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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쓸 만큼 썼어

by Aphraates 2015. 1. 2.

세밑 끝 날에 이발을 하고 오다보니 앞앞 동(棟) 어느 집에서 구조 변경을 했는지 거실 장식장을 밖의 폐기물 처리장에 쌓아 놓은 것이 보였다.

올커니 하는 쾌재가 나왔다.

내가 찾는 것이 거기에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 거실 장 문 한 쪽이 잘 안 닫혔다.

왜 그런가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문짝을 지지해 주는 장식이 낡아서 떨어져나가 있었다.

수리 방법을 생각해 봤다.

달리 방법이 없고 그를 떼어내고 새 것을 다는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만물상이라고 하는 아파트 단지 앞 철물점에 가서 주인장께 설명을 하며 그런 장식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거기에 딱 맞는 것은 없고 다른 것이 있는데 그 것을 달려면 문짝을 가공해야 할 것이라고 하셨다.

문짝을 가공해가면서 까지 쓸 것은 아니었다.

가끔 여닫는 것이니 그냥 두고 사용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알았다고 하면서 “입주한 지 이십 년이니 뜰만큼도 썼어요. 하지만 수시로 바꿀 것은 바꾸더라도 그대로 둬도 괜찮은 것은 멀쩡한 것을 버린다는 것은 큰 낭비지요. 가구뿐 아니라 자동차 같은 것도 아무리 오래 됐어도 필요한 부품 같은 조달 공급이 되어 무지금 쓰도록 해도 좋을 텐데 그렇게 안 돼요” 라고 했다.

그러자 주인장이 “저도 이 아파트에 살지만 이십년 살아도 하자가 없는 것을 보면 잘 지은 아파트예요. 기존 입주자들이나 새로 이사 오는 일부 주민들이 구조 변경을 하는 경우도 많은데 원래대로 두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라고 하시면서 뭐가 필요하신지 알았으니 한번 알아는 보겠다고 하셨다.

 

거실 장 문짝 고리를 고쳐도 그만 안 고쳐도 그만이지만 그래도 고치는 편이 좋은데 부속품이 단종(斷種)된 상태여서 구할 수가 없으니 천상 폐기 처분하려고 내 놓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기회가 온 것이다.

기회는 왔지만 즉각적인 작전개시는 좀 그랬다.

신년 첫날부터 폐기 품을 뒤진다는 것은 세월한테도 미안한 일이고, 자존심도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 월 일 일 하루가 지나자마자 부속품을 뜯으러 간 것이었다.

작은 전기 드릴과 담을 대형 서류 봉투를 갖고 가서 장식장 문짝 고리를 떼어 내는 작업에 들어갔다.

작업은 어려움 없이 수월하게 되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두 개이지만 혹시 몰라서 있는 대로 떼다가 놓을 심산으로 열 개가 넘도록 떼어 내서 봉투에 넣으니 하나 가득했다.

작전 성공이 뿌듯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더 떼어내려고 작업을 계속하는데 경비원 아저씨가 오셔서 뭐 하느냐고 물으셨다.

전에는 각 동마다 아저씨들이 계셨지만 올 해부터는 3개 동에 한 분씩 계시는 근무 시스템으로 바뀌어 다른 동에 순찰을 하고 오신 것 같았다.

119동에 사는 주민이라 신원을 밝히고는 이게 필요해서 떼어 내고 있는데 별다른 문제없겠지요 하고 물었더니 어차피 폐기처분한 것인데 무슨 문제가 있겠느냐고 하셨다.

큰 건은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시원스럽게 이야기 하시는 것이 좋았다.

나도 화답해야 할 거 같아서 입주한 지 이십 년이 넘다보니 손볼 것이 종종 나타난다면서 철물점 주인장한테 했듯이 쓸만큼 썼다고 하면서 몇 개 동을 혼자 돌보시려면 어려우시겠다고 하였더니 체제가 그렇게 바뀐 것을 어쩌겠느냐면서 그런 대로 할 만하다고 하셨다.

 

손쉽게 구한 장식장 부속품을 들고 들어와 삐거덕거리는 거실 장 문짝을 고치고 나니 뿌지지한 몸이 나은 것처럼 개운했다.

장래를 대비하여 아파트에 이 것 저것 주워 다가 쌓아 둘 것은 아니지만 O도 약에 쓸려면 없다는 것처럼 정작 필요한데 없는 것이라면 하찮은 것이라도 귀중하게 생각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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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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