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가수 T씨가 인터넷 검색 상위 순위에 올라 있어 검색을 해 봤다.
노래로는 한 물 간 축에 드는 가수다.
대신에 운영하는 무슨 연예 기획사는 그럭저럭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기인으로서 루머에 휩싸일 처지도 아닌 데 검색 순위에 올랐다는 것이 이상했고, 혹시 절친하게 지내는 S 가수처럼 기획 부동산 같은 무슨 황당한 사고나 안 저질렀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들여다 본 것이다.
하나 불미스런 일은 아니었다.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가 최근 다시 가수로 컴백한 윤(尹) 씨 가수가 그가 운영하는 연예기획사로 들어갔다는 것이 화제가 되어 여러 사람들이 검색을 한 것이었다.
한데 T씨와 관련된 기사를 검색하다보니 눈에 익은 C씨의 이름이 나왔다.
얼핏 알기로는 C씨는 상당한 저명인사였다.
흥미로워서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니 그 분이었다.
너무 뜻밖이어서 신음소리가 절로 나왔다.
내가 한남동 학교에 복학(復學)을 하고 가구 세일을 할 때다.
말 그 대로 죽지 못 해 사는 근근한 시절이어서 아주 기억이 생생하다.
1977년 초여름이었다.
학생 신분으로 남영동 미8군 앞의 J가구 외판원으로 근무했다.
우리들 세일즈 무대는 그 당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서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부자 동네라고 소문이 난 여의도(汝矣島)였다.
하루는 S 아파트에 판촉활동을 나갔다.
1개 층에 4세대인 정방형 60평 크기의 대형 고급 아파트로 가장 인기 좋던 아파트였다.
벨을 누르며 호호 방문을 해 나가는데 어느 집엔가 가서 벨을 누르니까 나이 지긋한 분이 문을 열면서 들어오라고 했다.
쓰던 소파가 낡아서 천갈이를 해야겠는데 가능하겠느냐면서 소파를 가리키는데 천갈이만 하면 새 것처럼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즉석에서 보통 수준보다는 높게 수리비용을 산정하여 계약을 했다.
언제쯤 소파를 가지러 오느냐고 물었더니 며칠 후에 조카아이가 집에 있을 텐데 그 때 와서 가져가라고 했다.
약속한 날에 용달차를 불러서 그 아파트로 갔다.
그 분은 안 계시고 말씀하시던 우리 또래 정도인 조카라는 수더분한 여자가 문을 열어줬다.
삼촌으로부터 말씀을 들었다면서 잠시 시원한 거 한 잔 하시고 소파를 내려가라고 하였다.
널찍한 거실에서 잠시 기다리자 차를 내왔는데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다.
뭔지 이름도 모르지만 제법 고급 티가 나는 시원하고 맛있는 음료수를 마시는데 서로 할 말이 없었다.
말 주변 없는 내가 먼저 입을 열어 “사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하고 물었더니 급한 일로 해외 출장을 나가셨다고 했다.
그 때는 중동 건설에 따른 오일 머니로 신바람 나던 우리나라 건설업계였고, 전체적으로 경기가 팡팡 잘 돌아갈 때였다.
돈줄을 따라 해외로 나가는 것은 선택받은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특혜였기 때문에 부러워서 사장님은 참 좋으시겠다고 했더니 그 여자가 가볍게 웃으면서 삼촌에 대해서 말해줬다.
육사를 나오신 5.16 혁명동지의 장군 출신으로서 건설부 장관을 역임하시고 지금은 국내 최대인 H 건설사 사장으로 계시다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자 겁이 벌컥 났다.
내가 보기에는 하늘같이 높은 대단한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소파 천갈이를 잘 해드려야 자칫 잘못 했다가는 이거 큰일 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나중에 후회한 것이지만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죽도록 고생하는 입장에서 그 분한테 매달렸으면 어떤 길이 열렸을지도 모르는데 그 때 왜 그 생각을 못 했나 하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소파 천갈이도 잘 해다 드리고, 다른 가구를 용산 삼각지 어떤 아파트로 옮겨다 주는 잔심부름도 했다.
그 분께서는 날 보고 특공대원 출신답게 젊은 사람이 열심히 일한다는 칭찬과 넉넉한 사례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한데 이제 알고 보니 그 분이 가수 T씨 건과 관련된 C 사장님이셨다.
오너는 아니고 고용 사장이었지만 장관 출신답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그 분을 뵈었을 때는 이미 T씨 건이 터지고 난 2년 후이니 아마도 그 일로 인하여 맘고생이 심하셨을 때인 것 같다.
나는 그 뒤로 바로 평생직장에 입사하여 서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고향 지역 사업소로 도망쳐 왔고, 그 분에 대해서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런 일에 그런 분이었다는 것을 알고 재회한 격이어서 맘이 좀 무거웠다.
C사장님이 지금은 어찌 지내시나 하고 여러 방면으로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지난 6월에 돌아가셨다는 부고 기사가 있었다.
자세히 몰라봐서 죄송하기도 했고, 그런 안 좋은 일들을 늦게나마 알게 되어 난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 지난 일들이다.
앞으로 그 분과 어떤 인연이 이어질지 모르지만 지난 인연에 대해서 알게 된다면 그 때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좋게 넘어가고 싶다.
임께서는 아흔이 훌쩍 넘어서 돌아가신 것이니 천수를 다 한 것이지만 이승의 온갖 좋은 일 나쁜 일 다 잊어버리시고 평안하게 쉬시라고 청했고,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시라고 기도를 드렸다.
아, 정말로 그 분이었구나.
http://blog.daum.net/kimjyyhm
http://www.facebook.com/kimjyyfb
http://twitter.com/kimjyytwt
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려주세요 (0) | 2014.10.08 |
---|---|
세경도 못 주는 판에 (0) | 2014.10.07 |
자기 동네가 좋단다 (0) | 2014.10.05 |
맹신 (0) | 2014.10.04 |
하자는 대로 하는 것도 (0) | 2014.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