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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그 츄리닝복은 집어넣고

by Aphraates 2014. 11. 5.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 때는 이 사람 저 사람들한테 주고 또 줘도 남아돌던 츄리닝(Training)복이었다.

한 때는 무슨 행사만 있으면 마련하던 츄리닝복이었는데 세월 따라 변하고, 그나마 일선에서 물러나 활동이 뜸하니 그도 궁하다.

어찌 어찌하다가 남겨진 몇 벌만 갖고도 평생을 입고 남음이 있겠지만 철철 넘칠 때와 달리 줄어든 츄리닝복을 보관하는 장롱 서랍과 옷걸이를 보니 인생무상(人生無常)같은 것을 느낀다.

 

이십 년 정도 된 츄리닝복이 있다.

처음에는 황금색에 가까운 당시로서는 브랜드 있는 상품(上品)이었으나 지금은 색도 누렇게 바래고, 입으면 바보가 입은 것처럼 후줄근하고, 보온과 보습도 시원치 않고, 디자인도 구닥다리가 되어 웬만한 사람 같으면 벌써 집어내버렸을 정도로 낡았다.

다른 것도 몇 벌 있지만 추운 날씨가 아닐 때는 곧잘 그 츄리닝복을 애착하는데 흘러간 애인인 사 준 것이라던가 하는 등등의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입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정이 들고 몸에 맞았다.

애지중지(愛之重之)하던 그 것도 이제는 엉덩이 부분이 나른 나른해졌다.

거기가 헤지면 기워 입을 것인지 폐기 처분해야 할 것인지는 그 때 가서 결정할 문제이니 신경 안 쓰지만 그 츄리닝복은 초겨울의 찬바람만 조금 불어도 숭숭 바람이 들어와 착용할 수가 없어 조금 더 나은 다른 것으로 바꿔 입어야 한다.

 

오늘 새벽 산책할 때 얼떨결에 여름 내내 입던 엷고 그 츄리닝복을 입고 나갔다가 추워서 혼났다.

추위에 강한 내가 그렇게 느낄 정도면 얇은 츄리닝복 탓이라기보다는 날씨가 차가와졌다는 것이므로 내일부터는 다른 것으로 바꿔 입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슴으로 파고드는 기운이 써늘하여 풀어 제쳤던 지퍼를 채웠지만 차가운 기운은 여전했다.

평소 같았으면 등에 땀이 좀 났을 만큼 걸었을 테지만 몸의 냉기가 내내 마찬가지여서 팔다리를 힘차게 움직이는 것으로 좀 과도하게 걸었지만 그게 찬기를 이겨내지는 못 했다.

걷다 말고 서둘러 집에 들어왔다.

예정 코스를 다 돌지 못 하고 도중하차(途中下車)한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더워서 야단이더니 그게 얼마나 됐다고 몸을 움츠리며 춥다고 하는 것인지 내가 나를 생각해도 한심스러웠으나 고풀들려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훨 나으니 시전 조치는 해야 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 츄리닝복은 세탁함에 집어넣었다.

오늘 오후나 내일이면 우리 내상(內相)께서 깨끗하게 세탁하고 건조시켜 착착 갠 모습으로 옷장 서랍에 입고시킬 것이다.

나는 이제 길났다며 내 년에 다시 입게 잘 두라고 하는 데 반해 데보라는 입을 만큼 입어어서 이제는 후줄근해져 못 입겠다고 버리려고 하는 의견불일치가 있은 것이 수년째다.

신주 단지 모시듯이 한 것은 아니지만 정이 들어 입던 것인데 그렇게 수명을 다 해 가니 나도 더 이상 그 츄리닝복을 고집부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음에 옷을 다시 꺼낼 때가 되면 시간을 두고 좀 생각해봐야겠다.

 

그나저나 “저는 츄리닝복 장사해서 이런 영광스런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시던 우리 이(李) 의원님과 문화동 학교 체육복을 입고 유천동 하숙집 냉방에서 오들오들 떨며 서로를 위로하던 우리 최(崔) 의원님은 일선에서 물러나 어디에서 무얼 하고들 지내시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한다.

수소문하면 야 금방 알 수도 있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고 그럭저럭 지내는 것도 무디어진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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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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