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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2對30(1:15)

by Aphraates 2015. 1. 23.

모임에서 나들이를 갔다.

백합죽이나 한 그릇 먹자며 서해안으로 갔다.

고속도로 내내 자욱한 안개여서 엉금엉금 기었다.

 

먼저 군산 이성당 빵집에 잠시 들렀다.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손님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활력이 넘쳤다.

이 집 빵이 얼마나 맛있고 싸기에 아침부터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고, 전국적으로 소문이 났는지 오후 1시에나 나온다는 단팥빵은 포기하고 1인당 10 개 한정 판매라는 야채 빵과 둬 가지 방 맛을 봤다.

크기도 크고 맛도 좋았다.

그런데 먹고 나니 얼큰한 김치나 매운 국물 생각이 절로 났다.

일행이 웃으면서 어쩌다가 먹는 빵 몇 개인데도 먹고 나니 이렇게 얼큰한 것이 생각나는데 서양 사람들은 어떻게 빵만 먹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빵 맛을 보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까마득한 새만금 방조제를 지나 부안의 변산반도를 일주했다.

역시 바닷가 길은 낭만적이었다.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바닷가를 둘러보면서 몇 년 까지만 해도 종종 가던 곰소 항에도 들렸다.

항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바닷가로 바다바닥 이어져 있던 해산물 판매 노점상들은 없어지고 현대식 건물의 수산물 센터가 들어서 있었다.

대로변에는 건어물 상회와 젓갈 상회, 생선회 식당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철이 아니어서 그런지 오가는 차와 사람들이 드물었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활력이 없어 보였다.

 

구에 와서 그냥 가기가 서운해서 좀 사 가려고 데보라한테 전화를 했다.

오다 보니 어떻게 곰소까지 왔다면서 돌아보니 갈치, 조기, 백합을 비롯한 조개류, 홍어, 아귀, 고등어, 갑오징어 등등이 있는데 골뱅이도 있다고 했다.

데보라가 남자들은 잘 모를 테니까 아무거나 덥석 사오지 말고 골뱅이나 조금 사오라고 했다.

내 생각도 그랬다.

부부 의견 일치가 되는 상황이었다.

지난주에는 골뱅이가 언제 많이 잡히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싱싱한 골뱅이를 물에 튀겨 풍부한 육즙이 넘치는 맛으로 먹고 싶어서 동해안 일대 사이트를 찾아봤지만 영 부실해서 포기 했었다.

 

동해안에 있는 것으로 알았던 골뱅이가 서해안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작은 빨간 비닐 소쿠리에 얹어 놓은 단 한 집 밖에 없는 아줌마한테 “아줌마 이거 골뱅이 맞지요? 얼마지요?” 라고 물었더니 아줌마가 뭐라고 우물우물하면서 만 원이라고 헸다.

잘 됐다 싶어 한 봉지 사면서 일행들한테 이게 골뱅이라면서 싱싱한 거 금방 튀겨서 먹으면 맛있더라고 했더니 사는 사람이 없었다.

 

사고 싶었던 골뱅이를 샀다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검은 봉지를 들고 차 있는 데로 가는데 그 소쿠리에 객군 잡것으로 얹혀있던 중간 크기의 시커먼 소라 두 개가 거슬려 그 거는 골뱅이로 바꿔달라고 못 한 것이 아쉬웠으나 기왕 끝난 거 번복할 수가 없어 그냥 식당으로 갔다.

 

새로 널찍하게 들어선 젓갈 단지 한 쪽에 있는 식당이었다.

벼랑 박에 붙은 메뉴를 보니 해물 칼국수와 바지락 칼국수의 칼국수 종류 둘, 백합죽과 백합 정식의 백합 식사 둘 합이 넷이 전부였다.

적지 않은 식당인데 메뉴가 너무 단출한 것 같기도 했지만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별미 메뉴라서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이었다.

 

바지락 칼국수를 시켰다.

음식이 준비되는 사이에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곰소를 한 3,4년 만에 와 보는 것 같은데 많이 변했다면서 바닷가에 죽 있던 노판 상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더니 그쯤에서 다 철거가 되고 지금 현대식 건물에 들어서 가게들이 그들이란다.

