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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종연의 수필 서재
수필

회개

by Aphraates 2015. 1. 25.

고립무원(孤立無援)에 처한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들의 처신이 상반적이다.

자기가 그런 처지에 놓여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자약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럴 기미만 조금 보여도 민첩하게 움직이는 속전속결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대응도 다양하다.

외력에 의해 고립무원이 되었을 때 항거를 하거나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기법 등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모종의 탈출구를 찾는 경우가 있다.

자의적으로 울타리를 쳐 놓고 남들은 근접을 하지 못 하도록 한 자충수로 고립무원이 됐다면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스스로 빠져나갈 자구책을 찾기 어렵다고 하지만 그래도 부딪히다 보면 무슨 길이든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질질 매는 것인지 아니면, 즐기는 것인지 고립무원인 사람은 답답하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자기 혼자서 굳건한 성을 쌓아 놓고 짜증을 부리며 인상을 찌그리는 것은 온당치가 않다.

여러 사람들 피곤하게 만드는 것이 일상이 되고, 내외적으로 좋지 않은 인상과 폐해를 입힌다.

일종의 후천적인 성장 발달 장애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숨겨진 심오한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저 맹탕에 불과한 것 같기도 한데 저런 사람이 어떻게 그런 자리에 위치하면서 버티고 있는지 세상 참 요지경속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를 이해하지 못 하고 비난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도 눈총 받는 사람과 도찐개찐이어서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하는 것들이 있다.

 

다들 아니라는데 혼자만 그렇다 한다.

혼자만 아니라고 하지 다들 그렇다고들 한다.

상황이 그렇거늘 무슨 뱃장으로 옹고집인 것인지 사람의 도량과 역량을 생각하기에 앞서 측은지심과 분노가 먼저 인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분노하기 전에 나부터 돌아봐야겠다.

남들을 보고 분노한다는 것은 분노하는 사람도 분노하게 만드는 사람과 다를 바 없는 것이기에 분노하기에 앞서 회개를 하고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오늘 마침 복음 말씀의 주제가 회개(悔改)다.

요나서 3장으로 요나가 회개하고 난 후의 행적에 관한 말씀인데 그 전 단계인 요나서 2장의 “요나가 회개하고 살아났다”에 대해 계속 묵상했다.

 

주변 상황을 볼 때 전혀 다른 영역인데도 실신(失信)과 실정(失政)이 비정상적인 닮은 꼴로 나타나고 있는 경향이다.

그러나 이 쪽에서 볼 때 그렇지 그 쪽 입장에서 보면 정상일 것이다.

상식을 벗어난 듯 하고 사리에 안 맞는 것 같다고 해서 과연 실패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인지 또한, 본인부터 먼저 회개하고 용서와 화해를 해야 하는 성찰이 필요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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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칼럼니스트□한국문인협회원□한국수필가협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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