유성구와 대덕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등도 사정은 비슷할 것 같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던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 동네가 좋다고 한다.
그런 성향을 생각하면 마음에 마음을 물질에 물질로 평가할 수는 없다는 생각과 함께 나와 내 것을 고집하는 아집도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도심지 한 복판에 사는 입장에서 그 동네들을 볼 때야 눈에 안 차지만 그 동네 사람들이 볼 때는 둔산 지역을 볼 때는 복잡한 주거환경이라고 호감을 갖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귀여워한다고 하는 것처럼 사실인지 착각인지 모르지만 저 사는 곳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거두절미(去頭截尾)하고.
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오늘 하루 미당(美堂) 작가의 일정을 감안해 볼 때 새벽(성당)부터 아침(집)-점심(만년동)-오후(둔산동)-저녁(삼천동)으로 이어지게 돼 있다.
내가 주도하여 임의적으로 만든 것도 아닌데 둔산동을 중심으로 하여 회합과 행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자기 동네가 좋다고 갑론을박하기에 앞서 집터의 편리성과 중요성을 다시금 생각게 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니 사족을 덧붙일 것도 없을 것이다.
가난한 농촌 출신이면서도 귀촌이나 전원생활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치는 이율배반적인 것을 뭐라고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지만 자기 고향과 자기가 사는 동네가 좋다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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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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