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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희석

by Aphraates 2015. 1. 20.

지난 주 모임에서다.

서빙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아우님이 나한테 “형님 일단 말아서 드셔야지요?” 하고 물었다.

당연한 것을 뭘 물어보느냐는 식으로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떡였더니 아줌마한테 우선 소주 세 병에 맥주 두 병을 갖다 달라 하였다.

아줌마는 술은 뭐로 가져오느냐고 물어보았다.

아우님이 좌중을 한 번 둘러보더니 브랜드를 유난히 따지는 박(朴) 선배님 같은 분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는지 참석자들한테 물어볼 것도 없이 우리 지방 술인 린과 큰 이변이 없는 한 늘 찾는 카스 맥주를 가져오시라고 했다.

 

주문을 끝내고서는 술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갔다.

입맛이 그렇게 둔한 나도 아니지만 어떤 브랜드의 소주고 맥주고 간에 그거 그거라 구분을 못 하겠던데 아줌마가 주는 대로 먹지 뭘 그리 꼬치꼬치 따지냐고 했다.

다른 분들은 반은 내 말에 정말 그렇다면서 동감을 표시하고, 반은 그게 아니라며 이견을 표시했다.

청탁불문(淸濁不問)이라는 주당의 신조를 따르자는 것이 아니다.

미당 선생만한 주당도 찾아보기 어려운데 괜한 논쟁을 하여 주당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 같아 다른 것으로 화제를 돌렸는데 정작 주당 체면을 구긴 것은 그 후였다.

 

아우님이 내가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는 표정으로 “형님, 알코올 도수 더 깎아 먹은 것은 알고 계시지요?” 라고 말했다.

처음 듣는 소리였다.

어리둥절했더니 아우님이 “천하의 주당 선생님이 그를 아직 모르고 계셨는가보네요. 지난 연말에 18도가 무너진 술이 나와서 지금은 식당이고 가게고 대부분이 그 술이에요” 라면서 소주 도수에 변천사에 대해서 개략적인 설명을 해주었다.

웬만한 술꾼보고는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지 말라고 큰소리치는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어 좀 미안했다.

오래 전에 24도인 술이 이십 몇 도로 내렸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그 뒤로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면서 그럼 소주 값은 그만큼 내렸느냐고 물었더니 그게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다.

많이 마시게 하고 돈을 더 벌려고 하는 장삿속인데 그런 게 어디 있느냐며 지구에 사시는 분이 아니라 화성에서 오신 분이라고 약을 올렸다.

 

아는 게 힘이다.

늦었지만 소주 변천사에 대해서 검색을 해 봤더니 지난 연말에 각종 언론매체에서 관심 있게 다룬 기사가 많았다.

늦게 배운 도둑질 밤새는 줄 모른다고 하는 식으로 소주 도수에 대해서 계속 공부할 것은 아니고 대충 훑어 봤더니 1990년대 말에 23도이던 소주 도수가 2014년 말에 17.5도까지 떨어져 있었다.

수치상으로 봐도 알 수 있지만 주정에 물을 타서 만드는 희석식 소주에서 도수가 6도 차이가 난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일 것 같았다.

체력이 갈수록 딸려 도수가 낮아지는 술일지라도 마시는 양은 줄어들 우리들 세대인데 이러다가 젊은 주당들한테 소주를 마시는 것이 아니라 물을 마시는 것 같다고 항의나 안 받을지 모르겠다.

 

술에 대해서 검색을 하다 보니 “오비맥주 논란, 현대판 봉이 김 선달...36년간 한강물 무료사용?”이란 재미난 기사도 실렸다.

물 타기는 장사꾼들이 소리 소문 없이 노련하게 잘 한다.

알릴 것은 정확하게 알리고, 실속을 챙길 것은 확실하게 챙기면서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좀 서운하지만 사정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어쩌겠느냐고 수긍을 하게 만든다.

그와 반대로 정치꾼들은 소리만 요란하고 어설프다.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데 그게 아니라는 말만 되풀이 뚜렷한 설명도 없이 밀어붙이기 식으로 물 타기를 하다가 애들 장난도 아니고 그게 뭐냐는 비난과 거센 거부감을 맞이하기 일쑤다.

 

13월의 세금 폭탄에 대해서 경제 부총리의 설명이 있었다.

그와 관계없는 입장이기에 관심은 안 기울였지만 무슨 설명인지 이해하기 어려웠고, 기다렸다는 듯이 날선 비판을 하는 종편을 보니 상황이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가늠할 수가 없다.

정면 돌파를 하면서도 소주처럼 알 듯 모를 듯 슬며시 물 타기 하는 방식도 좋았을 걸 하는 생각과 함께 확실한 주관과 미래를 향한 비전의 공감대가 부족한 상태에서 임시방편으로 허둥지둥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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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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