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 술자리에서 부탁한 전북의 무주구천동의 반딧불 사과를 대자님이 갖고 왔다.
15kg 한 상자가 얼마인지 감이 안 잡혀 대충 4박스 정도면 안 되겠느냐며 그대로 부탁을 하였는데 갖고 온 것을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많은 양이었다.
그 많은 것을 어떻게 처리한다?
걱정할 것은 아니다.
어디에 팔거나 선물할 것이 아니라 먹어본 효소 제품 중에 가장 좋은 것 같은 사과 식초를 담아 먹고 만수무강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과 식초 작업에 들어갔다.
내가 주방장이고 데보라는 보조다.
실제로 일을 하는 데는 주방장이 보조의 지시를 따르게 되어 있는 상황이지만 주도적으로 내가 해 나갔다.
연수기의 밸브를 연수에서 원수 위치로 돌려놓고 욕조에 가득한 사과를 수세미로 문지르고 닦아서 커다란 소쿠리에 받치니 네 소쿠리였다.
유약만 발라 구워서 숨을 쉰다는 커다란 바탱이도 세 개다.
가늠을 해 보니 네 바탱이는 될 거 같은데 받아 일단 세 바탱이를 해 놓고 얼마 후에 숨이 죽어 가라앉으면 남겨진 단단한 사과로 채우는 것으로 계획을 해서 사과식초 담근 것 세 바탱이에 남겨진 사과 한 소쿠리가 됐다.
점심을 먹고 단단히 무장을 한 채 시작을 했다.
상처 난 부분과 씨앗 부분을 제거 하고는 네 등분 내고 다시 잘게 저 밀어 바탱이 던지면 되는 간단한 작업이었다.
워낙 양이 많다 보니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짜증이 나려고 할 즈음에 허리를 펴고 심호흡을 하면서 이럴 때는 “아우님들의 협조가 필요한데......,” 라고 중얼거렸더니 데보라가 금세 눈치 채고는 이(李) 아우님한테 전화를 하여 할 얘기도 있고 보여 줄 것도 있으니 겸사겸사해서 놀러 오라고 전화를 하였다.
얼마 후에 안나 자매님이 혼자 오셨다.
레지나 언니는 기타 교실에 갔는지 전화를 안 받는다고 하며 들어오시다가 주방에서부터 거실까지 죽 늘어놓고 사과식초 만드는 장면을 보시고는 어마나 하고 탄성을 지르셨다.
사과 좀 드시라고 했더니 하나 깎아서 몇 점 드시고는 일을 거들으셨다.
그러면서 이야기가 이어졌다.
남자인 나는 묵묵히 듣는 편이었고, 여자인 둘은 이야기를 이어가는 데 사과식초 작업하는 거 반에 이야기하는 거 반이었다.
신앙과 가정에 관한 이야기는 사과 식초 작업이 끝나고도 이어졌다.
작업이 끝났을 때는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바로 컴컴해졌다.
불도 안 켠 채로 셋이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시골 출신들답게 그런 낯서른 풍경에 익숙하여 시간가는 줄 몰랐고, 나중에 둘러보니 운치도 있었다.
그러다가는 저녁밥이고, 저녁 미사고 어려울 거 같았는데 시간이 되자 이야기도 마무리 되었다.
간단하게 주모경(主母經)을 받치고 함께 일어났다.
어두컴컴한 데서 아이들 코잡기 하는 것도 아니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고 하였더니 정말 그렇다면서 파안대소했다.
큰 손님이든 늘 같이 하는 듯한 가까운 손님이든 내 집에 오면 찬 물이라도 한 그릇 대접하고, 남의 집에 가면 그냥 돌아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무 거라도 입맛을 다시고 나와야 서로에게 복이 가는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살아왔는데 요즈음은 먹는 것이 흔하고 개성적이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정이 멀어지거나 식어서 그런 것은 아니니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니긴 하지만 어디를 가든 쓰디쓴 차라도 한 잔 씩 나누는 것은 필요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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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