내가 자그마한 포구 어시장을 현대화해서 얼마나 득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왁작 지껄한 바닷가 시장 풍경의 정취가 좋아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상당할 텐데 영 아닌 것 같다고 했더니 주인장은 자기도 거기서 장사를 오랫동안 하다가 여기 새로 만든 상가로 왔는데 군(郡)에서 생각지 못 하여 실수한 것들이 많다고 하였다.

주인장한테 S 젓갈 집을 가리키면서 저 집은 우리가 자주 들리던 품격 있는 집이었는데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몇 년 사이에 초라해 보인다고 했더니 초심(初心)과 인심(人心)을 잃은 케이스라는 말들을 한다는 것이었다.

 

헌 것을 지키기도, 새 것을 만들기도 어려운 일이다.

헌 것을 다 때려 부수고 새 것으로 한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닌데 물질적인 것으로 정신적인 것을 훼손시키는 실패작이 아닌가 한다.

갑자기 우리 공동체가 생각났다.

처음 그대로 놔둬도 될 텐데 생각하고 보는 것이 다 달라 멀쩡한 것을 기회될 때 마다 붙였다 뗐다 하다 보니 갓 쓰고 구두 신은 것처럼 어정쩡한 모습이 된 것을 영 서운해 하는 눈치들이다.

 

맛깔스런 바지락 칼국수였다.

국물이 시원해서 후룩후룩 마셨다.

주인아줌마가 곰소에 오시면 젓갈을 맛보셔야 한다면서 따끈한 밥 한 공기를 갖고 와서는 밑반찬으로 내온 낙지젓을 비롯한 몇 가지 젓갈을 소개했다.

 

벼락치기 전북 지역 서해안 나들이를 마치고 집에 왔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야채 빵을 하나씩 먹으면서 검은 비닐봉지에 싸인 골뱅이를 푸르며 제법 큰 골뱅이가 보이자 “짜잔” 하고 데보라한테 내밀었더니 시늉도 안 하면서 빙그레 웃기만 했다.

너무 좋아서 그러느냐면서 혹시 상할지도 모르니 빵을 빨리 먹고 골뱅이를 삶으라고 했더니 주방의 큰 불을 켜면서 그런데는 남자들의 한계가 있다 하고는 설명을 했다.

이거는 골뱅이가 아니라 개 복숭아라고 할 때의 개인 개고동이고, 질겨서 자기 같이 이가 시원치 않은 사람들은 먹지도 못 한다고 했다.

조개 속에 갯벌도 아직도 많이 남아 있을 테니 씻어서 삶고 다시 갯벌을 빼내고 나중에 된장 지질 때나 우렁처럼 다져 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여기 소라 두 개가 진짜고, 나머지 골뱅이는 가짜인데 아주 못 쓸 것은 아니니 나중에 용도에 맞게 쓰면 된다고 했다.

잠시 후에는 그래도 서방님이 마누라를 위해서 골뱅이라고 의기양양하게 사온 것이니 맛은 봐야 할 거 아니냐며 살아 내 와 식탁에 놓고는 손질을 해 주어 먹어 봤다.

먹어보니 가짜 골뱅이는 타이어 고무 정도는 아니어도 질긴 고무 정도는 된 상놈 폭이었다.

생선 횟집에 가면 입도 안 대는 소라를 먹어보니 이건 상놈 가짜 골뱅이에 비하면 아주 훌륭한 양반이었다.

 

우습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했다.

그 걸 사면서도 좀 의심스럽긴 했다.

동해안에서 보던 골뱅이는 깝질도 뽀얀 하니 약해 보였고 소라 모양이었는데 서해안 골뱅이는 넙죽하고 시크 스룸하며 지저분한 것이 좀 이상했었다.

그 정도의 양의 골뱅이라면 몇 만 원은 했을 텐데 뭘 모르고 잘 봇 산 사람도 불찰이지만 그 보다는 속이려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골뱅이가 아니라고 명확하게 설명을 하지 않은 장사가 더 나쁘다면서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이 맞는 거 같다.

 

다시 생각해도 코미디 같은지라 너털웃음이 나왔다.

데보라가 다른 것을 하는 사이에 삶아져 소쿠리에 받쳐있는 가짜 아니, 착각의 골뱅이가 몇 개인지 세어보니 아까 먹은 것 하나까지 합쳐 딱 서른 개였다.

그러니까 소라 두 개와 비교해보면 진실의 30대2(15:1)인줄 알았던 것이 허위의 2대30(1:15)이었던 것이다.

 

아이고, 두야.

이런 말이 나오고 남음이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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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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